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세계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한 처방이 나왔다.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에 1조1000억달러를 출연하여 세계 경제에 긴급자금을 투입하고, 내년 말까지 각국은 총 5조달러의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이에 따라 미국 다우존스지수가 8000선을 넘는 등 세계 각국에서 주가가 오르고 국제 금융시장이 빠른 속도로 안정세를 찾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은 세계 경제가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일시적 돈 퍼붓기 정책으로밖에 볼 수 없다.
최근 세계 경제는 국제 금융 체제가 흔들리고 동시에 실물경제가 부실화하는 구조적 위기를 맞고 있다. 지난해 9월 리먼브라더스 파산 이후 증권 산업이 부실화하면서 미국발 금융 위기가 본격화했다. 그러자 미국 경제의 상징인 자동차 3사가 부도 위기에 처했다. 그로부터 불과 넉 달 만에 뱅크 오브 아메리카, 씨티그룹 등 주요 은행들이 부실 위기에 몰렸다. 전 세계 국가가 유사한 위기를 겪고 있다. 이에 따라 국제 금융시장의 호전에도 올해 세계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2% 이상으로 감소할 전망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이다.
경제 영토 전쟁, 양상 바뀌는 중
결국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부실한 금융기업과 기업들을 솎아내고 산업구조를 재편하여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이 경제 회복의 관건이다. 특히 기존의 산업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신산업을 일으켜 미래 경제 발전의 선두주자가 되는 나라가 실질적인 경제 회복을 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어느 나라가 먼저 일어나 앞서 가는가에 따라 세계 경제지도가 달라지는 혼돈의 시대가 온 것이다.
지난 20년은 금융자본을 무기로 하는 경제 영토 전쟁이 세계 경제를 휩쓸었다. 이 과정에서 선진 강대국의 투기자본은 신흥국가들의 금융시장을 지배하고 기업 사냥을 하며 대규모 이익을 거뒀다. 그러나 향후 경제 영토 전쟁은 자본 규제와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된 상태에서 첨단산업과 지식산업이 승부를 좌우하는 새로운 형태로 전개될 것이다.
국제 금융체제 재편 불가피
세계 경제가 위기에 처한 발단은 신자유주의에 근거한 금융 패권 싸움이다. 1990년대 세계 경제가 개방체제가 되면서 금융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의 경제를 국제 투기자본이 먹잇감으로 공략하는 약육강식의 금융방임주의가 나타났다. 그러자 국제 교역 확대에 의한 세계 경제의 공동 번영은 뒤로 밀리고 세계 경제 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진국들 간의 금융 전쟁이 치열했다.
이 과정에서 미국에서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이 대규모로 부실화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미국 주택 시장 붕괴의 도미노는 곧바로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각국으로 확산됐다. 이에 따라 다단계 파생상품의 투기장이 되다시피 한 국제 금융 시스템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향후 국제 금융 시스템은 근본적인 수술과 재편이 불가피하며, 새로운 국제 통화질서 구축과 세계 경제의 회복에는 수년이 걸릴 전망이다.
세계 경제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미국의 위상은 크게 흔들릴 것이다. 최근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신자유주의와 국제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차원의 대응으로 이와 같은 변화가 시작됐다. 주요 20개국 정상회의 공동성명에 따르면 국경을 넘나들며 전 세계 금융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든 헤지펀드에 대해 규제가 가해진다. 또 국제 금융감독기구로 금융안정포럼(FSB)을 창설하여 금융자본의 방임을 통제할 예정이다. 더 나아가 조세 회피 지역을 찾아다니는 지하자금에 대한 통제도 강화할 방침이다. 이렇게 되면 자유로운 자본 이동을 기본 기조로 하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더욱이 미국 주도로 운영됐던 국제통화기금에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 신흥국들이 대거 참여해 국제 금융 시스템에 대한 감독과 금융 위기 재발 방지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현 추세로 갈 경우 중국이 제기한 달러화 기축통화체제의 대체 논의도 공식화될 가능성이 크다.
위기 해법은 ‘구조조정과 선제 투자’
G20 정상회의에서 우리나라는 경제 위기 극복에 효과적으로 대응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해외의 시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실제로 정부가 펴는 경제정책은 일시적 경기부양에 급급하다. 정책 효과가 단기적으로 끝날 경우 경제는 더욱 수렁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 최근 정부정책과 해외 여건 호전에 힘입어 금융시장이 안정세로 돌아서고 있다. 주가가 오르고 환율이 떨어져 6개월 만에 1300선에서 역전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그럼에도 올해 경제 성장률은 마이너스 2%대로 떨어져 일자리가 20만 개 이상 줄 전망이다.
정부는 경기회복을 위해 총 28조9000억원 규모의 추경예산을 편성했다. 이중 17조7000억원의 재정 지출을 서민생활 안정,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지원, 녹색뉴딜 등에 투입할 예정이다. 일단 경제 붕괴를 막아야 한다는 차원에서 재정 지출 확대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금융과 실물 양면에서 대외 의존도가 절대적으로 커 임기응변적으로 재정 지출만 늘릴 경우 모래밭에 물 붓기처럼 경기 부양은 반짝 효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국가 부채가 늘어날 경우 정부는 정책 기능을 상실하여 더 큰 경제 위기를 초래할 수 있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바로 과감한 구조조정과 선제적 투자다. 전쟁터에서 서로 쏜 포화를 맞고 함께 쓰러졌을 때 먼저 일어나는 나라가 영토를 차지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부실 정도가 낮은 우리나라가 과감한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선제적 투자를 하면 경쟁 국가를 제치고 자생력을 가질 절호의 기회를 맞을 수 있다. 현재와 같이 구조조정 시늉만 하고 돈만 풀면 경제는 더 큰 부실덩어리가 된다.
따라서 정부는 한시바삐 부실한 기업과 금융회사들을 과감히 덜어내고 경제가 경쟁력을 회복하게 해야 한다. 다음 미래 신산업 발전에 총력을 기울여 강력한 동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기업들의 적극적인 기업가 정신 발휘는 필수적이다. 자동차, 반도체 등 국제 경쟁력을 갖춘 대기업들은 미리 과감한 투자로 세계 경제가 회복하면 대규모 시장을 차지할 저력을 축적해야 한다. 해외 시장에 헐값에 나온 기업과 금융기관 인수나 합병 전략도 과감히 펴 경제 영토를 넓히는 노력도 해야 한다. 벤처기업과 중소기업들도 특유의 개척자 정신으로 신산업과 지식 산업을 스스로 일으키는 강력한 의지를 가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렇게 하여 정부는 앞에서 구조조정을 하고 기업들은 뒤에서 선제적 투자를 하는 새로운 경제 성장의 패러다임을 구축하면 경제 위기를 다른 나라보다 앞서 극복하는 것은 물론 선진국의 꿈을 가까운 현실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전총장) (phil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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