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 지음|전중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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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여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면 선물하고, 키스하고, 안아주고, 챙겨주고, 세상이 끝나는 날까지 함께 하면 된다. 여자가 남자에게 깊은 인상을 주려면 벌거벗은 채 맥주를 가져다 주면 된다.”(493쪽)
남자와 여자는 그만큼 다르다. 저자 데이비드 버스(David Buss·54) 텍사스 대학 교수는 “우리는 모두 성공적으로 짝짓기 한 조상들의 길고 끊임없는 대열에서 나온 후손”이라고 썼다. 당신의 직계 조상은 수백만 년에 걸쳐 “번식 가치가 높은 배우자”를 판별하고, 유혹하고, 자식을 낳고, 배우자를 채가려고 노리는 동성 경쟁자들을 물리쳐왔다. 그중 단 한 명만 자손을 남기는 데 실패했어도 오늘 당신은 지구에 없을 뻔 했다. 요컨대 당신의 직계 조상과 당신이 성별(性別)에 따라 달리 구사하는 연애와 혼인의 전략이 이 책의 중심 주제다.
버스는 ‘성 선택’(sexual selection)과 ‘성 전략’(sexual strategy)을 키워드 삼아 인간의 본성을 분석하는 진화 심리학(evolutionary psychology)의 대가다. 그는 공동 연구자들과 함께 호주, 중국, 유럽, 미국 등 전세계 37개 문화권의 보통 사람 1만47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설문과 실험을 한 뒤 이 책을 썼다.
- ▲ 오스틴에 있는 텍사스 대학 캠퍼스에 제자들과 모여 앉은 버스 교수(가운데). /버스랩 제공
이번에 나온 한국판은 버스가 2003년에 쓴 개정판이다. 초판(1994년)을 이미 정독한 사람에게도 충분히 흥미로울 것이다. 새로 추가된 두 장(章)에서 버스는 혼외정사, 배란기 전후의 성 심리 변화 등 여성의 은밀한 성 전략을 집중적으로 논의한다.
그는 “진화적 적응도라는 냉정한 통화 가치로 환산했을 때, 여성에게 최적인 짝짓기 전략은 남편에게 지속적인 투자를 받아내는 한편 외도 상대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받는 전략”이라고 주장한다(454쪽).
여성은 남편감을 고를 때는 남편의 경제력을 가장 눈 여겨 보고, 외도 상대를 고를 때는 외모가 매력적인 상대를 고르는 경향이 있다. 생리주기상 임신 가능성이 높은 배란기에는 남성적인 특징이 강한 남자 얼굴이, 임신 가능성이 낮은 황체기에는 여성적인 특징이 있는 남자 얼굴이 ‘매력적’이라고 판단한다. 배란기에는 남자에게 ‘우수한 유전자’를 추구하고, 황체기에는 협동성, 정직성, 다정함 등 ‘좋은 아버지 자질’을 추구하기 때문이다(468쪽).
여성은 때로 혼외 정사를 “대체 배우자로 옮겨가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한다. 남성은 자기 아내의 기를 죽이려고 아내의 외모를 얕보는 말을 한다. 그러나 외간 남자는 달콤한 칭찬을 듬뿍 해준다. 아내는 혼외정사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하고, 대체 배우자의 자질을 검증하는 한편, 남편의 질투심을 자극해 남편 쪽에서 자신과 갈라서게 만든다(458~463쪽).
“남자와 여자가 ‘친구’가 될 수 있느냐”는 고전적인 질문에 버스는 남녀는 우정에 임하는 심리적 자세부터가 다르다고 답한다. 여성은 ‘우정과 자원을 나눠주고, 남자의 속성에 대해 알려줄’ 상대로 남성 친구를 원한다. 여성은 남성 친구와의 우정에 남성이 반대 경우에 두는 가치보다 두 배나 높은 가치를 매긴다.
남성도 여성 친구에게 도움을 받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여자’로 탐하는 욕망이 수그러들지는 않는다. 남성이 여성 친구와 함께 자고 싶어하는 욕망은 반대의 경우보다 두 배나 강하다.
여성은 남성 친구가 자신에게 끌리는 경향을 과소 평가한다. 남성 친구를 친구로 묶어두고 싶어서다. 반면, 남성은 여성 친구들이 자신에게 끌리는 정도를 “현실을 한참 벗어나” 과대 평가한다.
여성은 ‘나쁜 남자’에게 홀랑 넘어가지 않도록 진화 과정을 통해 남자의 거짓 헌신과 호의를 의심하는 ‘헌신 회의 편향’(commitment skepticism bias)을 발달시켰다. 반면 남성은 상대방이 보내는 성적 신호를 아깝게 놓치는 일이 없도록 ‘성적 과지각 편향’(sexual over-perception bias)을 발달시켰다(541쪽). 당신이 술집에서 팔이 스친 남자에게 미안하다고 미소를 지어 보이면 그 남자는 “이 여자가 나를 찍었구나” 라고 김칫국을 마신다는 얘기다.
버스는 “진화심리학은 남녀의 진화된 짝짓기 행동을 밝히고자 하는 것이지, 남녀가 어떻게 될 수 있는지 혹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지 규정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진화 심리학은 사실을 밝히는 과학일 뿐, “어떤 정치적 의제도 없다”는 것이다(50쪽).
22일 밤 연구실에서 전화를 받은 버스는 “내 책을 읽은 남자 독자들은 대체로 두 가지 반응을 보였다”고 말했다. “어떤 사람들은 ‘내가 한눈 판 것은 진화 과정에서 각인된 욕망 때문이지, 아내에 대한 사랑이 식어서가 아니라니 다행’이라고 합니다. 반대로 ‘이제부턴 쓸데없이 죄책감 느끼지 말아야겠다’는 사람도 있어요. 후자 쪽은 솔직히… 기분 나쁩니다.”
이 말씀에서 유추할 수 있듯 버스는 “애정으로 연결된 장기적 관계가 삶에 가장 심오한 만족감을 가져다 준다”고 믿는 사람이다(51쪽). 그는 아내와 16년째 행복하게 살고 있다. 원제 ‘The Evolution of Desi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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