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금융권 구조 조정, 정부가 직접 나서서 하라

이경희330 2008. 12. 28. 18:04

   
▲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금융 위기가 실물 위기로 옮겨가면서 세계 경제가 공포에 휩싸이고 있다. 다단계 투기 구조로 발전된 국제 금융 체제가 무너지면서 자본의 흐름이 마비되자 세계 각국 경제가 투자와 생산 활동이 멈추며 공황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하자 타격이 크다. 먼저 외환위기 이후 증권시장에서 외국 자본이 차지하는 비중이 44%까지 높아졌다. 이런 상태에서 국제 금융 위기가 발생하자 외국 자본이 대규모로 빠져나가 주가 하락은 물론 환율 급등과 이자율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미국과 같이 경기 활성화를 위해 저금리 정책을 펴 2005년 기준금리가 3.25%까지 내려갔다. 저금리 정책은 대규모 부동 자금을 형성해 기업 투자 대신 부동산시장과 증권시장을 거품으로 들뜨게 했다. 2006년에는 부동산 가격이, 2007년에는 증권 가격이 각각 30% 이상 올랐다. 이는 우리 경제 내부에 서브프라임 사태를 잉태시킨 것이다. 더 나아가 우리나라 경제 구조는 외환위기 이후 대기업 수출 산업 중심으로 재편되어 대외 의존도가 높다. 이런 구조 하에 세계 경제가 침체하자 건설은 물론 조선, 자동차, 해운, 철강 등 주요 산업들이 식물 상태에 빠지고 있다.

현 상황이 계속될 경우 우리 경제는 국제통화기금(IMF) 환란 때보다 더 심각한 위기에 빠질 수 있다. IMF 위기는 외환 보유액이 부족해 경제가 일시적으로 부도 상태에 처한 국지적인 위기였다. 따라서 부실 채권 정리와 구조 조정을 실시하고 구제금융과 외국 자본을 유치해 빠른 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위기는 내부구조가 취약하고 해외 의존도가 높은 상태에서 세계 경제 위기가 밀어닥쳐 산업 기반이 붕괴하는 구조적인 위기이다. 따라서 근본적이고 기민한 대응을 하지 않을 경우 경제는 급속히 무너질 수 있다.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보면 우리 경제가 이미 붕괴를 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국내외 주요 연구 기관들의 내년도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9월에 5% 전후이던 것이 최근에는 1% 전후로 떨어졌다. 일부 금융 기관에서는 마이너스 3%까지 전망하고 있다. 이에 따라 연 7만명 수준으로 떨어진 신규 취업자 수가 감소로 돌아설 전망이다. 사상 최악의 실업난이 예고되고 있다.

   
▲ 시중 은행장들이 12월8일 서울 명동 뱅커스클럽에서 경제 위기 극복의 해법을 논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7개 시중 은행 중 5곳, 자기자본 비율 7%대 이하로 추락

경제가 불안에 휩싸이자 금융권의 부실화가 심화되고 있다. 동시에 금융권의 부실화는 산업 발전 기능을 마비시켜 경제를 쓰러뜨리고 있다. 경제와 금융권이 서로 맞물려 쓰러지는 죽음의 악순환을 형성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은행들의 건전성 지표가 이미 위험 수위에 달했다. 국제결제은행 기준 기본 자기자본비율(tier 1)이 지난 9월 8%대에서 12월 말 잠정 추산 결과 7%대로 떨어졌다. 7개 시중 은행 중에서 국민은행과 SC제일은행 등 두 곳만이 기업 구조 조정을 감당할 수 있는 9% 이상이다. 하나은행, 우리은행 등은 6%대로 하락해 비상상태이다. 결국 금융권의 수술이 없이는 경제가 붕괴의 수렁에 빠지는 것을 막을 수 없는 상태이다.

정부는 민간 구도의 자율적 구조 조정으로 경제 위기를 막는 정책을 펴고 있다. 채권단 조정위원회가 퇴출 기업을 결정하고 살릴 기업에 자금 지원을 하는 기업 구조 조정을 총괄해 담당한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이 합동으로 운영하는 기업 재무구조 개선 지원단은 채권단의 기업 구조 조정을 측면 지원한다. 이러한 구조 조정 정책에 따라 5개 은행으로 구성된 하이닉스반도체의 채권단은 이 회사에 8천억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했다. 5천억원을 새로 대출해주고 3천억원의 자본금을 늘려주는 방식이다. 또, 건설업체의 자금난을 덜어주기 위해 채권단 협약을 발족시켰다. 30개 신청 건설회사 중 29개 사에 대해 채무상환을 유예해주기로 하고 나머지 1개 사는 심사를 계속하고 있다. 부도 위기를 맞고 있는 C&그룹 계열사들에 대해서도 채권단 공동 관리를 추진하고 있다. 민간 주도의 구조 조정을 촉진하기 위해 정부는 3단계 은행 자본 확충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채권단이 자율적으로 구조 조정을 할 수 있는 여력을 만들어주기 위한 것이다. 1단계는 증자나 후순위채 발행 등 자구 노력,  2단계는 국책 은행과 연기금이 출연하는 펀드 조성,  3단계는 정부의 공적자금 출자 등의 단계로 은행 자본을 확충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 조정은 부실한 은행과 기업의 퇴출을 최소화하고 유동성을 지원해 경제를 살리는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 경제는 이러한 방식으로 살아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실물 경제의 붕괴로 인해 은행과 기업의 동반 부실이 급속도로 심화되고 있어서 아무리 자금을 풀어도 부실한 은행과 기업이 삼키고 만다. 해당 은행과 기업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구조 조정은 피하고 자금 지원만 받으려 한다. 30개의 건설회사 중 29개 회사가 자금 지원을 받는 것을 보면 구조 조정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나 다름없다. 이와 같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를 계속할 경우 경제는 거꾸로 부실 규모를 키우고 총체적인 붕괴를 가져온다.

자금 지원 최소화하고 합병·자산 매각·사업 조정 등 추진해야

은행들에게 자율적으로 구조 조정을 맡기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것과 다름없다. 구조 조정은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정부가 원칙과 기준을 설정하고 법적 근거를 마련해 추진하지 않으면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 정부의 구조 조정 정책은 주객이 전도되었다. 정부 기구인 재무구조개선지원단이 금융회사와 기업들의 구조 조정을 총괄해야 한다. 여기에 채권단 조정위원회가 측면 지원하는 것이 순리이다. 이에 따라 부실이 심한 금융회사와 기업들을 과감히 퇴출시키고 최소한의 자금 지원으로 인수와 합병, 자산 매각, 사업 조정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 그래야 경제의 불안 요인이 제거되어 자금이 돌고 경제가 살아날 수 있다.

재무구조개선지원단의 위상과 기능은 지금보다 강화해야 한다. 구조 조정은 해당 기업의 운명은 물론 경제의 향방을 좌우하는 중대 사안이다. 최소한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단장을 맡고 대통령이 구조 조정의 전권을 위임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 구조 조정은 정부의 강력한 의지와 기본 철학이 전제되지 않는 한 실행에 옮기기 어렵다. 정부가 주도하겠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객관적이고 투명한 기준을 만들어 과감하게 추진해야 한다.

한편, 정책담당자들의 보신주의가 심각하다. 소신껏 일을 해도 결과가 잘못되면 감옥을 갈 수 있다는 피해의식이 공직 사회에 만연해 있다. 공직자들이 사명감을 갖고 적극적으로 구조 조정에 나서도록 신분을 보장해주는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