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고찰

박정희 미화를 위한, 보편적 역사관 거부를 경계한다

이경희330 2008. 6. 21. 14:04
한 진보경제사학자가 "한강의 기적 평가가 왜곡됐다"며 박정희 개발모델에 대한 진보학계의 부정적인 평가에 강한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는 10월 11일자에서 이대근 성균관대 명예교수의 저서를 소개하는 식으로 문화면에 이 교수의 이런 주장을 기사화해 얼굴과 함께 비중 있게 보도했는데, 중진학자의 연구 성과의 논리적 주장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내용이 일부 있어 단편적이지만 기사를 중심으로 몇 가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정치적 이념 배제하고 역사를 평가하라?

이 교수는 객관적인 우리 역사를 제대로 볼 것을 주문하면서 "1960년대 이후 한국이 거둔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 것임에도 국내 일각에서는 그것을 인정치 않으려는 경향이 있다"고 불만을 제기하고 "경제에 대해서까지 이처럼 무모하게 자행되는 이념적 왜곡과 편향은 마땅히 바로잡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업적인 박정희 경제보다는 정치적 입장이나 민족주의적 이념이 개입되어 국민들을 자기역사의 객관적 사실에 눈을 멀게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역사란 한 시대를 지배한 정치가의 이념과 동시대를 산 이름 없는 민초들의 피땀과 눈물이 범벅이 된 공동작업의 산물이다. 더욱이 박정희는 자신의 정통성 없는 부도덕한 권력을 현란한 경제적 수치로 정당화하려 했으며 이를 철저히 이념화했기 때문에 이미 오염된 수치를 근거로 한 경제학적 접근은 오히려 순수성마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정치적 이념 등을 배제하고 역사를 평가하라고? 이는 보편적인 역사관을 거부하고 전체와의 연관 없이 부분만을 강조하려는 과학으로서의 역사만을 열렬히 주장하는 일부 실증주의자들의 천박한 역사관과 같다.

여기에 그는 장제스 등 동아시아 국가 지도자들이 산업화 초기에 독재를 모두 했는데 "왜 박정희 대통령만 매도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인다. "저 차도 위반인데 왜 내 차만 잡느냐?"는 차라리 길거리에서 교통경관에게 항의하는 소시민의 핏대어린 목소리쯤으로 흘려버리고 싶다. 도덕은 역사평가의 기준이다.

그리고 그는 장면 등 다른 지도자라도 그 정도의 경제성과는 이룰 수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그런 추론은 무책임하고 과학적이지도 않다"고 가능성을 일축해 버린다. '무책임' '비과학적'-, 비판론자들을 향한 그의 분노는 무섭다.

60년대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없었다?

그런데 이토록 거침없는 이 교수 자신의 주장은 과연 편협한 정치적 이념 등이 섞이지 않은 과학적 타당성을 확보한 것일까? 그는 60년대 이후 한국의 경제발전은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는…"이라고 주장하는데 그 근거가 궁금하다. 독일,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당시 우리와 비슷한 길을 걸었던 동아시아 네 마리 용도 결코 우리나라에 뒤지지 않는 높은 경제성장을 하고 있다.

일본은 1955년부터 15년간 연평균 15.1%라는 경이적인 경제성장률을 기록함으로서 당시 세계가 놀랐으며, 이후 세계경제대국 2위에 도약, 서구에서 일본을 벤치마킹하자는 열기가 일어난 일도 있었다.

그리고 2000년 아시아 개발은행 자료에 의하면 1965년부터 1980년까지 동아시아 주요국의 연평균 GNP 증가율은 싱가포르가 10.1%로 가장 높았고 대만이 9.8%, 한국 9.5% 그리고 홍콩 8.6%의 순서로 되어 있다. 같은 기간 동안 위 국가들의 실질경제성장률은 일본 10.4%이고 싱가포르는 8.5%, 대만 7.5%, 한국 6.8%, 홍콩은 6.2%로 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 수출은 공업화와 고도성장의 견인차였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쟁 후유증 등으로 수출기반 시설이 거의 없어 작은 양의 수출만 있어도 수출증가율은 놀라웠다. 1965년부터 1980년도까지 우리나라의 수출증가율은 35%로 같은 기간 중 대만의 28.7%보다 월등히 앞섰다. 당시는 세계적인 호황기로 국제분업에 의한 시스템으로 거의 주요 아시아 국가들이 두 자리 숫자의 높은 수출증가율을 보였다.

따라서 한국만이 수출을 잘했던 것처럼 알려진 것도 옳지 않다. 1980년도 세계수출시장에서의 주요 아시아 국가별 점유율을 보면 일본이 6.48%로 단연 선두이고 국가의 규모가 작은 섬이나 도시국가에 불과한 대만과 홍콩이 각각 0.99%, 싱가포르는 0.97%이고, 중국 0.9%, 한국 0.87%다.

