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여 년간 종적이 묘연했던 환구단(?丘壇·사적 157호)의 정문을 찾았다. 원구단으로도 알려진 환구단은 1897년 고종의 황제즉위식이 거행됐던 곳이다. 그러나 1913년 일제가 환구단을 허물고 조선총독부 철도호텔(조선호텔)을 짓는 등 지속적으로 훼손했다. 환구단의 정문은 당시에도 호텔의 정문으로 사용되면서 존속돼 오다가 1967년 조선호텔(현 웨스틴조선호텔)을 다시 지으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져 왔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24일 “환구단 정문은 현재 서울 강북구 우이동 옛 호텔그린파크 땅 안에 세워져 있다”며 “1910년대나 1967년쯤에 촬영한 환구단 정문 사진과 비교할 때 동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 ▲ 환구단의 정문으로 전문가들이 판단하고 있는 문(현재 서울 강북구 우이동 옛 호텔그린파크 소재·위쪽)과 1967년 이전 되기 직전의 환구단 모습. 환구단으로 판단되는 문에는 현재‘白雲門(백운문)’이라고 적혀 있다. /황평우씨 제공
- 문화재청 용역으로 환구단 중장기복원계획을 세우고 있는 서울시립대학교 서울학연구소 박시용 연구원도 “새로 칠한 단청 등 미세한 부분이 일부 달라졌지만 환구단 정문인 것은 확실해 보인다”고 했다. 이들은 “호텔그린파크에서 일했던 옛 직원들의 증언을 종합해 보면, 환구단 정문은 1967년 조선호텔을 다시 지을 때 이곳으로 옮겨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호텔그린파크에 있는 이 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건물 모서리에 추녀가 없이 용마루까지 측면 벽이 삼각형으로 된 지붕)이다. 대목장(궁궐 등 큰 건축물을 짓는 목수) 인간문화재 신응수씨는 “기와에 봉황과 용 무늬를 새기는 등 궁궐 건축 양식을 잘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문화재청 사적과는 “환구단의 정문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어디로 옮기거나 훼손됐는지 등에 대한 기록은 현재까지 파악된 바가 없었다”며 “곧 현장 조사를 벌인 뒤 보존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했다. 서울시 중구 소공동에 있는 환구단 터에는 현재 신위(神位)를 봉안했던 3층 8각 건물인 황궁우(皇穹宇) 팔각당과, 석고(石鼓) 3개가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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