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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준과 이재오 서로 손 내미는 이유는?

이경희330 2008. 11. 26. 00:49

정몽준-이재오 서로 손내미는 내막
‘한쪽 날개 없는 너에게 날 보낸다’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왼쪽)과 이재오 한나라당 전 최고위원.

최근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의 거침없는 행보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는 지난 7월 전당대회에서 박희태 대표·최고위원에 이어 2위를 차지했지만 당내 입지가 미약해 그동안 깊은 소외감을 느껴온 게 사실이다. ‘독립군’ 격인 그는 친이(친 이명박 대통령)-친박(친 박근혜 전 대표)으로 나뉜 계파 정치의 틀에 갇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다. 그동안 “계파 정치 척결” 등을 주장하며 나름대로의 독자행보를 걸었지만 당내 반향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들어 그의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는 형국이다. 지난 10월 이재오 전 최고위원과 단독회동을 가진 데 이어 최근에는 친이그룹 의원들과 연일 소모임을 가지며 광폭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것. 특히 정 최고위원이 오는 12월 초 방미 때 또다시 이 전 최고위원을 만나겠다고 공언하자 정치권에선 “양측 사이에 당권을 전제로 한 교감이 확대되고 있다”라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 최고위원이 당내 핵심 계파인 친 이재오 세력과 연대한다면 박근혜 전 대표 위주의 현 대권구도에도 상당한 지각변동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양측 사이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연대설’의 막후를 들여다봤다.

최근 정몽준 최고위원이 12월 초에 미국 워싱턴에 있는 이재오 전 의원을 만나겠다고 공언하고 나서자 정치권에선 그 배경을 두고 말들이 많다. 지난 10월 정 최고위원이 이 전 의원을 만났을 때만 해도 당내 입지가 약한 정 위원의 일방적 구애일 뿐 양측의 교감은 그리 크지 않다는 게 중론이었다. 당시 정 최고위원은 친이-친박으로 나뉘어진 계파정치의 폐해를 지적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해서도 비판적인 자세를 보이는 등 독자적인 노선을 추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정 최고위원이 최근 이재오 전 의원의 복귀에 대해 긍정적 사인을 보내고 공개적으로 그와의 만남을 선언한 것을 두고 “양측 사이에 당권을 두고 모종의 합의가 있었다”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정 최고위원 측 사정을 잘 아는 정치인 A 씨는 이에 대해 “그동안 별다른 교감이 없던 정 최고위원과 이 전 의원이 최근 들어 급속도로 가까워지고 있다. 정 위원의 최측근 중 한 명이 미국 내 인맥을 활용해 이 전 의원과 비밀 채널을 열어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 이것은 내년 재·보선 이후 조기 전당대회가 실시될 경우를 상정한 당권문제와도 관련이 있다. 정 위원으로서는 당권을 등에 업고 당내 입지를 넓힌 뒤 대권으로 가는 유리한 길을 찾을 수 있다. 이 전 의원으로선 내년 정계복귀를 전제로 박근혜 전 대표 측이 강하게 반발할 경우를 대비해 정 최고위원이 그 완충재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런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이 최근 양측의 연대설로 나타나고 있다”라고 말했다.

먼저 당권에 대한 양측의 이해관계부터 살펴보자. 현재 선거법 위반으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은 여야 의원은 13명에 이른다. 내년 4월 29일에 열린 재·보궐 선거가 특히 관심을 끄는 이유는 ‘문제’ 선거구가 수도권에도 2~4군데 거론되는 등 전국선거의 축소판이 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나라당은 벌써부터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력전을 펼 채비를 하고 있다.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에 근심하고 있는 한나라당으로서는 내년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할 경우 홍준표 원내대표의 임기(5월)와 맞물려 ‘당 지도부 쇄신론’이 터져 나올 가능성이 크다. 박희태 현 대표 체제가 물러나고 새로운 지도부를 구성하자는 조기 전당대회 요구가 빗발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박희태 대표 체제에 대한 친이세력의 평가는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당이 청와대의 ‘장외 나팔수’ 정도의 역할에 그쳐 그 존재감이 유명무실해진 이유 중 하나가 박희태 대표의 허약한 리더십 때문이라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가는 중이다. 당연히 조기 전당대회를 통한 지도부 교체의 필요를 느끼는 대목이다. 여기에 친박세력이 “박근혜 전 대표가 당권을 재 장악해야 대권 가도에도 유리하다”라는 명분으로 지도부 교체를 요구할 경우 내년 조기 전당대회는 기정사실처럼 굳어질 수도 있다.

