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외롭지 않은 삶이 행복한 삶에 가장 부합하는 삶인 것 같아. 내가 세상에서 제일 싫은 건 외로운 거거든.
돈이 없는 것도 싫고, 명예롭지 못한 것도 싫고, 몸 빌빌대는 것도 싫고, 섹스 할 없는 것도 정말 싫지만 그래도 가장 싫은 건 외로운 거야.
난 외로운게 정말 싫어.
어쩌면 앞서 싫다고 늘어놨던 돈과 명예, 건강, 섹스의 결핍에 대한 싫음도 결국에는 사람이 외로워지는데 일조하는 조건이 되기 때문에 싫어하는 것 같아.
그렇잖아. 돈 없으면 가뜩이나 외로운데 더 외로워지잖아. 하고 싶은 걸 못하니까 무기력해지고, 남들이 돈 없다고 무시하는 것 같으니깐 더 외로워지는 거잖아. 이놈의 자본주의 사회가 원래 그렇지 뭐. 돈이 곧 인격이고 품위이며 사랑인지라 가난한 자가 외롭지 않을 확률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어려운 일일 거야.
하지만 돈이 많다고 해서 외로움이 본질적으로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 왜냐하면 돈으로 얻는 인격과 품위와 사랑은 거품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물론 당장에 돈이 넘쳐난다면 날 외롭지 않게 해줄 사람들도 넘쳐나겠지. 하지만 그 사람들은 날 사랑해서 모인 사람이 아니라 돈을 사랑해서 모인 사람들일 게 빤하잖아. 혹시라도 내가 돈이 없어지거나, 주변에 다른 돈 많은 사람이 생기면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사람들인 거지.
따라서 돈이 많다면 덜 외로워지는 데는 매우 유리할 수 있지만 외로움 극복의 본질적 해결책이 될 수는 없을 것 같아.
단적인 예로 <위대한 개츠비>의 개츠비를 봐도 알 수 있잖아. 온갖 술수를 동원해서 청년 재벌이 되었지만 결국 그토록 얻고자 했던 사랑은 얻지 못한 채 어이없는 죽음을 맞았던 개츠비의 삶은, 외로움은 돈으로도 해결이 안 된다는 중요한 교훈을 우리에게 주는 거라구.
명예나 직위도 마찬가지야. 명예와 직위 역시 없거나 낮으면 더 외로워지긴 하겠지만, 그렇다고 영광스러운 명예나 높은 직위가 나의 외로움을 완전히 해결해주지는 않을 것 같아. 어쩌면 이쯤에서 누군가는 네가 높은 명예나 직위 따위를 가져본 적이 없어서 이딴 소리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하고 싶을지도 모르겠어. 그래 썅. 그래서 내가 이쯤에서 인용을 하려고 하는 건 나보다 훨씬 명예로운 사람이 했던 말이야. 알랭 드 보통은 <불안>에서 직위와 관련해 이런 얘기를 해.
먹을 것과 잘 곳이 확보된 뒤에도 사회적 위계에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를 바라는 것은 그곳에서 물질이나 권력보다는 사랑을 더 많이 받을 수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돈, 명성, 영향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라기보다는 사랑의 상징으로서-그리고 사랑을 얻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 더 중시되는 것인지도 모른다.(<불안> 중 p.15)
즉,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계급상승을 추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더 많은 사랑을 받기 위해서일지 모른다는 작가의 생각이지.
거기에 덧붙여 사람들이 계급상승을 통해서라도 사랑받고자 애쓰는 이유는 다른 사람들도 나만큼이나 외로운 게 싫기 때문이라는 게 내가 하고 싶은 얘기인 거고.
그러면 건강은 어떨까?
건강도 마찬가지지 뭐. 내가 건강하지 않으면 오래 살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일이건, 유흥이건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점점 줄어들 테니 당연히 더 외로워질 거야. 하지만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튼튼한 몸을 가졌다고 해서 외로움이 해결되지는 않을 것 같아. 혼자 거울 앞에 서서,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가장 튼튼한 게 누구니?’ 이딴 거 한다고 외로움이 해결될 리는 없을 테니까. 세상에는 건강하기 때문에 오히려 더 외로워지는 사람도 많잖아.
마지막으로 섹스.
나도 한때는 언제 어디서 누구하고든 섹스만 가능하다면 그곳이 바로 천국이 아닐까 생각했었어. 그렇잖아. 섹스가 불가능한 삶이란 정말이지 그냥 외로움 그 자체잖아. 섹스를 할 수 없는 인생이란 와, 이건 정말, 내가 뭐라 표현을 못하겠어. 나한테 외로움 다음으로 제일 싫은 걸 꼽으라면 그건 당연히 섹스 없는 삶이 될 거야. 하지만 은하계의 모든 생물체와 섹스가 가능하다고해서 역시 외로움이 완전히 해결될 거 같지는 않아.
