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외환 시장 어지러워도 섣불리 개입하지 마라..자칫 보유 외환만 날리고 스태그플레이션 초래할 것…시장의 자동 조절 기능이 문제 해결 최선책

이경희330 2008. 7. 17. 16:01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
 

최근 정부는 경제성장률 목표를 6%대에서 4% 후반으로 낮추고 물가상승률 억제선을 3.3%에서 4.5%로 올렸다. 또한 일자리 창출 목표를 35만개에서 20만개로 하향 조정했다. 이로써 정부는 경제 위기를 인정하고 연 7% 성장으로 국민소득 4만 달러를 달성하며, 10년 이내에 7대 경제대국에 진입하겠다는 이른바 ‘747 공약’을 포기했다.

문제의 발단은 정부가 경제를 잘못 읽고 성장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다. 우리 경제는 연초부터 국제 유가가 급등하자 경기 불황과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테그플레이션이 시작되었다.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성장만 하면 된다는 논리로 팽창 정책을 폈다. 그러자 물가 불안 심리가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스테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경제가 성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주저 앉는 현상이 나타났다. 마치 불난 집에 물 대신 석유를 끼얹은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와 같이 스테그플레이션의 위기에 빠지고 있는 경제에 국제 유가는 폭등세를 계속하고 있다. 지난 2월 배럴당 100달러를 넘긴 후 고공비행을 해 곧 1백50달러를 넘길 전망이다. 국제 유가가 1백50달러를 넘기면 기업 부문은 생산과 투자에 결정적 타격을 받는다. 가계 부문은 실업·물가·부채의 3중고가 숨을 막아 연쇄 부도 위험이 커진다. 사실상 경제가 부도 위기 국면에 접어드는 것이다. 747은 아예 꿈도 꾸기 어려운 상황이다.

경제 잘못 읽고 성장 밀어붙이다 수렁에 빠져

경제를 위기로 밀어넣은 최대의 실책은 냉탕·온탕식 환율 조작이다. 정부는 출범 직후 물가 안정보다는 성장이 우선이라는 기조 하에 수출부터 늘리겠다는 목적으로 외화를 사들여 환율을 높이는 정책을 폈다. 이에 따라 일시적으로 경상수지가 개선되는 등 반짝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그러나 곧 원유와 원자재의 가격이 폭등하자 고환율 정책에 따른 시중의 유동성 증가와 수입가 상승이 서로 꼬리를 물고 물가를 폭등시키는 연쇄작용이 일어났다. 그러자 생산과 소비 활동이 한꺼번에 위축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스테그플레이션이 본격화하고 경제의 동력이 떨어졌다. 정부는 어쩔 수 없이 경제 목표를 대폭 낮추고 정책 기조를 성장 위주에서 물가 안정으로 바꾸었다.

최근 정부와 한국은행은 물가를 안정시키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동원해 환율을 내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수출 증가를 위해 펴던 고환율 정책을 하루아침에 뒤집고 외환시장을 무력으로 진압해 환율을 억지로 내리겠다는 것이다. 바로 시장 기능을 부정하는 냉탕·온탕식 관치 정책의 강력한 부활이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 위기를 거꾸로 확대 재생산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제가 크다. 일단 당국이 보유 외화를 팔아서 환율상승을 막을 경우 수입 가격 상승에 따른 물가 상승은 어느 정도 억제할 수 있다. 그러나 어떤 정책도 시장을 이길 수는 없다. 원유와 원자재의 국제 가격 폭등세가 계속될 경우 이러한 효과는 단기적으로 끝난다. 그러면 외환보유액만 낭비하고 물가의 고삐를 놓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지난 7월9일 정부는 50억 달러 규모의 외환보유액을 투입했다. 그리하여 환율을 무려 27원80전이나 낮추어 1천원대로 떨어뜨렸다. 그러자 수출 기업들은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달러 매물을 쏟아냈다. 반면 수입업자들은 달러의 저가 확보를 위해 매입을 서둘렀다. 여기에 외국인 투자자들은 환차익을 겨냥해 주식을 집중 매도했다. 외환시장이 완전히 혼동 상태였다. 실로 큰 우려는 정부의 개입이 곧 한계 상황에 처할 것을 알고 외화 매입 세력이 정부가 푼 외화를 집중적으로 매수할 경우 정부의 저지선이 쉽게 뚤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경우 환율은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오르게 된다. 그러면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은 경제를 안정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위기에 빠뜨리는 마이너스 손이 된다.

