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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
경제가 불안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중소기업과 가계의 부도 위험을 높이면서 경제 위기의 조짐이 고조되고 있다. 우리 경제는 이미 성장 잠재력을 잃고 침체의 수렁에 빠진 지 오래이다. 경제 저변을 지키는 중소기업들은 어떤 사업을 해도 적자만 쌓인다.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갚는 기업들이 태반이다. 여기에 환위험을 막는다는 키코(KIKO)의 함정에 빠져 멀쩡한 기업들도 생존이 불투명하다. 경제의 버팀목인 수출도 비틀거리고 있다. 자동차, 반도체, 조선 등 주요 품목의 수출 증가세가 마이너스로 돌아섰다. 올 들어 무역
적자가 1백50억 달러가 넘는다. 산업 붕괴 현상이 빠른 속도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실업과 물가로 고통이 극도인 상태에서 이와 같은 경제 불안이 닥쳐 국민은 앞이 깜깜하다. 이 와중에 빚이 많아 부도의 공포감이 확산되고 있다. 가계 부채가 5년 전에 비해 두 배나 늘어 가구당 4천만원에 달한다. 가구별로 보면 10가구 중 8가구가 빚에 시달리고 있다. 결국, 살던 집을 경매에 붙이거나 파산 선고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 8월 한 달 법원 경매 건수가 2천 건이 넘는다. 7월에 비해 40% 증가한 것이다. 더욱이 연초 1만 건에 지나지 않던 가계 파산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7월에는 7만 건이 넘는다.
대출 금리 10%대까지 치솟아 중소기업·서민 가계 도산 위기
이런 경제에 미국발 금융 위기의 ‘쓰나미’가 밀려와 감당하기 어려운 위기에 휩싸였다. 7천억 달러의 구제금융 조치에도 불구하고 미국의 서브 프라임 사태는 더욱 확산되는 국면이다.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전역을 금융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고 있다. 내면적으로 위기 국면을 맞고 있는 우리 경제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금융 위기가 확산되면서 외국자본이 대거 빠져나가 환율과 금리를 치솟게 하고 주가를 폭락시키고 있다. 올 들어 빠져나간 자금만 40조원에 이른다. 환율이 10년 만에 최고 수준으로 상승하자 원자재 가격이 올라 기업들이 공장을 닫고 있다. 또한 대출 금리가 10%대까지 치솟아 빚더미 위에 앉은 중소기업들과 서민 가계가 연쇄 도산 위기에 빠졌다. 여기에 주가가 떨어지자 평생 모은 재산을 물거품처럼 날리는 가구가 허다하다. 그렇지 않아도 숨이 막힌 경제를 미국발 금융 위기가 실신시키고 있는 양상이다.
이런 가운데 이명박 정부는 경기 부양을 위해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정부의 부동산 경기 활성화 대책은 인수위 때 내놓은 1·30 지방 투기 지역 해체 조치, 출범 이후 내놓은 6·11 지방 아파트 미분양 대책, 8·21 주택 공급 기반 강화 및 건설경기 보완 방안, 9·19 주택 공급 정책, 9·23 종합부동산세 완화 방안 등 8건이나 된다. 이 정책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10년간 주택 5백만 채를 추가 공급한다. 또 정부는 수도권에 15개의 뉴타운을 지정하는 것은 물론 용적률을 2백%까지 올리고 층수제한을 평균 18층으로 높이는 등 재개발·재건축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한다. 더 나아가 9억원 이하의 1가구 1주택에 대해 양도세와 종합부동산세를 면제하는 등 부동산 관련 세금도 대폭 삭감한다.
정부의 계획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정부는 주거단지와 산업용지 공급을 위해 오는 2020년까지 분당 신도시의 16배 규모인 3백8k㎡ 면적의 그린벨트를 풀기로 했다. 이 중 4분의 1 면적은 서민용 주택 건설을 위해 사용하고 나머지 4분의 3 면적은 공장과 창고 등을 짓는 물류단지 조성에 사용할 예정이다. 여기에 정부는 내년도 예산안에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올해보다 7.9%나 늘려 21조원을 배정했다. 전국적으로 고속철도, 지하철 등 건설 사업을 대대적으로 펼치기 위한 것이다. 과거 토건 국가의 꿈을 재현해 경제를 살리겠다는 개발 정책 기조를 분명히 한 것이다.
