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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베어스턴스 부도 사태 이후 미국의 신용위기는 진정기미를 보였다. 그러나 최근 미국의 국책 모기지 업체인 프레디맥과 패니매가 부도위기를 겪으면서 신용위기가 다시 나타났다.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긴급 구제책을 내놓아도 부도 위기가 각급 금융기관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문제는 프레디맥과 패니매가 자금조달을 위해 발행한 채권이다. 규모가 3조 3000억달러로 미국 GDP의 24%나 된다. 이 채권에 투자한 금융기관들은 미국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등 세계 각국에 걸쳐 있다. 따라서 미국 주택시장이 침체하여 이 두 업체가 부도위기에 처하자 미국 금융시장이 진앙지가 되어 국제 금융시장이 요동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한국은행이 외환보유액이 15%나 되는 380억달러어치의 해당 채권을 사들였다. 삼성생명, 신한은행, 외환은행 등 민간 금융기관도 5억 5000만달러어치를 사들였다. 이로 인해 하루에 종합주가지수가 49포인트나 하락하는 등 심각한 금융불안을 겪고 있다.
미국 정부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질 때마다 해당 금융기관에 긴급구제 금융을 제공하여 급한 불을 끄고 있다. 따라서 국제 금융시장이 궁극적인 파국으로 갈 가능성은 낮다. 그러나 문제는 서브프라임 사태가 마치 화산처럼 수시로 터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세계 금융기관들이 언제 부도를 겪게 될지 모르는 공포에 시달리며 국제 금융시장의 불안을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국제금융불안은 각국에서 대규모 자산디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경기침체를 가속화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증권시장 침체로 인해 지난해 10월 이후 개인들의 주식과 펀드가치가 105조원이나 하락했다. 가구당 평균 560만원이나 되는 재산 증발이다. 여기에 부동산시장도 함께 침체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자금흐름이 막히자 부채가 많은 중소기업과 가계부문의 연쇄부도가 늘고 있다. 한편 금융시장 불안으로 인해 소비와 투자가 위축되어 경기를 침체의 수렁으로 밀어 넣고 실업을 양산하고 있다.
우리 경제에 실로 큰 우려는 외환위기의 재발이다. 최근 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외환보유액을 풀어 환율을 억지로 끌어내리는 정책을 펴고 있다. 그러자 증권시장에서 외국자본 유출이 줄을 잇고 환율이 다시 오르는 등 역효과가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개입이 한계 상황에 처할 경우 환율저지선은 쉽게 뚫리고 외환위기는 우려에서 현실로 바뀔 수 있다.
금융불안의 확산을 막기 위해 우리 정부는 과도한 외환시장 개입은 지양해야 한다. 오히려 외환시장기능을 살리는 정책으로 경제가 스스로 금융불안을 해소하는 자생력을 기르게 해야 한다. 외화유출이 많으면 환율이 올라 수출을 증가시키고 외화보유가 과다하면 환율이 내려 수입을 증가시켜 자동적으로 외환보유액을 조절하는 시장의 자동 조절기능을 문제해결의 기본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한편 물가상승의 억제를 위한 금리인상도 신중해야 한다. 이미 대출금리가 9%까지 올라 중소기업과 서민가계의 부도위험이 극히 높은 상태이다. 서민들의 고통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가계부채가 가구당 4000만원이 넘는데 실업이 늘고 소득이 줄어 연체가 급격히 늘고 있다. 이런 상태에서 금리를 더 올리는 것은 아예 이들을 쓰러뜨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정부는 경제 살리기의 새 비전을 제시하여 자금흐름을 산업투자로 흐르게 하고 외국자본이 들어오게 해야 한다. 에너지절약, 공공요금인상 억제, 세금 인하 등의 정책을 펴 유가 폭등에 의한 물가불안을 최소화해야 한다. 이렇게 하여 경제난국을 다른 나라보다 한 발자국 앞서 해결하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지혜가 필요하다.
이필상 고려대 경영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