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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님께 드리는 편지

이경희330 2008. 6. 4. 00:53


대통령 각하.

 

말끝마다 경제의 구원자를 자처하고 잃어버린 10년 운운할 때부터, 아무래도 대통령 일이 너무 쉬운 건 줄 여기시는 것 같아 제 나름 걱정이 많았더랬지요. 그래도 취임 석 달 만에 나라를 이 꼴로 만드실 거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어요.

 

지난 정권 때 한나라당과 조중동이 노무현 대통령을 씹을 때마다, 고졸에다가 돈도 기반도 없는 천민 대통령을 뽑아서 나라가 이 꼴이고 니들이 하면 훨씬 잘 할 수 있다는 그 거만함이 심히 거슬렸더랬어요. 사실 별 큰 문제도 없는 상황에서 국민 무서운 줄 모르고 탄핵 책동을 벌인 것도 그런 비뚤어진 자신감과 그 뒤에 숨어 있는 패배의식을 감추지 못해 벌인 짓거리 아니었던가요.

 

그럼에도 알량한 장사꾼 경력과 허망한 장미빛 약속에 넘어가 각하를 뽑아준 국민들도 답답하지만, 엘리트주의와 특권 의식의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던 니네들이 처한 작금의 처참한 상황에 저는 더욱 큰 연민을 느껴요. 백수십만 명이 탄핵에 서명하고, 중고등학생들에다가 애 업은 아줌마, 4,50대 아저씨들이 매일같이 집회에 나오는 이런 상황은 87년 이후 저도 처음 봅니다 그려.

 

네티즌들의 열린 광장인 아고라가 무슨 좌경 정치 조직인 줄 알고, ‘아저씨 자전거 부대’ 가 말 그대로 좌익 불순 세력의 자전거 혁명 부대인 줄 착각하고, 애들 양초 사는 돈을 누군가가 뒤에서 조직적으로 대고 있다고 우기는 각하와 주변 잡인들의 망발에 다들 한 없는 절망에 빠져 있어요. 취임 3개월 여… 국민을 섬기겠다고 버릇처럼 말해 오던 그 대통령은 어디에 있으며, 국민이 정치를 앞서가고 있다던 그 대통령은 지금 어디에 있나요? 혹시 티비 나와서 고개나 숙이는 것이 국민이 바라는 ‘섬김’이라고 믿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사실 저는 각하가 왜 이렇게 밖에 하지 못하는 줄 알아요. 왜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자기 식대로만 왜곡하려 하는지, 어째서 국민의 뜻을 받아들일 수 없는지 말이에요.

 

그건 각하가 정치란 것 자체를 전혀 이해하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하는, 대통령을 해서는 안되었을 사람이기 때문이에요. 기업 회장 출신인 각하한테 정치는 그 자체로서 불필요한 정쟁의 소모전일 뿐입지요. 툭하면 뱉어내는, 국민이 정치를 앞서가고 있다는 말도 사실은 스스로가 아닌 야당을 빗대어 한 말이었죠? BBK 니 도곡동이니 해서 각하를 ‘불필요하게’ 괴롭히던 사람들이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말이었겠지요. 하지만 정치를 이해하지 몬하는 자는 민주주의도 이해할 수 없다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를 각하는 전혀 눈치채지 몬하고 있으니 어쩌면 좋아요.

 

그럼 왜 그러신 걸까요? 그건 각하 머리 속에는 그저 일과 성취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요. 각하는 일중독자로 평생을 살아온 사람 아닌가요. 샐러리맨 성공 신화란 바로 그런 삶 속에서만 가능했던 것입지요. 물론 일 열심히 하는 것 자체야 누가 욕하겠습니까마는, 일중독자의 문제는 일 외에 다른 것들은 일을 방해하는 요소로 여기고 눈과 귀를 닫아 버린다는 데에 있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그것이 야기하는 사회와 가정의 폐해가 크다는 거 아니겠어요. 바로 그런 이유로 현대 정신의학에서는 일중독을 정신질환의 한 형태로 포함시키려는 경향도 있어요.

 

되돌아 보면 각하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외쳤던, 소위 747을 포함한 대부분의 공약과 계획들도 전부 일과 성취와 관련된 거였죠. 그리고 그것들만 성취하면 나머지 문제들은 그냥 다 해결될 것처럼 말씀하셨어요. 하긴 각하 개인의 경우는 운 좋게도 그렇게도 인생이 잘 풀려 나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요. 하지만 그런 생각과 인생 철학을 나라에 적용하면 큰일나는 것입지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국민을 총동원해서라도 어떻게든 정해놓은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집단은 이미 나라가 아니니까요.

 

근데 이런 나라,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지 않나요? 그래요. 30여 년 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만들었던 나라가 바로 이런 것이었어요. 그 양반은 국민 모두를 일중독자로 만드는 게 소원이었죠. 하긴 국민 소득이 몇 백불 밖에 되지 않던 그 시절에는 좀 필요했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걸 성취하기 위한 방법이 점점 과격해지고 집착이 심해지면서, 결국은 스스로의 죽음까지 불러오고 말았던 사실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지 않나요. 그 양반도 통치만 하고 싶어 할 뿐 말 많고 복잡하고 실용적이지 못한 정치 행위에는 신물을 냈다고 하대요.

