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발독재 11

박정희 미화를 위한, 보편적 역사관 거부를 경계한다

한 진보경제사학자가 "한강의 기적 평가가 왜곡됐다"며 박정희 개발모델에 대한 진보학계의 부정적인 평가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는 10월 11일자에서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저서를 소개하는 식으로 문화면에 이 교수의 이런 주장을 기사화해 얼굴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는데, 중진학자의 연구 성과의 논리적 주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일부 있어 단편적이지만 기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이념 배제하고 역사를 평가하라? 이 교수는 객관적인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볼 것을 주문하면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임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경제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

박정희 고찰 2008.06.21

전태일이 박정희에게 보낸 편지!

존경하는 대통령 각하 … … 시다공들은 평균 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서 … 하루에 90원 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1일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 저는 … 도저히 이 참혹한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 1개월에 … 2일을 쉽니다. 이런 휴식으로썬 아무리 강철같은 육체라도 곧 쇠퇴해버립니다. … 숙련여공들은 … 대부분 …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 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숙련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 2명이나 3명 정도를 … 지정하는 병원에서 형식상 … 마칩니다. X레이 촬영 시에는 필름도 없는 촬영을 하며 아무런 사후 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 나라의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실태입니까? … ..

기록의 역사관 2008.06.21

“박정희 개발독재, 美化마라”

진보적 소장학자의 대표적 인물인 조희연 성공회대 교수는 지난 19일 오전 10시 서울 중앙대에서 ‘해방 60년의 한국사회-역사적 궤적, 현재 속의 미래, 학문 재생산’을 주제로 열린 학술단체협의회 연합심포지엄에서 소위 ‘박정희 시대’ 재평가 논의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민주개혁세력의 헤게모니 약화가 주체적 원인 조희연교수는 박정희 재평가를 진행하기에 앞서 민주개혁세력과 진보담론의 관성화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자기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는 전제하에 조 교수는 그동안 소위 민주화 이후 집권한 민주개혁세력 및 진보담론의 관성화와 자기정체, 현실안주에 매몰된 채 개방적인 확장과 성찰적 전환을 이루지 못한 ‘주체적 문제’에 대해 통렬하게 비판했다. 이 과정 속에서 민주진보담론의 헤게모니가 약화되면서 소위 우파..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와 박정희 신자들의 껍딱 벗겨내기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박정희는 죽어서 신화를 남겼나 봅니다. 잊을만 하면 매스컴을 통해 역대 대통령들 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을 받는 인물로 되살아나곤하는 박정희를 생각하면, 또 그 때의 국민들이란 게 다름 아닌 노동자나 농민들을 포함한 서민들임을 떠 올리면,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을 받는다"는 말이 내포하는 모순까지 함께 떠 올라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로 인해 권력(그것이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국가권력이든 간에)을 얻게 된 부류야 그렇다 치고 그런 권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수의 서민들 즉 국민들이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장은 "박정희가 못사는 우리 국민들을 잘 살게 해 주었다"는 것..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가 국가경제의 영웅?

박정희가 다른 건 몰라도 먹고 사는 기초만큼은 확실하게 해주었다는 것 하나가 박정희에 대한 우상화와 심지어는 그의 무지몽매한 딸의 인기의 동력이다. 사실상 진보진영에서도 박정희의 공과는 분명하게 구분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걸 보면 지금의 박정희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 쓰일 역사에도 중요한 작용을 할 것임은 분명하다. 박정희와 IMF, 그 뗄레야 뗄 수 없는 1962년 제1차 경제 개발 5개년 계획을 추진하면서 박정희 정부는 한정된 자원과 재화를 사용하여 경제를 일으키려 한다. 결국 국가의 모든 재원을 원조물자경제 체에서 수출 주도형으로 바꾸려는 노력 즉, 수출을 장려하는 특정한 분야에 집중하게 하고 이는 결국 일부 집단에 특혜를 주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뭐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박정희 고찰 2008.06.21

물질중심주의 폐해, 박정희 정권의 산물

물질중심주의 폐해, 박정희 정권의 산물반공, 안보 이데올로기 끊임없이 재생산...개발독재 가능하게 만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에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숭배의 대상이지만, 반대편에선 무자비한 독재자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피차 상대방에 대한 설득은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박정희 정권의 공과에 대한 집단적 성찰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게 또한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이를 통해 '박정희 진실'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관련 학술회의 지역에서 처음 열려 박정희,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인가. 또한 공(功)과 과(過)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대규..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와 경제개발

1960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의 쿠데타는 한국 역사를 크게 뒤바꾸어 놓았다. 그의 독재는 분명한 범죄이고 박정희는 분명 존경은 하기 힘든 인물이지만 경제개발을 이룬 사람이기도 하다. 장면 정권은 경제개발계획을 세우고 추진하려 했다. 김일성 역시 개발을 시작했다. 그 때 박정희는 쿠데타를 일으키고 장면의 정책, 김일성의 정책, 메이지 유신을 모두 참조해 경제개발에 착수했다. 박정희는 화려한 성공을 거두었다. 우선 박정희에 대해 잘 알 필요가 있다. 한국 현대사에 가장 큰 변수가 된 사람은 김일성과 박정희라고 볼 수 있다. 박정희는 군인이었고 독재자였다. 그리고 경제개발에 성공했다. 수하르토, 후지모리와 상당히 유사한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박정희는 장면, 김대중 씨 같은 민주 투사 출신 대..

박정희 고찰 2008.06.21

박정희 시대 경제의 명과 암

1. 들어가며 1999년 7월 21일 대우그룹이 마침내 자금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정부와 금융권에 4조원 규모의 자금지원을 요청하면서 박정희 시대의 경제 파라다임은 사실상 종언을 고했습니다. 박정희의 유신시대를 통해 거대재벌로 성장한 대우그룹이 결국 21세기를 눈앞에 둔 시점에서 끝내 좌초하고 만 것은 그러한 사실이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이제 박정희 시대의 경제관이라는 자체가 완전히 종언을 고했음을 웅변하는 것이라고 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박정희 시대의 이른바 “고도성장”이라는 신화가 너무나 인상적이었기 때문일까요?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박정희-유신 시대의 잔영에서 헤어나오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거기에 1997년 한국의 금융공황이후로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외환위기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피폐해..

박정희 고찰 2008.06.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