   
ⓒ연합뉴스


외환시장 개입 실패하면 제2의 외환 위기 올 수도

정부의 외환시장 개입이 실패할 경우 우리 경제는 제2의 외환위기를 겪을 가능성이 커진다. 우리나라 외환보유액은 2천5백81억 달러 규모다. 그러나 1년 안에 갚아야 하는 유동 외채가 2천 1백56억 달러로 추산된다.

여유 외환보유액이 4백25억 달러에 불과하다. 환율 안정을 위해 하루에 40억~50억 달러씩 풀면 열흘도 안 되어 바닥이 난다. 이런 상태에서 수출로 버티던 경제가 11년 만에 무역 적자국으로 돌아섰다. 올해 경상수지 적자는 100억 달러 이상으로 전망된다. 경제 전망이 어두운데 정부가 환율을 내리자 외국 자본도 앞을 다투어 나가고 있다. 환차익을 얻어 가지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최근 한 달 동안 빠져나간 자금만 해도 60억 달러에 달한다. 올 들어 외국인들의 주식 순매액이 총 2백30억 달러가 넘는다. 이렇게 되자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기력을 잃고 기업과 가계 부문의 연쇄 부도를 위협하고 있다. 바로 국가 경제가 부도 위기를 겪게 되는 전조 현상이다.

우리 경제로서는 날로 확산되는 스테그플레이션을 해소하고 성장 동력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 이런 견지에서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하여 물가 불안을 해소하려는 관치 정책은 지양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정부의 환율 정책이 실패할 경우 외환시장은 걷잡을 수 없는 불안에 빠진다. 더욱이 정부가 환율의 통제를 계속할 경우 우리나라는 환율 조작국이라는 오명을 얻을 수밖에 없다. 그러면 해외 신인도가 하락하는 것은 물론 국제 경제 사회에서 후진국으로 따돌림을 당한다. 이번의 외환 시장 개입은 비정상적인 환율 상승을 막고 불안 심리를 안정시키는 데 국한해야 한다. 그리고 정부는 오히려 외환 시장 기능을 살리는 정책으로 바꿔 경제가 스스로 환율 불안을 해소하는 자생력을 기르게 해야 한다. 환율 결정을 시장 기능에 맞길 경우 원유와 원자재의 수입 가격이 상승해 외화 지출이 많아지면 환율은 상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상품의 국제 가격 경쟁력이 높아져 수출이 증가하고 외화 유입이 느는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난다. 반대로 수입 가격이 하락해 외화 유입이 늘면 환율은 자동적으로 하락한다. 이 경우 물론 수출은 위축된다. 이와 같은 환율의 자동 조절 기능을 살려 시장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게 하는 것이 순리다. 이를 부정하고 인위적으로 환율을 조작할 경우 결과는 반대로 나타나는 것이 시장 논리다.

물론 국제 유가 급등에 따른 물가 불안이 심각하다. 따라서 환율의 억지 인하보다는 에너지 절약, 유통구조개선 등 직접적인 방법으로 안정화시키는 것이 우선이다. 또 물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자금 흐름의 개선이 필수적이다. 현재 우리 경제는 통화 공급의 과잉 현상이 지속되고 있다. 올 유동성 증가율이 지난 5월 기준으로 15.8%나 된다. 1999년 6월의 16.1%를 기록한 후 최고 수준이다. 문제는 이렇게 증가하는 유동성이 산업 투자보다는 금융 투기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금 흐름의 왜곡은 경제를 거품으로 들뜨게 해 스테그플레이션의 근본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따라서 적절한 금리 조정과 투자 활성화 정책이 절실하다.

무엇보다도 정부는 새로운 산업 정책을 펴야 한다. 10년 전 외환위기 때 우리 경제가 빠른 시일 내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인터넷, 이동통신 등 정보통신 신산업이 급격히 발전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신규 창업과 기업 투자가 늘고 대규모의 일자리가 창출되었다. 정부는 대체 에너지, 바이오, 지식서비스 등 신산업 발전에 전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를 전제로 규제개혁과 세금 감면을 획기적으로 단행해 기업 환경을 바꿔야 한다. 그리하여 시중의 부동 자금이 기업들의 창업이나 투자자금으로 흐르게 해야 한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경제가 스테그플레이션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하는 길이다.

[978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