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더니 박정희는 죽어서 신화를 남겼나 봅니다. 잊을만 하면 매스컴을 통해 역대 대통령들 중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을 받는 인물로 되살아나곤하는 박정희를 생각하면, 또 그 때의 국민들이란 게 다름 아닌 노동자나 농민들을 포함한 서민들임을 떠 올리면, "국민들로부터 가장 추앙을 받는다"는 말이 내포하는 모순까지 함께 떠 올라 씁쓸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박정희로 인해 권력(그것이 정치권력이든, 경제권력이든, 국가권력이든 간에)을 얻게 된 부류야 그렇다 치고 그런 권력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다수의 서민들 즉 국민들이 그를 추앙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박정희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대표적인 주장은 "박정희가 못사는 우리 국민들을 잘 살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못살던 우리 국민들이 잘 살게 된 것은 절대 박정희 때문이 아닙니다. 그 시기를 지내던 우리 부모님들의 피와 땀이 밴 노력이 오늘날 우리 삶의 바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전태일 아저씨가 고발한 대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하루 18시간에 달하는 살인적 노동을 군말 없이 해 내고, "잘 살아 보세"며 밤낮 가리지 않고 일해 생산량을 늘린 일차산업 종사자들 그리고 박봉에도 불평불만 없이 맡은 바 일을 묵묵히 해 낸 수많은 사람들, 그 들이 바로 오늘날 우리 삶의 바탕인 것입니다. 박정희가 우리를 잘 먹고 잘 살게 해 준 게 아니라 우리 부모, 조상님들이 오늘날 우리 삶의 바탕이 된 것이라는 이야깁니다.
그런 그들의 피와 땀이 밴 돈을, 기업하던 이들은 '정치자금'이랍시고 박정희에게 헌납했고 다시 박정희는 그 돈을 뿌려 휘하의 졸개들을 부렸습니다. 물론 졸개들 스스로도 몇 몫 챙겨먹을 수 있는 권력까지 함께 주었지요. 기자들 앞에서는 농민들과 막걸리를 마시다가도 밤이 되면 딸 같은 여성들을 옆에 끼고 씨바스 리갈을 빠개던 사람이 박정희입니다. 박정희에게 있어 농민이란, 단지 자신의 사진빨을 위해, 다시 그 사진빨을 통해 농민과 그의 아들 딸들의 감성을 자극하여 권력을 재생산하기 위한 껍데기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있으면 잡아다가 ‘껍딱을 벗겨 버리는 것’이 박정희와 그 졸개들이 일상적으로 벌이는 일이었지요. 껍딱이 벗겨지고 싶지 않거든 주는 것이나 잘 받아 처먹을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박정희가 잘 살게 해 준 대상은 일반 서민들이 아닙니다. 거대 재벌이나 그를 추종하던 정치세력들 그리고 고급 관료들이 박정희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받은 주요 종자들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소위 박정희를 옹호하는 서민들의 경우 몇 가지 모순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박정희를 옹호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反할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그들은 스스로를 민주주의에 반하는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것입니다. 박정희를 옹호하면서도 자신이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는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속에 그 스스로를 얽어매고 있는 형국인 것입니다.
둘째. 현재의 재벌 중심 경제구조는 박정희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그렇기에 박정희의 경제성과를 옹호한다면 이는 필연적으로 그가 일궈놓은 경제구조 역시 옹호하는 것과 같습니다. 박정희의 경제성과라는 게, 그런 경제 구조 속에서 이룬 것이니까요. 그렇다면 박정희의 옹호자들은 곧 재벌 중심의 경제구조를 옹호하는 사람들이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결코 재벌이 아닐 것입니다. 기껏해야 재벌의 시다바리 정도이거나 아니면 죽으나 사나 재벌과는 반대 입장에 놓여 있을 노동자에 불과 하겠지요. 그들만 그럴까요? 그들의 부모 형제 역시 마찬가지였고 마찬가지이겠지요. 이 얼마나 모순입니까? 박정희 옹호하느라고 내 부모 내 형제 그리고 나에 반하는 입장에 서야 한다는 게.
셋째, 박정희를 옹호하는 것은 곧 그가 한국사회에 뿌려놓은 모든 불합리한 것들, 부조리한 것들에 대해 옹호를 하는 것과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 스스로 노동자, 농민이자 그들의 자손일 박정희 옹호자들은 박정희로부터 유래한 그런 것들을 과연 얼마나 옹호할까요.
요즘 정치권 욕하지 않는 사람은 드물 것입니다. 관료들 하는 것 보고 잘 한다고 박수치는 사람도 드물 것입니다. 기업에서 노동자들을 자신들 편리할 대로 마구 짜르는 것에 대해 달가워할 사람도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에 대해 그들, 박정희 옹호자들은 어떨까요? 박정희가 남긴 그런 유산에 대해 군말 없이 박수를 보내고 있을까요? 아마도 아닐 것입니다. 아니라는 자체로 그들은 또 하나의 모순에 빠져 있는 셈이지요.
물론, 이런 평가가 곧 박근혜에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 역시 박정희 시절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박정희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요. 혈통에 근거한 연좌제식 발상은 접어 두더라도 말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녀 스스로는 위에 열거한 모순 속에서 살고 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 점에서 그녀는 확실히 박정희의 혈통을 이어 받아, 결코 서민이 아니니까요.
박정희의 향수에 젖어 있는 양반들은 우선 자체 모순부터 해결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모순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뭔 소릴 해 봤자 씨잘데기 없는 소리에 불과할 뿐이니까요. 그런 분들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부터 차근차근 곱씹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혹시 압니까? (자신을)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박정희가)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건 전과 같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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