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고찰

물질중심주의 폐해, 박정희 정권의 산물

이경희330 2008. 6. 21. 12:57

 

물질중심주의 폐해, 박정희 정권의 산물반공, 안보 이데올로기 끊임없이 재생산...개발독재 가능하게 만들어 

 

박정희 전 대통령이 죽은 지 3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그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을 달린다. 한쪽에선 '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숭배의 대상이지만, 반대편에선 무자비한 독재자일 뿐이다. 따라서 지금 피차 상대방에 대한 설득은 무의미하다. 그렇지만 박정희 정권의 공과에 대한 집단적 성찰은 반드시 거쳐야 한다. 그게 또한 남아 있는 자들의 몫이다. 이를 통해 '박정희 진실'에 보다 가까이 접근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박정희' 관련 학술회의 지역에서 처음 열려

 

박정희, 그가 우리에게 남긴 유산은 과연 무엇인가. 또한 공(功)과 과(過)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해 주는 대규모 학술회의가 대구에서는 처음으로 열렸다.

 

18일 민주연구단체협의모임은 '1960, 70년대 한국사회와 민주화'를 주제로 학술심포지엄을 열고, '부활하는 박정희 신화'를 냉정하게 되짚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우리가 막연하게 인식해 온 박정희 정권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해 봄으로써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갈등과 혼란을 극복하고 건설적 미래를 추동하자는 게 심포지엄의 목적.

 

이날 행사는 '박정희 정권의 지배구조와 지배이데올로기(정해구)' '박정희 정권의 경제성장(김정주)' '박정희 정권의 지배체제와 재생산구조(김종호)' '박정희 정권의 유산-사회적 의식과 생활세계를 중심으로(유영국)' 등 네 편의 주제발표를 하고 난 뒤, '부활하는 박정희 신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두고 활발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 가운데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민주주의사회연구소 유영국 연구원의 주제 발표. 여타 논문들이 그동안 비교적 활발하게 논의돼 왔던 박정희 정권의 통치이데올로기를 중점적으로 다룬 데 반해 유 연구원은 박정희 정권이 우리 국민들의 의식세계, 그 중에서도 경제적으로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집중 탐구한다. 곧, 오늘날 한국인들의 삶에 커다란 의미를 던지고 있는 물질적 풍요와 부의 문제에 관해 본격 성찰을 시도했다.

 

물질숭배주의는 박 정권 유산

 

유 연구원은, 오늘날 도덕관념의 붕괴와 비극적 범죄의 원인이 되고 있는 배금주의, 물신숭배, 부자증후군, 성장지상주의, 향락주의 등의 물질중심주의 폐해는 박정희 정권기의 고도성장과 경제개발지상주의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한다.

 

"취약한 정권적 정당성을 만회하기 위한 수단으로 오로지 민생고 해결과 경제개발에만 극도로 매달린 결과가 한국인들의 의식세계에 물질주의로 획일화되어 나타났고, 그에 따라 오늘날 한국인들의 일상적 생활세계는 물질주의에 젖어있을 수밖에 없다"는 게 그의 결론이다.

 

이에 따라 그는 박정희 정권의 공으로 인식되고 있는 '개발독재의 눈부신 성과'에 대해서 신랄하게 비판한다. 박 정권은 국민 개개인의 고유한 의식 성향이 어떠하든 간에, 반공-안보주의를 중심으로 삼는 사회의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강제하고, 한편으로는 반공-안보 이데올로기를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데 몰두함으로써 개발독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말하자면, 박 정권은 개발독재의 강행에 따른 어떠한 민중 억압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민중들이 희생을 감내할 수 있는 사회 심리적 조건의 형성에까지 반공-안보주의를 활용함으로써 개발독재적 정치 경제구조의 총체적이고 유기적인 체계화로 나갔다 것이다.

 

이로 인해 저곡가와 저임금과 살인적 작업환경의 세계 최장시간 노동에도 농민과 노동자는 '묵묵히 일하는 다수'로 순치되거나 혹은 체념해 나갔으며, 정권 반대세력은 온갖 법규를 다 동원해 제압하고, 처벌함으로써 국민들의 의식세계를 획일화시킨 결과로 이뤄진 게 '개발독재 성과'라는 게 비판의 요지다.

 

교육, 문화도 경제에 종속

 

특히 유 연구원은 오늘날 한국인들이 구체적 삶의 방식을 물질주의에서 찾게 된 원인을 박 정권의 물질적 경제성장의 급속성에서 찾는다. 그에 따르면 인간이 관념과 물질의 통일로서 살아가는 한, 물질적 요소의 고속성장이 아무리 가능하다고 해도 관념적 요소의 적응과 발전이 지체된다면 올바른 삶이 될 수 없다.

 

따라서 공동체 구성원의 정신적, 물질적 양측면의 삶이 조화롭고 균형 있게 조절되도록 이끌어 가는 것은 국가 역량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도 박정희 정권은 경제성장의 성과에만 급급해 그 성장의 급속성이 가져올 해악과 독성은 거의 인식하지 못함으로써 오늘날의 비극을 초래했다고 비판한다.

 

곧, 정신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가치의 다원성은 극렬한 방식으로 봉쇄 당한 상황에서, 경제개발의 성과로 나타난 물질적 풍요와 마주치게 되었을 때, 국민들은 물질주의라는 외화내빈에 손쉽게 안주하고 만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그런 측면에서 그는, 현재 우리사회의 비이성적 교육열도 그 뿌리가 박 정권에 있다고 본다. 고속성장에의 집중으로 물질주의가 한국인의 모든 삶에 절대적인 가치기준으로 군림하게 되면서 결국 교육이라는 정신적 가치 구현과 재생산도 물질적 가치추구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

 

"오늘날 한국사회의 교육열은 정신의 성숙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물질의 풍요를 위한 교육열이며, 교육 자체가 물질주의 졸부들의 노예처럼 변질되어 버렸다"고 진단하고 있다.

 

아울러 그는 박 정권의 문화정책에도 비판의 화살을 돌린다. 국가의 문화정책은 인간의 삶과 세계에 대한 구성원들의 반성적 사고능력과 주체적 비판능력 육성이 본질이 되어야 함에도 이에 대한 정책철학은 전무했고, 오로지 정치적 이용물로서만 가치를 둠으로써 국민들의 정신적, 문화적 소양의 근대화에는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짓는다.

 

박정희 유산 청산싸움 시작해야

 

또한 그는, 이른 바 재벌공화국, 서울공화국, 학벌공화국, 투기공화국, 부패공화국, 님비공화국, 성형공화국 등 우리 스스로를 자조케 만드는 고질적 병폐들 역시 우리가 물질주의적 생활세계에 빠져든 때문이라고 지적하고는, 그 과(過)를 박 정권에 떠넘긴다.

 

'압축혁명'이나 '한강의 기적'으로 불리는 박정희 정권의 급속한 경제성장의 성과가 배고픔과 가난함을 없애 준 것은 사실이지만 대신 졸부의 인생관과 세계관과 생활양식을 넓고도 깊게 심어준 더 큰 문제점을 낳았다는 것이다.

 

"박정희가 외치던 '조국 근대화'는 돈과 상품과 공장과 기계만의 근대화"라고 정리한 그는, "개발독재 방식의 자본주의 유산은 한 두 정권의 개혁 작업으로 쉽사리 청산될 성질의 것이 아닌 만큼, 내 안과 내 밖에 퍼져 있는 박정희 정권의 유산을 향하여 전방위에 걸쳐 싸울 것"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