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300억달러 통화교환계약으로 금융위기 위험은 벗어났으나 실물경기가 악화하면 경제가 식물 상태에 빠진다

이경희330 2008. 11. 2. 22:52
  •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정부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와 300억달러의 통화교환계약을 맺고 부족한 외화를 공급할 계획이다. 또 총 200조원에 달하는 자금을 내년까지 경영난에 처한 금융기관과 기업에 지원할 예정이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실물경제는 심각한 하락세이다. 9월 산업생산이 7년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경기 동행지수와 선행지수는 8개월 연속 동반 하락했다. 2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특히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지난 3분기 수출 증가율이 8.1%에 그쳤다. 예년 수준이 20% 이상인 점을 감안하면 3분의 1에 가깝다. 이와 같이 실물경기가 악화하면 경제가 식물 상태에 빠져 산업현장이 멈추고 실업자가 쏟아져 나오는 공황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실물경기를 부양하기 위해 재정, 금융, 규제 완화 등 다각적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13조원 규모의 감세정책을 펴 기업투자를 활성화하고 가계 소비여력을 늘릴 예정이다. 또 계류 중인 예산의 세출 규모를 6조원 늘려 사회간접자본 투자나 저소득층 지원 등 재정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여기에 한국은행은 금리를 0.75%포이트 내리고 필요하면 추가로 인하할 계획이다.

    한편으론 규제를 획기적으로 풀 예정이다. 수도권 공장 건설 규제를 완화하여 기업투자를 유도하고, 분당 면적의 16배에 달하는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 건설경기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또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해제하고 재건축과 재개발 규제도 완화할 방침이다. 더 나아가 지방의 30대 광역경제권 선도 프로젝트도 앞당길 예정이다. 실로 실물경기 활성화에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의 대책에 문제는 없나. 현재 실물경기가 최악의 상태임을 감안할 때 정부정책은 타당성이 있다.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 새로운 활력이 될 수 있다. 더 나아가 해외자본 의존도를 낮추고 경제의 자생력을 기르는 계기도 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아직 금융위기가 진행 중이라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다단계 투기 시스템의 성격을 띤 국제금융체제가 수시로 흔들리는 위기이다. 향후 세계경제의 침체, 혼돈, 재편이 수년에 걸쳐 나타날 전망이다. 이 과정에서 건설업체 부실과 가계부채 위기가 악화될 경우 우리나라의 금융위기는 언제나 나타날 수 있다.

    따라서 관련 금융기관과 기업의 구조조정과 경영합리화 계획을 과감하게 추진하여 금융 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정책을 펴야 한다. 사람 몸에서 피가 돌지 않는다고 수혈을 계속하면 생명이 더 위험해질 수 있다. 피가 돌도록 수술해야 비로소 병을 고칠 수 있다.

    정부의 경기 활성화 정책은 부작용이 커 나중에 더 큰 위험을 초래할 소지가 있다. 먼저 정부부채가 이미 300조원이 넘는다. 이런 상태에서 추가로 감세하고 세출을 확대할 경우 재정적자가 늘어난다. 더구나 내년에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다면 재정적자는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가할 수 있다. 한편 정부정책은 통화 팽창과 규제 해제를 동시에 추진하여 물가와 투기 불안의 악순환을 다시 고조시킬 수 있다. 그러면 경기 활성화 정책은 마약 처방으로 끝나고, 경제위기를 확대 재생산하는 화를 초래하게 된다.

    이렇게 볼 때 정부는 경기 활성화에 앞서 신산업 발전을 이루고 경제체질을 강화하는 새로운 경제성장의 틀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경제 저변에서 창업과 투자의 동력이 솟게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청사진이 없는 상태에서 퍼붓기 식 경기 활성화 정책은 부실 거품을 키워 경제를 회생이 어려운 위기의 수렁에 밀어넣는 것이 될 수 있다.

    한편 경제 회복의 걸림돌은 정부의 신뢰 상실이다. 정부는 출범 이후 747 성장정책에 매몰되어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불안을 부추기는 정책을 폈다. 여기에 장관마다 현실 인식이 다르고 대응도 제각각이다. 모든 정책과 수단을 소진하고 경제위기를 재생산하는 정부의 위기가 실로 큰 위기이다. 정부는 그동안의 잘못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경제팀을 다시 구성하여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하고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을 줘야 한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기고·칼럼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  
  •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