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고찰 27

박정희가 양산한 산업 역군 원민(怨民)

화병' 만드는 사회, '한'으로 죽어 가는 원민 원민(怨民)의 역사는 길고 참혹하다. 조선 5백년을 신분과 세금 때문에 살이 발리고 뼈가 뒤틀렸다. 일제 강점기에는 정체성과 아들딸과 솥 단지까지 뺏겼다.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에겐 빨갱이로 몰려 1백13만명이 죽었다. 이어 등장한 박정희는 '산업 역군'이라는 이름으로 또다시 원민을 양산했다. 박정희는 상시적인 정당성 결핍에 시달렸다. 쿠데타 때문만이 아니다. 박정희는 친일 부역자였다가 남로당원이 됐다. 특이한 경력이다. 친일 부역자는 대개 미군정과 이승만의 비호로 반공투사로 변신했었다. 박정희는 반대로 빨갱이가 됐다. 왜 그랬을까? 일제 말기와 해방 직후에는 사회주의 세력이 더 컸기 때문이다. 박정희는 힘있는 편에 붙기로 한 것이다. 일제 육사 입학이 좌절..

박정희 고찰 2008.06.21

'여공 잔혹사' 그들은 기계였다

70년대 60만명 종사, 그 많은 여공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난 아침 8시부터 점심시간까지 죽 재봉틀 앞에 앉아 있다. 점심시간이 되어도 아무도 움직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동그랗게 모여 앉아 점심을 함께 먹으면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내 재봉틀 앞에서 먹어야만 한다. 한입 떠먹기도 전에 내 점심은 먼지로 뒤덮인다. 그러나 아무도 자기 몸에 붙은 먼지 하나도 털어 내려 하지 않는다. ……2천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하는데 화장실은 겨우 3개. 화장실에 가려고 줄을 서는 시간이 그렇게 길지 않다면 점심식사 후 휴식을 취하거나 다른 동료 노동자들과 어울려 이야기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1974년 평화시장의 한 여성노동자의 일기) ‘3번 시다’를 아십니까 동일방직이나 YH무역 등 규모가 큰 방직공장은 근..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가 남긴 유산

졸속이라니? 이거 머냐? 라고 생각하실 분이 있으실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졸속이라는 말은 지금 흔히 사용하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병법에서 유래한 개념입니다. 夫鈍兵挫銳 屈力탄貨 則諸侯乘其弊而起, 雖有智者, 不能善其後矣. 故兵聞拙速, 未睹巧之久也. 부둔병좌예 굴력탄화 즉제후승기폐이기, 수유지자, 불능선기후의. 고병문졸속, 미도교지구야. 군대가 둔해지고 사기가 꺾이고, 군대의 힘이 소진되고 재화는 파탄이 발생한다. 즉 다른 제후들이 그 폐단에 편승하여 일어나 공격하므로 비록 지혜로운 자가 있더라도 그 후방의 일을 개선하기는 불가능하다. 고로 군대의 운용은 졸속으로 빨리 끝내야 한다는 것은 들어보았지만 기교 있고 오래 끌어야 좋다는 말은 목도한 적이 없다. 《원문 손자병법》제2 (작전편) 손자병법에 나오는..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개발계획은 위로부터의 계급투쟁”

김수행·박승호 교수, ‘한강의 기적’ 평가 비판 대외적으론 미국이 공산화 막으려 종용·강요 대내적으론 군부가 정당성 확보 차원에서 박차 진보에게조차 박정희 체제의 경제 성장은 대단한 ‘선’이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 교수의 이런 지적은 상당수 진보 지식인들의 일반적 인식이다. “최고경영자 박정희의 공을 인정해주자.” ‘경제발전의 유공자’ 박정희를 정치적 독재자로부터 분리시켜 공을 기리자는 것이다. 이에 김수행 서울대 교수와 박승호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학술연구교수가 이의를 제기했다. 이들은 최근 함께 펴낸 〈박정희 체제의 성립과 전개 및 몰락-국제적·국내적 계급관계의 관점〉(서울대 출판부)에서 박정희 체제는 ‘국제적·국내적 계급관계의 관점’에 의해서만 올바르게 분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 등은 우..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미화를 위한, 보편적 역사관 거부를 경계한다