후발공업국들의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이런 높은 수출실적은 결국 선진국에 의한 종속경제를 의미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초에 수출 10억 달러를 달성하고 7년 후인 1977년에 수출 100억 달러를 달성, 명목상 높은 경제성장률을 동인하지만 수출을 위해 자본과 원료 그리고 중간재까지 일본 등 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높은 수출증가는 곧 무역수지적자를 의미했고, 우리가 수출을 하면 하는 만큼 수입도 늘어나 경상수지를 크게 악화시켰다.

1950년대까지 우리의 무역적자는 원조로 메웠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1980년도까지 우리나라의 경상수지는 1977년도 한 해 중동건설붐으로 1200만 달러의 흑자를 잠깐 실현했을 뿐 줄곧 적자였고 그 적자를 차관으로 충당해 나갔다. 독일이 1952년에 이미 무역수지 균형을 이루었고 일본이 1960년대 중반부터 경상수지가 흑자 기조로 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껍데기뿐인 졸속경제의 상징

구조적인 모순에 의한 수출기업의 채산성을 위해 저임금 저곡가 정책으로 일관하던 박정희는 사회계층간 갈등과 국제환경변화에 의한 경제위기를 극복하려고 중화학 공업화를 내세우지만 무분별한 중복투자 등으로 엄청난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고 결국 정경유착에 의해 태어난 재벌은 훗날 외환위기의 주범의 하나가 된다.

미국의 지원 하에 불안정한 정치 환경 속에서도 경제성장을 위해 꾸준히 선진기술체화를 통한 기술개발로 조기에 무역수지를 개선하고 세계 2, 3위의 경제대국이 된 독일이나 일본에 비하면 일본 따라하기식 박정희의 19년 모방경제는 오로지 자신의 정권 안보를 위해 눈앞의 수치에만 매달린 껍데기뿐인 졸속경제의 상징으로 변질되어 버렸다.

따라서 박정희의 개발독재가 아니었으면 우리의 근대화도 없었을 것이라는 일부의 주장은 전연 타당성이 없고 유구한 역사를 지켜온 우리 민족에 대한 모독이다. 1997년 아시아에 불어 닥친 외환위기 때도 박정희의 다른 얼굴, 정경유착의 산물인 재벌이 설쳐댄 태국, 말레이시아와 같은 국가들은 예외 없이 외환위기를 맞았지만 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대만, 홍콩, 싱가포르 등 한국을 제외한 재벌이 없는 아시아 용들은 외환위기를 겪지 않았다.

1960년대 들어 미국은 공산주의로부터 우방과 제3세계를 보호하기 위해 유럽에서처럼 많은 경제 원조를 제공하며 근대화를 독려했다. 특히 한국은 한 미 일 안보체제 틀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었고 따라서 이미 장면 정권시절에 미국의 동의 아래 경제개발계획안을 확정해 놓고 실행에 옮기려던 중 군사쿠데타를 맞게 되었다.

한강의 기적은 과대포장돼 있다

따라서 박정희가 없었어도 경제발전의 속도는 정도의 차이가 나겠지만 우리 민족의 역량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다른 아시아 개발국들처럼 반드시 경제에 성공을 했을 것이며 오히려 민주주의 희생이라는 값비싼 대가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1960년대는 자본주의 200년 역사상 유례없는 호황기였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반민족자이자 독재자인 박정희를 미화하기 위하여 그의 경제를 정치 등의 이념과 분리해서 평가해야 한다는 반역사적인 주장을 경계해야 한다. 과거를 냉정히 통찰하면서 오늘의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하고 미래를 준비하려는 보편적인 역사관이 절실하다.

지난 여름에도 한 대학교수가 "박 대통령은 밥솥에 밥을 가득 채워…" 하며 솥단지 깨지는 소리로 박정희를 칭송하더니, 영국에 체류 중인 한 경제학자는 "밖에 나와 보니까 박 대통령이 마셨다는 양주 시바스리갈이 값비싼 술이 아니더라"면서 그의 도덕성에 분칠을 하려고도 했다.

그러나 박정희가 낮에는 밀짚모자 눌러쓰고 농민들과 막걸리잔 나누지만 밤이면 젊은 연예인들과 안가에서 질펀하게 양주마시며 일본군가 소리 높이 불러댈 때 우리 국민소득은 불과 1000달러를 넘어섰을 때였고 노동자와 농민들은 허리띠를 졸라 매고 삶에 쫓기고 있을 때였다. 참고로 작년 북한의 국민소득은 800달러 남짓이었다.

개인 박정희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대한민국 부실공사, 한 사람의 이름뿐인 한강의 기적은 지나치게 과대포장되어 있다. 오늘 박정희가 없어도 KTX는 힘차게 달리고 있고, 인천국제공항에는 뜨고 내리려는 비행기 소리로 요란하다. 인간과 역사에 모두 등을 돌린 박정희, 박정희 숭배는 역사에 대한 도전이고 자기모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