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지지 기독교인은 한국 내 모든 종교와 융화적이다. 전통 지향성 아래에 ‘유교 불교’등의 각종 종교와 어우를 수 있는 국민성을 우선으로 가르쳤다. 김영삼 지지기독교인은 기독교란 명분하에서 유교를 맑스주의의 ‘중세적 실정성’으로서 지적하여, 안에서 종교분쟁을 전문적으로 일으켰다.
박은조 사건은 김영삼 지지기독교인들이 안에서 얼마나 전통 파괴하여 종교 분쟁을 일삼았는가를 말해준다. 안에서 한 일이 밖에서 타종교에 왜 그러한 비슷한 일이 없겠는가 싶다. 대한민국 국민의 전통적 종교 아우르지 못하는 것들이 외국 나가서 도대체 뭐하는 짓들인가?
종교를 아우르는 박정희는 전통지향성을 살리는 안정적 발전의 우익이고, 종교를 아우르지 못하는 김영삼은 위장우익 위장전향 무늬만 우익에 실질적 급진적 변혁론자일 것이다. 꼭, 기독교가 종교적 신념을 잃고서 한국 전통종교를 긍정하라는 말은 아니다. 캐톨릭 이론서를 보면 얼마든지 김영삼스럽게 종교배타적이어야 할 이유가 없어진다. 이미, 1980년대 반공교육 시절의 국민교육은 ‘영삼스러움’ 없던 때의 전통지향성을 고수하고 있다.
전통지향성을 파괴하는 김영삼은 일차적으로 ‘진보’에 최종적으로 남고 싶어하는 입장에 기인한다. 김영삼의 하수인 이모가 성균관장을 만났을 지라도, 이는 이모의 불상 앞에서의 ‘절’에 가깝지, 김영삼 지지 기독교인의 나라 안팎의 종교분쟁 메이커 요소를 극복하는 프로그램 마련의 행동은 아닐 것이다.
절이 빨리 망하게 해주세요 하는 이모와, 불상 앞에 절을 하는(우상숭배하는) 이모 중에, 어느게 진짜일까? 우리는 너무 쉬운 것을 너무 어렵게 헷갈리고 있다.
‘선교’에 꼭 ‘맑스주의’ 전위분자의 비장함을 넣으려는 김영삼 지지 기독교인의 ‘지랄적 특성’은, 박은조의 3천명 순교론으로 드러났다. 알사람은 알지만 90년대 초반 분신의 천국은 김영삼과 김대중의 정신적 지주인 함석헌 기반의 해방신학자들의 반영이다. 맑스주의 전위분자의 비장함이 깔린 선교가 선교인가? 간첩 파송이지.
김영삼 지지기독교인은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몰락할 것이나, 기독교인은 몰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과 맑스주의를 겹쳐서 읽는 습관을 고치는 교회 개혁 사상으로 ‘교회 안’의 영삼스러움 척결운동이 벌어질 미래가 눈에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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