이필상 교수 칼럼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옮겨가면서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의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이경희330 2008. 12. 4. 00:32

 

 

                                                                                                           


이필상 교수

 

디플레이션은 극심한 경기침체로 인해 물가가 내리는 극히 비정상적인 현상이다. 경제가 사실상 공황상태에 빠져들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도 심각한 상태이다. 정부는 금융위기를 막기 위해 130조원이 넘는 자금을 풀고 있다. 그러나 정부의 자금지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오히려 환율과 금리가 상승하고 주가가 추락하며 금융시장이 요동을 치고 있다. 문제는 이로 인해 경영이 부실한 기업의 연쇄부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경제위기를 차단하고 정부정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부실기업에 대한 선제적 구조조정이 절실하다. 부실기업과 건전한 기업이 섞여 있어 정부가 아무리 돈을 풀어도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정부정책이 거꾸로 경제 부실규모를 키우고 부도위험을 높이는 역작용을 유발하고 있다. 정부는 문제가 심각한 건설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위해 대주단 협약을 발족시켰다. 1차 신청마감 결과 24개의 중소형 건설사만 가입했을 뿐이다. 대부분 건설사가 구조조정은 피하고 자금지원만 받겠다는 의도가 역력하다.
정부는 구조조정을 전담하는 기업재무구조개선단을 발족시켰다. 기존에 금융감독원에 설치된 기업금융개선지원단에 금융위원회 담당자를 파견하는 형태이다. 금융감독원 부원장이 단장을 맡고 있다. 이 개선단은 외환위기 때 구조개혁단과 같은 역할을 하기 위한 것이다. 당시 구조개혁단은 모든 부실금융기관 및 기업을 대상으로 퇴출, 합병, 자산매각 등의 절차를 신속히 밟았다. 은행 11곳, 증권사 6곳, 보험사 13곳, 부실기업 55곳 등을 단시일 내에 정리하는 결단을 보였다. 그렇다면 이번에 출범한 기업재무구조개선단은 경제위기 극복에 필요한 구조개혁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우선, 기업재무구조개선단의 위상이 너무 낮다. 구조조정은 해당 기업의 운명은 물론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다. 최소한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단장을 맡고 대통령이 구조조정의 전권을 위임하는 형태가 되지 않는 한 구조조정을 강제하기 어렵다. 둘째, 정부의 구조조정에 대한 기본 정책기조가 우왕좌왕이다. 전광우 금융위원장은 한편으로 구조조정 전담기구로 기업재무구조개선단을 만들고도 다른 편으로는 인위적인 구조조정은 계획하지 않고 공적자금 투입도 너무 앞선 얘기라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구조조정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기본 철학이 전제되지 않는 한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셋째, 정책담당자들의 보신주의가 심하다. 최근 관료사회에 변양호 신드롬이 나타나고 있다. 2003년 외환은행을 매각할 때 변양호 당시 재정경제부 담당국장이 헐값 매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재판 중이다. 비록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소신껏 일을 해도 결과가 잘못되면 감옥을 갈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만연해 있다.

정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제2의 환란은 막아야 한다. 기업재무구조개선단을 명실상부한 정부의 구조조정기구로 위상을 높이는 것은 물론 명확한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정책담당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구조조정에 나서도록 신분을 보장해 줘야 한다.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데 정부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절대적이다. 현재 정부의 신뢰는 위험 수준이다.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이 거꾸로 반응하는 경우가 흔하다. 심지어 네티즌 사이에서는 미네르바 열풍까지 불고 있다. 인터넷 경제 논객인 미네르바의 분석과 예측이 실제와 맞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이버 경제대통령이라는 찬사까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구조조정 정책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펼 수 있겠는가. 정부는 경제팀을 바꿔서라도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위기보다 정부신뢰 위기가 더 다급하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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