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혼인과 출산이 급격히 줄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결혼 건수는 총 30만9759건이다. 인구 1000명당 결혼 건수를 나타내는 조(粗)혼인율이 6.2건으로, 1970년 관련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후 최저치다. 한편 지난 1월 출생아는 4만28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400명이 줄었다. 2008년 3월 이후 23개월째 감소한 것이다.
이렇게 혼인과 출산이 감소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가장 큰 이유가 청년실업이다. 지난 2월 말 현재 15세에서 29세까지의 청년실업률이 10.0%다. 10년 만의 최고치다. 결국 일자리가 없어 결혼도 못하고 출산도 줄이는 것이다. 그러자 경제에 노동력 투입이 안 되는 것은 물론 아예 신규 인력자원의 생산이 줄어드는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그 결과 ‘잠재성장률 하락→청년실업 증가→혼인 및 출산 감소→잠재성장률 하락’의 악순환을 확산시켜 사회의 지속발전 가능성을 떨어뜨리고 있다.
흔들리는 사회기반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학가가 불안하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정규학기를 초과한 전국 대학 및 대학원의 장기학적 보유자가 총 100만8157명에 달한다. NG(no graduation)족으로 불리는 이들은 이미 전체 대학생의 30%를 차지한다. 대학생들이 졸업을 늦추는 이유는 당연히 극심한 취업난 때문이다. 대학 졸업자의 취업률이 60% 수준에 머물고 그것도 절반이 비정규직이다. 일단 졸업을 하면 취업을 못한 사람들은 사회적 낙오자로 취급 받는다. 재수 취업이 극히 어려워 실업자로 전락하고 좌절과 절망의 고통을 겪는다. 따라서 학생들이 졸업을 가급적 미루고 기약 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대학이 신규 인력을 생산 공급하는 기능을 상실하고 혼돈상태에 빠지고 있는 것이다.
고령화가 어느 나라보다도 빠른 상태에서 퇴직의 공포 또한 심각하다. 오로지 회사와 가족을 위해 건강까지 해치며 일만 하던 가장들이 50대가 되면 퇴직을 무자비하게 강요받는다. 직장을 그만둔 이들은 가족의 생계수단으로 임시직을 전전하다가 어쩔 수 없이 경제적 활동을 멈춘다. 최근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60세 이상 인구 중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인구가 500만3000명에 이른다. 10명 가운데 일하는 사람은 3명 정도이고 7명은 논다. 60세만 되면 인구 중 70%가 사회에서 퇴출 선고를 받는다는 뜻이다.
사회적 불만이 무엇보다 큰 것은 소득 격차에 따른 교육 기회의 불평등이다. 빈부 격차가 커지면서 사교육비를 감당하지 못하여 교육의 기회를 박탈당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다. 지난해 우리 경제는 금융위기 때문에 0.2% 성장하는 데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교육비 지출은 전년에 비해 3.4%나 늘어 총 21조6000억원에 달한다. 당연히 사교육비 지출의 양극화가 심화되었다. 월소득 100만원 이하인 저소득층은 학생 1인당 사교육비가 평균 6만1000원인 반면, 월소득 700만원 이상인 고소득층은 평균 51만4000원이다. 비율로 보면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에 비해 8.4배의 사교육비를 쓴다. 서울대에 입학하는 서울지역 학생 중 40%가 강남지역 출신이라는 사실이 이와 같은 사교육비 양극화와 무관치 않다.
사회 발전기반의 와해를 앞당기는 뇌관이 될 수 있는 것이 가계부채다. 지난해 국민 1인당 개인부채는 1754만원이다. 반면에 국민 1인당 소득은 2192만원에 머물렀다. 국민소득 대비 개인부채의 비율이 80%에 이른다. 1975년 개인부채에 대한 통계가 작성되기 시작한 이후 처음이다.
가계부채는 소득 계층에 따라 부담의 차이가 크다. 한국은행이 밝힌 자료에 따르면 소득 계층을 5단계로 나눌 경우 2009년도 현재 소득이 낮은 1분위 계층의 가처분소득은 연간 661만원인 데 비해 원리금 상환금액은 187만원이다. 가처분소득의 28% 이상을 빚 갚는 데 쓴다. 반면 소득이 높은 5분위 계층의 가처분소득은 연간 3806만원인 데 비해 원리금 상환금액은 447만원이다. 가처분소득의 12% 정도를 빚 갚는 데 쓴다.
저소득층이 가처분소득의 28%를 빚 갚는 데 쓰는 것과 고소득층이 가처분소득의 12%를 빚 갚는 데 쓰는 것은 그 고통의 격차가 크다. 더욱이 저소득층은 생활비, 과외비 등 생계형 부채가 많은 반면 고소득층은 재산이 증식될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이 많아 부채의 성격이 다르다. 이렇게 볼 때 경제의 일자리 창출 능력이 계속 떨어질 때 저소득층부터 파산이 나타나는 도미노형 위기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면 경제기반이 갑자기 흔들려 사회가 지속가능성을 일시에 잃는 심각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
고용과 교육에 새 패러다임 필요
그러면 어떻게 문제를 풀어가야 하나? 사회의 지속발전을 위한 일자리 확대 차원에서 고용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꿔야 한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완전개방체제로 바뀌어 치열한 국제 경쟁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기업들은 경쟁력 향상을 위해 정보화와 자동화를 서둘렀다. 그 결과 일은 기계와 컴퓨터가 하고 사람들은 쫓겨나는 탈고용 현상이 나타났다. 따라서 경제가 아무리 성장해도 고용창출이 안 되는 구조적 모순에 빠졌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 우선 근로시간을 단계적으로 줄일 필요가 있다. 그리하여 정보화와 자동화에 의해 사라진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현재 40시간으로 되어있는 법정 기준 근로시간을 선진국 수준인 36시간 정도로 줄이고 초과시간 근무를 억제하면 최소한 2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 이를 위해 임금 피크제와 임금 인상 억제 등의 고통 분담 노력은 불가피하다.
한편 산업구조와 교육제도를 바꾸어 경제의 고용창출 능력을 높여야 한다. 낙후를 면치 못하고 있는 내수와 서비스 산업의 실질적인 발전정책을 펴 고용을 대거 창출해야 한다. 또한 대학교육을 산업수요에 맞추는 것은 물론 졸업자들이 미래 첨단산업과 신산업을 대규모로 일으켜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능력을 갖게 바꿔야 한다.
여기서 누구든지 원하는 대학에 가거나 전문교육을 받을 수 있는 균등한 교육기회의 부여는 필수적이다. 지난 50년간 우리나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며 고속성장을 하고 선진국 대열에 서게 된 원동력이 바로 누구나 열심히 공부를 하면 신분 상승이 가능한 공평한 교육의 기회였다. 빠른 시일 내에 공교육의 수월성(秀越性)을 확보하여 사교육 수요를 없애고 교육을 국가가 책임지는 획기적인 교육정책과 재정지원이 요구된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전 총장) (phillee@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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