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은 한국 정치의 구조적 비극성과 사회의 정신적 폭력성이다

이경희330 2009. 6. 11. 00:37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나라가 충격에 휩싸였다. 정치적 이념을 같이했던 지지자들은 물론 갈등이 있었던 반대자들까지도 믿을 수 없는 일이라며 비통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갔나? 우선은 검찰의 과도한 수사와 언론의 무분별한 보도가 노 전 대통령에게 견디기 어려운 심리적 압박을 준 것으로 보인다. 청렴과 도덕성을 생명으로 여겼던 노 전 대통령에게 검찰이 뇌물수수와 비리라는 죄를 물어 수사의 칼끝을 대고 언론이 이를 연일 국민에게 대서특필하여 알리자 그 압박을 이겨내지 못하고 스스로 극단의 선택을 한 것 같다.

그러나 이보다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다. 바로 정치의 구조적 비극성과 사회의 정신적 폭력성이다. 우리나라 정치는 겉으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한 희생이라고 외치고 있으나 속으로는 통치권을 전리품으로 향유하는 집단 싸움의 성격이 강하다. 그리하여 선거 때마다 상대방을 끌어내리는 네거티브 전략이 난무한다. 일단 집권을 하면 과거 정권을 부정비리 세력으로 몰아 죄를 묻고 자신의 세력을 요직에 포진하여 권력과 이권을 나누어 갖는 비극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다. 이런 정치구조 속에 권력의 강력한 압력을 받아 검찰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자비한 사정의 칼을 휘두르고, 언론은 그들의 주장을 여과없이 보도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정권 죽이기’ 정치의 비극

한편, 우리나라는 사회의 정신적 폭력성이 강하다. 1960년대 이후 고속 성장과정에서 국민들은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에 상응하는 정신문화의 성숙은 미흡했다. 따라서 물질만능주의가 기존의 정신문화를 파괴하고 빈부격차를 심화시켜 사회를 분열상태로 만들었다. 여기에 맹목적 교육경쟁이 청소년을 입시의 노예로 만들고 지식을 자신의 영화를 위한 배타적 무기로 가르치고 있다. 그리하여 남을 배려하는 문화의식이 사라지고 상대방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쓰러뜨리는 정신적 폭력성이 강해지고 있다. 더군다나 민족과 국가를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회의식은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자 누군가가 공동의 공격목표를 정해놓고 여론몰이를 할 때 사회구성원 모두가 함께 돌을 던지는 집단적 사회폭력 행위가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스스로 설정한 도덕성에 포박되어 뭇매를 맞은 노 전 대통령의 아픔은 형언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노 전 대통령은 잘못이 없는 건가? 검찰이 밝힌 대로 총 640만달러의 뇌물수수가 사실이라면 잘못이 있는 것이다. 그러나 수천억원대의 비리가 만연했던 우리나라 정치풍토와 권력행사 구조로 볼 때 사회적 관용이 완전 불가능한 규모는 아니다. 설령 검찰이 사회적 용납이 어려운 규모의 비리로 판단했다 하더라도 최소한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를 갖추어 사실 확인 때까지 비공개 수사를 했다면 이번과 같은 국가적 참극은 막았을 것이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노 전 대통령이 민주화, 지역구도 타파, 정경유착 단절, 서민경제 건설 등을 위해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열정적으로 행동하고 과감한 정책을 폈다는 것이다. 따라서 노 전 대통령의 공과는 앞으로 역사가 평가할 일이다. 국민 손으로 뽑은 전직 대통령을 퇴임 1년도 안 되어 허물만 들춰내어 도덕적으로 사형선고를 내리고 정치적으로 무장해제한 후 급기야 법적처벌까지 내리려다 스스로 죽음을 택하게 만든 것은 역사에 대한 월권행위이고 우리 스스로에 대한 가해행위이다.

뼈아픈 반성·교훈 깊이 새겨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에 애도의 물결이 전국에서 일고 있다. 전직 대통령의 비통한 서거를 국민들이 가슴에 묻고 있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노 전 대통령의 서거를 참다운 민주주의 정치 실현, 따뜻한 경제사회건설, 남북간 공동번영 체제 구축 등을 위한 뼈아픈 반성과 교훈으로 가슴 깊은 곳에 새겨야 한다. 그리하여 온 국민이 뭉쳐 나라와 역사를 발전시키는데 꺼지지 않는 활화산으로 타오르게 해야 한다. 이것이 죽음으로 모든 것을 안고 떠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책무일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이필상 | 고려대 교수·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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