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평양에서 만난다. 남북은 8일 오전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28일부터 30일까지 2박 3일간 평양에서 개최된다고 동시 발표했다. 지난 2000년 6월 제1차 남북정상회담이 열린 지 만 7년 만이다.
정부는 이날 오전 10시 청와대 춘추관에서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김만복 국정원장, 이재정 통일부 장관의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공식적으로 밝혔고, 북한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남북정상회담 개최 사실을 공식 발표했다.
정부에 따르면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달 초 김만복 국정원장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 간 고위급 접촉을 제안한 데 대해 북한 초청에 의해 김 원장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달 2~3일, 4~5일 두 차례 방북해 협의 과정을 거쳐 합의 됐다.
북측은 김 원장의 2~3일 방북에서 "8월 하순 평양에서 수뇌상봉을 개최하자"고 제의했고, 노 대통령은 북측의 제안을 수용했다. 김 원장은 4∼5일 2차 방북에서 대통령 친서를 북측에 전달했고, 이에 따라 남북은 김 원장과 김양건 통일부장 명의로 `8월 28∼30일 평양에서 제2차 정상회담을 개최한다`는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다.
백종천 실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양 정상이 한반도 평화 정착 문제를 허심탄회하게 논의함으로써 군사적 신뢰구축 조치가 확대되고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발판이 마련 돼 남북관계가 평화적·안정적으로 지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남북정상회담 개최 의의를 설명했다.
이재정 장관은 "회담에서 논의될 의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로 북측과 협의 중"이라며 "다음주부터 차관급의 준비 접촉을 개시한다"고 말했다.
◈ 한나라당 반대 "판 흔들기 술책, 왜 지금이냐"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범여권이 일제히 환영하는 반면, 한나라당은 반대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특히 백 실장은 정치권의 반발을 의식한 듯 "이번 정상회담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자연스레 합의한 것으로 전혀 국내 정치와 무관하다"고 밝혔지만 한나라당의 반발은 거세다.
한나라당은 남북정상회담에 대해 `대선용 이벤트`라 규정하고, "시기와 장소, 절차가 모두 적절치 않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발표 시기가 오는 19일 한나라당 대통령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이고, 개최 시기 역시 경선 직후여서 대선을 겨냥해 정치적으로 기획된 이벤트라는 것이다.
나경원 대변인은 정부 발표 직후 기자회견을 갖고 "임기말의 대통령이 대선을 앞둔 시기에, 지난 정상회담에 이어 또다시 평양이라는 장소에서 밀행적 절차를 통해 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한 것에 대해 심히 우려를 표시한다"며 "계속 군불을 지펴왔으니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나 대선을 앞둔 마당에 무슨 흥정과 거래를 하려고 남북정상회담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 대변인은 이어 "현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는 것이 타당한지 의문"이라며 "대선을 4개월 정도밖에 남겨놓지 않은 터에 선거판을 흔들어 정권교체를 막아보겠다는 술책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끝으로 나 대변인은 "우리는 새로운 대북정책을 통해 남북정상회담이 한반도 비핵화와 남북한 평화정착을 위해 도움이 된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지만 현 시점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린다고 해서 기대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말했다.
◈ 빅3 반응-李 "우려", 朴 "원칙", 孫 "환영"
이번 정상회담에 대해 범여권이 일제히 환영의 뜻을 표하고 한나라당이 반대 입장을 밝힌 것처럼 대선 빅3의 반응도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나 한나라당의 이명박 경선 후보와 박근혜 경선 후보는 당의 확고한 입장과는 달리 신중하게 접근했다.
한나라당이 정부 발표 직후 부리나케 입장을 표명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후보 두 주자의 입장이 오후 두 시가 돼서야 나온 것은 그들이 당의 입장을 따르기도 거스르기도 힘들었다는 고민을 드러낸다.
