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가을이다. 가을은 너무 일찍 왔다. 여름에는 그렇게도 찌는 듯이 덥더니, 예전의 가을은 결실의 가을이었다. 뭔가 허전한 가을이다. 수군대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너나 할 것 없이 불경기에 찬 겨울이 걱정이란다. 얄팍한 지갑도, 푼돈 모은 저축도 이리저리 저며 쓰고 나니 한겨울이 걱정이란다. 이것이 바람결 따라 들려오는 가을소리다.
이판에 혹시 건질만한 것은 없는지 혹시 쫄딱 망한 사람덕분에 횡재라도 할까 이곳저곳 보내는 눈길이 영 을씨년스럽다. 마치 가을비에 떨어진 칙칙한 가랑잎처럼 흉물스럽다. 한편에서는 죽겠다고 아우성인데 한쪽에서는 도둑놈이 따로 없듯 먹잇감을 노리는 번들거리는 눈빛이 왠지 무섭다. 한세월 목에 힘깨나 주던 사람들이 풀죽은 핫바지처럼 너절한 모습에 공연히 고소해하는 말없는 그들도 허허하기는 매양 한가지다. 열심히 살았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아무리 소리쳐도 들어주는 사람 없이 허공에 맴돌다 사라진다.
이 가을에 곳간이 비...니 남정네들은 헛농사를 지은 것이나 다름이 없다. 쌀독에서 인심이 난다하는데 끼니 걱정하는 아낙은 시름이 깊어만 간다. 시름이 분노로 바뀌고 못난 남정네만 탓하는 여심이 가을바람처럼 떠나가는 모습이 이곳저곳에서 쉽사리 보인다. 그네들이 떠난 빈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한 잔의 술에 길고 긴 한숨소리로 한밤을 지새우는 바보들의 뒤척임이 남는다. 십중팔구 좋아도 한둘의 아픔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직도 마음 어딘가 열린 구석이 있나보다.
이러저런 가을이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오고가고 지난지가 얼마인데 공연히 올 가을이 유난히 을씨년스런 것은 내 인생의 가을도 창 너머 가로수처럼 보이기 때문일 듯싶다. 혹시나 차가운 눈길로 힘겨운 이웃에게 친구에게 아님 누군가를 생채기내고 가슴에 못 박지는 않았는지 창밖을 내다본다. 의도하지 않은 말과 행동으로 삶의 모습을 추하게 하였는지도 모를 일이다. 이 가을은 유난히 기쁘고 아름답기보다는 슬프고 미운 일들이 많이 생각난다.
아마 지난 여름부터 올 가을까지 많은 스트레스가 있었나보다. 눈에 보이는 것이나 귀로 듣는 것이나 말로 하는 것이나 모두가 회색을 칠한 듯 암울해보였다. 그래도 어려운 시절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할 때 숨김없이 대화할 수 있는 이들이 고맙게 느껴진다. 편안한 마음으로 기대어 희망을 얻을 수 있던 그들에게 감사한다. 이 가을은 세월 가는대로 마음 가는대로 그냥 물 흐르듯 이해도 보내고 새날을 기다리고 싶다.
아무리 가을이 흉작일지라도 봄에 뿌릴 씨앗은 남겨 놓아야한다. 아무리 배고파 오늘 죽을 먹을지언정 참고 내일을 생각해야한다. 지금 힘겨워 쓰러져 있어도 믿는 구석이 있다면 그건 행복한 일이다. 세상살이가 죽으란 법은 없다. 이것저것 버리고 나면 그렇게 홀가분하고 편안한 것을 이 가을에 더욱 느낀다. 그렇게도 집착하던 과거 그렇게도 대단한 자존심이 무엇이기에 가을이 되면 낙엽처럼 떨어질 것인데. 그것이 아까워 가을바람에 들리는 울음소리는 싫다. 사람의 울음은 색상이 다르다. 그래도 훌훌 털고 가는 기쁜 울음소리를 듣고 싶다. 그리고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내년에 심을 반듯한 희망의 씨앗을 골라 보석 상자에 담아. 희망의 2018년 울음소리를 가을바람에 실어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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