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과 사람들"이라는 맥락으로 시리즈 글을 쓰면 재미있겠다....물론, 재미는 있으되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사정하는 토끼의 지구력을 가지고 있는 아자씨 특성상, 실현 불가라는 것을 스스로 잘 알지요.
그래도 그게 이런 것입니다.
어언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 부나 잃어버린 삼십년 세월동안 술을 마셨으니, 어찌 홀로 안주만 씹었겠습니까? 사람과 인연과 사연이 술 잔 속에 퐁퐁퐁 녹았겠지요. 술이 깨면 다 잊혀진다해도, 그 잊혀짐 속에서 잊혀지지 않는 그런 이야기를 하나씩 하고 싶었다는, 뭐 그런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말이지요, 이런 것입니다.
술 마시면 우는 사람 많아요. 특히 여자분들이 많이들 울더만요. 그게 술 맛이기도 하지요.
아자씨도 술마시다가 운적 있어요. 술자리에서 남자가 울면 진상이 되거나 아니면 아주 반대로 상당히 드라마틱해집니다.
후배의 눈물을 본 적이 있어요. 신림동 개천가 옆의 포장마차 였을 것입니다. 역시 늦은 시간이었지요.
후배는 당시 신입을 막 벗어난 상태였고 아자씨는 그 보다는 한참 윗선배였습니다. 후배 입장에서는 어려운 선배였겠고요. 자기 동기들보다 뒤 늦게 들어왔던 친구였습니다. 그러나 워낙 본인이 원하였기에 적응도 빨랐고, 재능의 발휘도 눈부셨습니다.
일종의 천재끼 같은 것도 엿보였는데 법을 공부해서인지 문체가 재기발랄하면서도 무게가 있어서 개인적으로도 그의 글을 좋아했습니다.
그래도 어느 조직이나 텃새라는 것이 있지 않겠습니까? 하루라도 늦게 입사하면 이등병이 같은 이등병이 아닌 것처럼 조직도 마찬가지죠. 그 친구도 그랬을 듯합니다. 회사 안에서 누군가와 적극적으로 어울리기 보다는 자신의 일에 더 빠져있었으니까요.
어찌어찌해서 신림동 포장마차에 둘이 앉았습니다.
많은 이야기끝에 갑자기 우리 둘 사이에 "원죄"라는 열쇳말이 턱하니 탁자에 올려져있었어요.
당시 아자씨는 이청준 문학에 빠져있었던터라 인간의 원죄에 대해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을 때 였는데, 그것을 내면 속에서 더 많이 구체화 시킨 것이 알고보니 이 친구였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무진의 안개처럼 막연하게 원죄의 개념을 낭만적으로 그려가고 있었다면 이 친구는 아픈 상흔의 구석 한 쪽에 그 단어를 가둬두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그의 내밀한 가슴 속으로 쑥쑥 빨려들어가서 일종의 동화가 되가는 신비체험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외로운 것이다, 라는 그의 말이, 그 구태의연한 상투성에도 불구하고, 그 밤 왜 그리 선연하게 가슴에 박혔는지 모릅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그가 울었습니다.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그는 어린 아이처럼 목메인 목소리로 말을 했어요. 자기 가슴 속에 너무나 크게 자리잡은 죄의식, 그 원죄를 자기는 씻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게 무어냐고 묻기 전에, 그는 아주 어린 시절 친구와 관련된 이야기를 했고, 내게는 하나의 에피소드로 들렸지만 그 자리의 엄숙함이, 그 친구의 진성성이 너무 지대해서 나는 한참을 아무말 못하고 소주잔을 들여다 보기만 했습니다.
지금 다시 그 자리에서, 그 친구의 중학시절 사연을 듣는다면, 그때처럼 ' 뭐 그 정도가지고'라는 말을 속으로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자씨는 신림동에서 본 그 친구의 눈물 이후로, 이 친구와 오랫동안 술친구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습니다. 눈물의 무게가 어떠하든 그 밤 그 눈물의 질감은 성인이 된 한 남자가 진정해 보일 수 있을 정도는 충분했으니까요. 최소한 내 눈에는 그러했습니다.
근 10년은 다 되어가는 이야기입니다. 역시 그와 나는 너끈히 소주 몇 병을 주기적으로 비우는 술친구가 되었습니다. 한번씩 나는 애 둘의 아빠가 된 그 친구에게 이렇게 놀립니다.
또 울어봐라, 이 자식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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