한 진보경제사학자가 "한강의 기적 평가가 왜곡됐다"며 박정희 개발모델에 대한 진보학계의 부정적인 평가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는 10월 11일자에서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저서를 소개하는 식으로 문화면에 이 교수의 이런 주장을 기사화해 얼굴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는데, 중진학자의 연구 성과의 논리적 주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일부 있어 단편적이지만 기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이념 배제하고 역사를 평가하라? 이 교수는 객관적인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볼 것을 주문하면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임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경제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경제 신화

한국의 경제성장, 물론 박정희 때에 있었다. 대단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무시하는 북한의 김일성 때는 없었나. 미국의 적으로서 (어떤 사람들에게는)살인마 정도로 간주되기도 하는 소련의 스탈린도 엄청난 경제 성장을 일구어냈다. 유럽에서 가장 낙후한 후진국가였던 소련이 미국에 앞서 우주선을 발사하게 될 정도로 경제력을 키웠다. 어디 그뿐이랴. 우리를 식민지배한 일본 제국주의도, 유대인 학살의 대명사 히틀러도, 이태리 파시스트인 무솔리니도 일정 기간 동안 놀라운 경제 성장을 이룩하였다. 6.25전쟁 중 미군의 무차별 폭격으로 말미암아 완전히 구석기 시대로 돌아간(미군장교표현) 북한이, 100년은 지나야 다시 재기할 수 있을 것이란 진단을 뒤엎고 1970년쯤에는 다시 일어섰다. 그 업적에 대한 북한..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가 죽인 대한민국 해운 물류 산업

1970년대 박정희는 높은 수출증가율에도 불구하고 국제수지 상태가 만성적 적자를 벗어나지 못하고 외환 보유고가 자주 고갈되고 국가 채무가 날로 늘어나는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외화 가득률이 높은 해운 산업을 국가 전략 산업으로 지정하고 해운 통폐합 조치를 단행하고, 국가 계획 조선 사업을 시행한다. 그러나 상기 두 사업은 박정희가 실시한 경제 시책 중 여러 졸작 중 가장 해당 사업에 악영향을 준 졸작 중 졸작으로 귀결되어 버린다. 나는 해운업계에 1985년 여름에 투신한 이후, 이 어이없는 정책의 후유증을 가장 민감하게 느낀 장본인이므로 이를 고발하여 박정희식 경제의 폐해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분야의 폐해에 대한 세간의 관심을 유도하여 차세대 성장 엔진 중 하나인 대한민국 물류 산업의 재육성에 귀감이..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개발독재, 美化마라”

진보적 소장학자의 대표적 인물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서울 중앙대에서 ‘해방 60년의 한국사회-역사적 궤적, 현재 속의 미래, 학문 재생산’을 주제로 열린 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엄에서 소위 ‘박정희 시대’ 재평가 논의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민주개혁세력의 헤게모니 약화가 주체적 원인 조희연교수는 박정희 재평가를 진행하기에 앞서 민주개혁세력과 진보담론의 관성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기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전제하에 조 교수는 그동안 소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민주개혁세력 및 진보담론의 관성화와 자기정체, 현실안주에 매몰된 채 개방적인 확장과 성찰적 전환을 이루지 못한 ‘주체적 문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 과정 속에서 민주진보담론의 헤게모니가 약화되면서 소위 우파..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시대 저임금과 저곡가는 사실"

지난해 5월 교수신문 지상에서 제기한 필자의 비판에 대해 이영훈교수가 반론을 내놓았다(“장상환, 정성진 교수의 비판에 답한다”, ‘경제 교과서, 무엇이 문제인가?’, 두레시대, 2006). 이 반론의 타당성을 검토해보기로 한다. 저임금 우선 이 문제에 있어서 사실을 확인해둘 필요가 있다. 이영훈은 박기성의 연구결과에 의거하고 있다. 박기성은 이영훈을 방어하는 글(“1970-80년대 임금, 노동생산성만큼 지급되었다”, 교수신문, 2005. 5. 17)에서 “1988년-1997년을 제외하고 임금은 한계노동생산성과 거의 일치하였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기성·안주엽(“임금과 생산성”, 27권 1호, 2004)에서는 “1987년을 기점으로 기간을 나누어 보면 이전에는 임금이 한계노동생산성에 못 미쳤으나, 이후에는..

박정희 고찰 2008.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