문제는 수요 기반이 취약한 상태에서 정부가 공급만 대대적으로 늘려 거꾸로 부동산시장을 붕괴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정부가 부동산 활성화 정책을 내놓을 때마다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로 나타난다. 오히려 거래가 줄고 가격이 하락하고 있으며, 시장이 얼어붙어 건설경기가 죽어가고 있다. 이미 부동산시장은 매수 세력이 없어 미분양 아파트가 전국적으로 16만 채나 된다. 금리 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건설업체들이 줄줄이 쓰러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묻지마식’ 아파트 공급 계획이 나오자 새 아파트가 팔리기는커녕 빚 독촉에 밀려 시가의 20~30%씩 가격을 낮추어 내놓은 아파트도 거들떠보는 사람이 없다. 결국, 정부 정책이 가계 파산과 건설시장과 금융 기관들의 동반 붕괴를 재촉하는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현 상황에서 실로 큰 우려는 ‘한국발 서브 프라임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면적으로 우리 경제는 미국의 주택시장과 유사한 부실 구조를 갖고 있다. 미국은 2001년 기준금리를 1%까지 내려 경기 부양을 하려다 주택시장을 거품으로 들뜨게 하고, 다시 2004년 금리를 5.25% 올린 이후 서브 프라임 사태를 초래했다. 우리나라 역시 미국과 같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내렸다가 다시 금리를 올리는 온탕·냉탕식 금리 정책을 폈다. 2003년 3.5%까지 내렸던 기준금리가 5.25%까지 올랐다. 금융시장 경색이 심화되면서 가계대출 금리가 10%에 가깝다.
이 과정에서 6백조원 이상의 부동 자금이 유입되면서 부동산 시장이 거품으로 들떠 2006년 전국 부동산 가격이 평균 32%나 올랐다. 최근 거품이 꺼지면서 부동산시장이 거래가 거의 없는 식물 상태로 가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미국발 금융 위기가 금융시장 경색을 초래하고 금리를 치솟게 하면서 한국판 서브 프라임 사태가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미국 금융 위기의 뿌리인 부동산 거품 붕괴의 끝이 보이지 않는 것이다. 미국 20대 도시의 주택 평균 가격이 1년 전에 비해 20% 이상 떨어졌다. 그러나 계속 떨어지는 추세이다.
정부, 막연한 낙관론 말고 실효성 있는 대책 내놓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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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녁 무렵 은평 뉴타운 아파트. 입주가 시작된 지 5개월이 다 돼가지만 입주율이 저조한 실정이다.
ⓒ시사저널 유장훈 |
이에 따라 미국발 금융 위기가 날로 악화하면서 전세계 금융시장을 언제 끝날지 모르는 위기 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현상이 지속될 경우 한국판 서브 프라임 사태도 시간 문제다. 특히 저축은행의 프로젝트 파이낸싱 연체율이 16%가 넘어 대출 금리가 10% 선에 육박해 금융 위기의 또 다른 뇌관이 되고 있다. 한국판 서브프라임 사태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서민 가계, 중소기업, 금융기관들이 함께 뒤엉켜 쓰러지고 실업자들은 대거 길거리로 쏟아져나올 것이다.
결국, 경기가 침체의 수렁에 빠지고 부동산시장이 꺼지는 형국에 정부가 갖가지 공급 확대 정책을 내놓는 것은 아예 서브 프라임 사태를 확대 재생산해 터트리자는 것밖에 안 된다. 지금 우리 경제는 부동산 경기나 활성화시켜 살릴 수 있는 한가로운 상황이 아니다. 정부, 기업, 국민이 모두 비장한 각오로 경제 위기에 대처하고 새로운 기회를 찾을 때이다. 이런 견지에서 정부는 막연한 낙관론을 펼 것이 아니라 진솔한 모습으로 기업과 국민에게 고통 분담을 호소해야 한다. 동시에 외환위기의 재발을 막기 위해 무슨 일이 있어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외화를 풀게 해 금융시장이 돌아가게 만들어야 한다. 또한, 외환보유액을 최대한 확보해 비상시 응급 조치용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위기일발의 연쇄 부도 위기에 처한 중소기업과 서민 가계를 위한 실효적 지원 대책도 내놓아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