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탈레반 무장세력에 억류됐던 피랍자들이 생사를 오가는 극한상황 끝에 풀려났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계기로 우리 정부의 입지는 국제사회에서 상당한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게 됐다.
가장 큰 부담은 우리 정부가 ‘테러단체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국제사회의 불문율을 포기했다는 점이다. 우리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해도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이처럼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긴다는 점을 인지했으면서도 직접 협상을 강행한데는 국제사회 원칙보다 국민 생명보호가 우선이라는 입장 때문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30일 “미국 등은 자국민이 희생되더라도 테러단체에 양보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수십년간 지키고 있지만 우리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가 살해된 뒤부터 탈레반과의 대면협상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등 교섭전략을 바꿨다. 특히 납치발생 지역에서 납치단체와 정부가 직접 협상을 벌인 것은 한국이 유일하다.
실제로 이번 사태가 후유증을 남길 소지는 충분하다. 위험지역 또는 분쟁지역에서 우리 국민이 테러단체의 집중 표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 등은 테러단체와 협상을 하면 당장 급한 불은 끌 수 있을지 몰라도 결과적으로 더 큰 희생을 불러일으킨다는 판단에 따라 협상불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정부는 또 아프간을 여행금지국가로 지정하고 아프간 당국의 적대세력인 탈레반을 협상 파트너로 인정한 데 따른 외교적 부담도 해결해야 한다. 향후 발생할지도 모를 아프간 당국과의 갈등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주, 동북아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았던 서남아 지역에서 국가 이미지를 회복하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아울러 예정된 철군이었다 해도 평화재건을 명분으로 파견했던 병력이 철수되면, 향후 우리 군의 대외 평화유지활동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우리 국민 안전과 관련, 재외공관을 중심으로 유사 사례가 재발되지 않도록 만반의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재외국민 스스로가 신변 안전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연간 해외여행자가 1100만명을 넘어선 만큼 정부가 모든 위험요소를 사전에 차단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와 별도로 사태 초기에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 긴급담화를 발표하고, 한국군 철수까지 시사한 것이 결국 이번 협상을 탈레반이 주도하는 결과를 낳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테러단체와의 접촉은 낮은 수준부터 단계적으로 올라가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 정부는 최고 수준부터 사실상 협상을 시작했다. 급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해도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다.
남혁상 기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