만약 조기 전당대회가 실시된다면 친이세력은 어떤 인사를 내세우게 될까. 현재로선 그 유력한 대안 중의 하나로 정몽준 최고위원이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배경이 있다.

먼저 친이세력으로서는 내년 조기 전당대회에서 박근혜 전 대표가 당선된다면 당이 급속도로 그의 치마 아래로 들어갈 위험성을 주목하고 있다. 그런 박 전 대표를 견제할 현실성 있는 카드가 바로 정 최고위원이다. 최근 정 최고위원과 식사를 한 적이 있는 한 친이 의원은 이에 대해 “정 위원에 대한 첫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적어도 그가 대권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에게 협조 요청은 하지 않더라도 교감을 나누려는 의사표현은 해야 하지 않나. 그런데 그동안 그런 제스처가 별로 없었다. 그래서 속으로 ‘저 사람이 차기 대권에 도전할 의사는 있는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최근 그와 만난 자리에서 그동안의 생각이 좀 바뀌었다. 그 모임에서 직접적으로 ‘도와달라’는 얘기는 하지 않았지만 자신을 낮추고 상대의 얘기를 경청하려는 진지한 모습과 친이그룹과 가까워지려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았다. 어쨌든 당권이 박근혜 전 대표에게 통째로 넘어가는 것보다 정 최고위원과 우리가 연대하는 게 더 합리적이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친이그룹은 현재 자파 세력을 대표할 만한 대권주자가 없는 상황이다. 김문수 경기도 지사 정도만 눈에 들어올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정치적 무게가 박 전 대표에 비해 떨어진다. 이런 점에서 정 최고위원은 친이그룹을 대표할 만한 대권 주자로 커나갈 가능성이 있는 다목적 카드로 활용될 수 있다.

친이그룹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에 대해 “그동안 정 최고위원에 대한 당내 평가가 부정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당에 대한 공헌도가 전혀 없고 스킨십도 부족해 그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다. 하지만 2002년 대선 정국을 거치면서 대권주자로서 검증을 충분히 받았다는 점에서 한나라당의 유력한 차기 주자감이다. 그동안 그가 당과의 인연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서 무시를 당한 측면이 있다. 친이세력이 앞으로도 자파를 대표할 대권주자를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상황이라면 정 최고위원을 현실적 대안으로 삼을 수 있다. 그는 대중적 인기가 높기 때문에 ‘앞으로 키우기에 따라’ 지금보다 훨씬 큰 인물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친이세력으로선 내년 조기 전당대회 개최를 상정, 정 최고위원을 통해 ‘박근혜 전 대표 견제’와 ‘자파의 대권주자 부재 해소’라는 두 가지 난제를 해결할 수 있다. 하지만 친이그룹 특히 친 이재오 계파 내에서는 아직도 정 최고위원에 대한 신뢰가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한 친이 의원은 이에 대해 “내가 그(정 최고)보다 못한 게 뭐가 있나. 차라리 내가 차기 주자로 나서겠다. 아무리 6선에 대권주자이긴 하지만 지난해 12월에 갓 입당한 그가 어떻게 친이그룹을 대표하는 차기주자로 무혈입성할 수 있겠느냐. 아직까지 친이그룹이 그렇게 약해지지는 않았다. 나중에 정말 대안이 없으면 몰라도…”라고 말했다. 정 최고위원으로서는 자신이 친이그룹의 대표주자가 될 만한 시대정신을 어떻게 그들에게 각인시키느냐는 것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과제인 셈이다.

지금까지는 정 최고위원이 친이그룹을 향해 끝없는 구애를 보내며 자신의 정치적 위상을 높이려 했다. 하지만 내년에 조기 전당대회가 실시되는 과정과, 대권 정국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오면 차기 주자 부재에 허덕이는 친이세력의 대안으로서 정 최고위원의 주가는 상승곡선을 그릴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정 최고위원의 정치력이 본격적인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