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는방

나를 위한 용서

이경희330 2010. 3. 6. 01:30
“나 그 사람 용서하기로 했어. 왠줄 알아? 내가 살고 싶어서.
내가 살자니까 그 사람 용서하는 길 밖엔 없더라구…”
얼마 전 TV 드라마에서 절규하듯 외치는 한 주인공의 대사다.

아마 작가가 ‘용서’가 뭔지 좀 아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
어릴적 교회에서 들은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라는 성경 말씀이
어려선 ‘휴~ 많이도 용서해야 하는 구나’라는 단순한 이해였지만,
살다 보니 ‘용서’라는 말이 우리에게 결코 쉽지 않은 과제임을 깨닫게 된다.

더 나아가 ‘용서하는 것’은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상대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밑에 신음하고 죽어가고 있는 자기 자신을 위한 일 임을 또한 절감하게 된다.

가끔 우린 뉴스를 통해 끔찍한 사건들을 심심찮게 접하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였더라…” “남편이 전 아내와 아들을 살해하고 자살했다…
””변심한 동거녀를 찾아가 그녀의 아이가 보는 앞에서 불을 질러 자결을 시도했다…”

이런 끔찍한 사건들을 볼 때마다 함께 따라오는 기사가 또한 있다.
“그 사람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평소에 말이 없고 조용하고 착한 사람이었어요…”
그럼 왜 이런 끔찍한 사건들이 착한 사람들을 통해 벌어지는 걸까? 그것도 항상 ‘가족’ 안에서…,
그건 아마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가장 기대한 사람에게 받은 상처가 제일 크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용서’와’상처’는 뗄 수 없는 관계임에 틀림없고, 자신에게 상처 준 사람을 향해 품는 분노는
가끔 스스로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을 만들어내는 힘이 있는 것 같다.

해결되지 않고 우리 가슴 깊숙이 묻어둔 상처! 그 상처가 결국은 우리를 또 더 깊숙한 상처 속으로 몰고 감을 알 수 있다.
평소엔 느끼지 못하기에 더 무서운 바이러스가 아닌가 싶다. 정말 상처가 깊은 사람들에게 “그냥 용서하세요.”라는
말이 얼마나 잔인한 충고인지 알지만, 그래도 말하고 싶다.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해서......“용서하라고.”

용서하지 않고 묻어둔 상처가 우리의 삶 전체를 먹어버린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겠는가?
그건 진정한 ‘pay back’이 아님을 빨리 깨달았으면 좋겠다. 상처가 크든 작든
그것은 당사자에겐 아픔이고 싸매어져야 할 부분이다.
 
더 깊숙이 곪아가기 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