흠...
아닌가...?
그래, 사실 이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 괴테의 <파우스트>처럼 어느 날 갑자기 내 앞에 메피스토펠레스가 나타나서 나의 신념을 좀 시험해봐 주면 너무너무 감사할 것 같아.
아무튼, 하던 말을 마저 하자면 섹스가 충만한 삶이라면 당연히 그렇지 못한 삶보다 덜 외로울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만 그렇다고 섹스가 전부는 아니라는 거야. 특히 사랑 없는, 혹은 교감이 부족한 섹스를 경험해본 사람이라면 수긍이 갈 거야. 섹스가 끝난 후에, 심지어는 섹스 중에도 엄습하는 외로움과 허무함을 말이야.
자, 이제 본론.
그렇다면 이 지랄 같은 외로움을 대체 무엇으로 극복할 것이냐의 문제야. 글의 맥락상 대충은 짐작들 할 것 같아. 사무치는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래. 그건 바로 사랑이야.
꺄!
무슨 사랑이니 희망이니 하는 말만 나오면 손발이 자동 3단으로 접혀지는 사람들 많을 거야. 나도 그래.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아무리 고민을 해봐도 외로움의 병마를 치료하는데 있어 사랑만큼 강력한 건 없거든.
앞서 언급했던, 아마도 사람을 외롭지 않게 만들어줄 거 같은 대표적 요소로 들었던 돈과 명예, 건강과 섹스 등도 결국 남에게 사랑받는데 매우 유리해지는 수단이자, 또한 남을 사랑함에 있어서도 매우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도구라 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는 자주 그 수단을 목적 자체로 혼동하곤 해. 즉 최종 목적은 나를 둘러싼 다른 사람에게 사랑을 받음으로써 외롭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자 함인데, 사랑받을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기 위해 사랑받을 수 없는 짓까지 서슴지 않고 행하는 경우가 많다는 거지. 권모술수를 써서라도 어떻게든 성공하겠다는 사람들이 이에 해당할 거야.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거지. 사랑받기 위해 사랑받지 못할 짓을 하는 거니까. 회가 먹고 싶다고 자기 몸을 썰어 먹을 수는 없는 거잖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사람은 모름지기 착하게 살아야 한다.’는 진부한 경구도 결국엔 네가 남들에게 사랑받으며 외롭지 않게 살려면 그래야 한다는 심오한 진리를 간단명료하게 표현한 것인지도 모르겠어.
때로는 사랑받을 수 있는 좋은 수단을 어렵게 확보하고 나서는 애초의 목적을 망각하기도 하는 것 같아.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다른 사람을 적당히 도와주거나 의미 있는 일을 한다면 많은 사람들의 사랑까지 받으며 더 행복하게 살 수도 있을 텐데 오히려 가진 돈으로 더 많은 돈을 긁어모으기 위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하는 사람들 많잖아. 몰라. 내 주위에는 온통 가난뱅이들뿐이라서 아직 그럴 기회가 없었지만, 이런 사람들 보면 한 마디 해주고 싶어.
“넌 평생 수단만 확보하다가 뒈질래?”
“넌 왜 비아그라 처먹고 딸딸이만 치는 건데?”
여기서 하나 주의할 것은 외로움 극복을 위해 필요한 사랑이란 게 꼭 타인에게 받는 사랑만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점이야. 타인과의 사랑이 가장 일반적이긴 하지만 나 자신과의 사랑도 매우 중요하거든. 그밖에 종교를 가진 사람이라면 신과의 사랑도 몹시 소중할 거야. 특정 가치관을 갖은 사람 중에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를 포함해 우주만물과의 사랑도 굉장히 중요할 테고 말이야. 이에 대해서는 얘기가 좀 길어질 테니 나중에 좀 더 자세히 이야기 해볼게.
결국 내가 하려는 얘기를 다시 정리해보자면 이거야.
현대인이 겪는 삶의 고통, 혹은 허무의 근원에는 어쩌면 외로움이 똬리를 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그리고 그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바로 사랑함으로써 타인의 존재감을 확인시켜주고, 또 사랑받음으로써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는 건데 많은 경우 사랑에 필요한 수단 확보에만 혈안이 되어 있을 뿐 정작 내가 왜 미친 듯이 그 수단을 확보하려는 것인지에 대한 목적은 망각하곤 한다는 거지.
어쩌면 그래서 세상이 점점 미쳐가고 있는 건지도 몰라. 그렇잖아. 원래 이유도 모른 채 뭔가에 탐닉하는 걸 두고 미쳤다고 하는 거잖아.
언제 특히 외로움을 느끼는지, 그리고 그 외로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뭐가 있을지에 대해서 함께 논의를 해봤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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