 

이 대통령 각하는 그 박정희가 바라던 모습의 모범으로 살고 성공해서 기업 회장까지 된 사람이죠. 그래서 각하에게는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과 환상이 있죠. 다른 것 생각하지 않고 노력과 요령을 통해 돈 벌고 성공하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여건. 그것이 각하가 말하는 ‘기업하기 좋은 여건’ 이겠죠. 아마도 각하는 지난 ‘잃어버린 10년’에 신물이 난 국민들이 이제 그런 세상을 원하고 있다고 믿고 있겠죠. 국민들 스스로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직원이 되기를 자처하고, 봉급만 잘 나오면 만족하고 살 거라고 여기겠죠.

 

그런 각하께 미국 쇠고기 수입 같은 것은 회사의 이익을 위한 최고 경영자로서의 고유 권한일 뿐이겠죠. 문제가 있다면 ‘딜‘로 해결 하면 되고, 누군가 문제제기를 해도 ‘같이 고생하자’ 고 어르던가 아니면 해고해 버리면 그만이니까요. 그런 짓들이 회사의 전체 이익, 서양 우익들이 잘 쓰는 표현인 ‘greater good’ 을 위한 것이라면 별 죄책감도 없겠죠. 최대 이익을 창출하여 주주의 이익을 보장하는 것이야말로 자본주의 사회 기업의 첫째 윤리지요. 그렇게 나라를 경영하면 국민들도 모다 만세 할 줄 알았죠.

 

하지만 지금 각하는 착각에 빠져 있습니다요. 지난 몇 년간 다들 노무현 욕을 하면서 얻은 것이 무엇인 줄 아세요? 그저 노무현의 정치에 신물이 난 줄만 알았지만, 사실은 그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그만큼 정치적으로 성장했다는 점이에요. 그 동안 대통령을 마음껏 욕하면서 이 나라의 주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무의식적으로 조금씩 자각하게 되었던 거에요. 이거 되게 중요한 거거든요?

 

이걸 우리 스스로도 잘 모르고 있다가 각하가 줄줄이 사고치고 거짓부렁 하니까 그간 자라난 민주적인 주권 의식이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옮겨지게 된 거죠. 그래서 국민 불복종의 집단 행동을 보이는 것이고, 그것이 지금의 촛불 시위의 진실이에요. 배후는 무슨 얼어 죽을 배�니까요...

 

국민이 바라는 나라는 지금 각하가 만들고자 하는 나라가 아니라 ‘잃어버린 10년’ 시대에 알게 모르게 성취해낸 민주주의의 성과를 전제로 해서, 그 다음에 그 단점들을 극복하는 나라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거에요. 그때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열라 어려운 거죠.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그만 순진하게도 기업가 출신 각하께 그런 과한 능력을 기대했던 거에요.

 

이제 우리는 일만 하는, 성취만을 고집하는 대통령은 결국 독재자가 될 수 밖에 없는 그런 시대를 살고 있어요. 그런데도 각하와 그 일당들은 대한민국 국민은 고사하고 여의도 정치 평균 수준보다도 20년이나 뒤쳐져 살고 있으니 이 일을 어쩌지요. 그래서 저는 무서워요. 광우병이 걸릴까 봐 무서운 것 보다, 소통 문제니 대국민 사과니 하는 뻔한 사탕발림이나 하면서 그게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질지 알지 못하는 각하의 무지, 그리고 양초 사는 돈을 누가 댔는지 알아보라는 각하의 편견이 무서워요.

 

광우병을 필두로 이제 대운하니 민영화니 많은 문제들이 니네들과 국민 사이를 가로막고 있어요. 이것을 ‘힘들더라도 넘어야 할 과제’, ‘극복해야 할 도전’ 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각하는 주식회사 대한민국의 사장에 불과한 존재로 전락하는 것이에요. 국민은 각하께서 넘어서고 극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에요. 섬김은 그런 것이 아니에요.

 

지금 같은 모습으로 계속 그 ‘도전’들에 대응한다면 이명박 정권의 미래는 물론이고 이 나라의 미래까지도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 거에요. 지금 이 대통령 각하께 가장 큰 도전은 바로 각하 자신일 뿐이에요. 각하 자신의 고정관념과 잘못된 국가관, 정치관이에요. 양초값의 배후를 찾지 말고 자기 자신의 배후를 찾으세요. 각하의 실용과 격 없음에 가려져 있지만 실은 뇌리 깊숙이 박혀 있는 3공 마인드의 배후를 찾아서 제거해야 해요.

 

3.1 운동과 4.19, 5.18, 6.10을 일구어 낸 이 국민이 어떤 국민인지 잊어버리면 큰일나요. 처음부터 새로 시작한다는 자기 부정의 노력이 없으면 각하는 우리나라 최악의 지도자로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임은 물론이고 임기를 다 채우기도 어려울 거에요

 

그런 민족사적 비극이 다시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은 순전히 각하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점, 제발 좀 깨달으시기 바래요. 지금 우리 국민들이 장난하고 있는 줄 아나요?

논설의원 파토 patoworld@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