이명박, "뭐가 그리 급하냐. 또 북한에 이끌려 다니냐"
먼저 이 후보 측 박형준 대변인은 이날 공식 논평을 통해 "이번 (남북정상회담) 발표를 보고 여러가지 우려를 금할 수 없다"면서 "남북정상회담은 국민적 합의와 북핵 폐기를 위한 국제 공조 위에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변인은 이어 "정상회담에서 의제를 결정하지도 않고 회담개최부터 합의한 데 대해 무엇이 그리 급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국민들에게 회담의 목표와 의제를 분명히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또 "정상회담은 답방의 형식으로 이뤄져야 함에도 또다시 평양에서 열린다고 한다"며 "북한에 이끌려 다닌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명박 후보 역시 "현 정권은 이번 합의를 치졸하게 2007년 대선에 이용하려는 떼를 쓰면 안 된다"면서 "시기와 장소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하지만 만일 이번 합의로 핵 문제가 해결되고 북한을 개방할 수 있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손학규 "적극 환영한다. 남북 평화 체제 구축 계기 돼야"
반면 햇볕정책의 지지자인 손학규 전 지사는 "그 동안 여러 차례 역설해온 남북정상회담이 마침내 성사된 것을 적극 환영한다"고 밝혔다. 손 전 지사는 지난 5월 평양 방문에서 "6.15 공동선언에서 합의한 대로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 돼야 한다"고 촉구 한바 있다.
손 전 지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북핵문제를 해결하고 한반도 평화 체제를 구축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며 "아울러 한반도 평화 경영을 통해 남북이 함께 번영하는 경제공동체가 실현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이어 손 전 지사는 "이번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앞으로 남북 지도자들이 한반도의 평화와 미래를 위해 시간과 장소에 구애 받지 않고 언제든지 만나서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 "정상회담에 반대 하지는 않는다"
한편, 빅3 중 가장 의외의 반응을 보인 재선주자는 박근혜 후보다. 보수 성향인 박 후보가 십중팔구 반대 입장을 피력할 것이라던 각계의 예상이 빗나간 것. 박 후보측은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원칙적으로는 이번 정상회담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박 후보측 김재원 대변인은 "정상회담에 반대하지 않는다"며 "이번 남북정상회담은 우리 한반도의 평화 정착을 가장 위협하는 북한 핵문제를 반드시 매듭짓는 회담이 돼야 한다. 모든 의제와 절차 등을 국민 앞에 투명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대변인은 "정권연장을 꾀하려는 기획정상회담이면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박 후보의 태도에는 어차피 성사된 회담인데 반대해서 좋을 게 없다는 `현실론`과 이미 김정일 위원장과 회담을 가진 전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 대선 변수로 급부상 - `北風에 李·朴울고, 孫웃나?`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올해 12월 17일 대선에 초대형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데 이견을 두는 이는 없다. 대선 주자를 위시한 정치권은 정상회담이 대선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촉각이 곤두서 있다.
일단 보수성향의 한나라당 주자들에게 악재로 작용할 것은 명약관하하다. 반면, 오래 전부터 정상회담을 주장해 왔던 범여권 주자들에게는 한반도 평화무드가 조성되고 진보성향 지지층 재결집의 물꼬를 트는 등 호재로 작용할 것이란 예상이다.
당장 19일 전국 투표를 통해 20일 당 경선 후보를 확정해야 하는 한나라당과 이 후보, 박후보 측으로서는 정상회담이 끼칠 영향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다.
이 후보가 박 후보에 비해 상대적 진보라는 측면에서 이 후보측이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지만 박 후보가 지난 2002년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던 사실을 돌이켜보면 두 후보의 유불리를 따지기는 힘들다.
한나라당 후보들의 걱정과는 달리 범여권 주자들은 긍정적 효과에 잔뜩 부풀어 있다. 특히 DJ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지난 5월 방북하는 등 `평화`와 `화합`이라는 화두를 선점에 내세운 손학규 전 지사에게는 이번 정상회담이 더 큰 호재로 작용할 전망이다.
손 전 지사측 배종호 대변인은 "한반도평화를 주장해온 세력에게 국민적 지지가 다시 올 것"이라며 "냉전과 분단을 고집해온 한나라당에서 미래를 발견할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8.28 남북정상회담이 얼마만큼 성과를 내고, 국민들에게 어떻게 평가 받을 지에 따라 대선에 미칠 변수의 파괴력도 유동성이 있으므로 속단하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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