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폭락세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던 코스피지수 1천2백 선이 뚫린 지 불과 하루 만에 1천100 선마저 무너졌다. 이제는 마지노선이 큰 의미가 없는 것 같다. 1천 선이 마침내 허물어지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실망 수준을 넘어 공황 상태에 빠져들었다. ‘펀드런(펀드 대량 환매)’ 소리도 공공연하게 나돌 정도이다.
장세가 이렇게 불안해지면서 미래에셋그룹에 짙은 먹구름이 깔리고 있다. 불과 1년 전만 해도 미래에셋은 글로벌 주가 상승의 최대 수혜주로 꼽혔다. 내놓는 펀드마다 대박을 치면서 박현주 회장은 ‘금융 황제’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되돌아보면 박회장의 ‘영웅담’은 거기까지였다. 글로벌 신용 경색 및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면서 미래에셋은 직격탄을 맞았다. 투자 심리가 급속히 얼어붙자 80%에 육박하던 펀드 수익률은 -40% 가까이 떨어졌다. 미래에셋이 의욕적으로 선보인 인사이트 펀드 역시 현재 수익률이 -50%를 오르내리고 있다. 1억원을 투자한 사람이라면 5천만원을 눈뜨고 날린 셈이 된다.
마침내 국정감사장에서도 인사이트 펀드가 도마에 올랐다. 신학용 민주당 의원은 “인사이트 펀드의 경우 중국 등 일부 국가에 과도하게 투자해 대규모 손실을 입었다. 그러나 투자자들에게 주요 투자 국가 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아 부당한 판매를 한 것이 아니냐는 소리가 나오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한국펀드평가가 최근 내놓은 자료에서도 미래에셋의 추락을 엿볼 수 있다. 지난해 수익률 상위 10곳에 포함된 해외 주식형 펀드 중 9곳이 미래에셋 펀드였다. 친디아(차이나+인디아) 펀드가 대부분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변했다. 미래에셋 계열의 펀드는 수익률 상위 10걸에 드는 것은 고사하고 하위 10개 펀드에 상당수 이름을 올리고 있다.
신건국 펀드평가팀 과장은 “글로벌 신용 경색 여파로 중국과 인도 증시가 다른 나라에 비해 가파르게 추락했다. 때문에 중국 등 신흥 강국에 투자 비중이 높은 미래에셋 펀드의 수익률 또한 급추락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최근 표면화된 미래에셋의 악재는 펀드 수익률 하락만이 아니다. 지난 10월22일 미래에셋 지점장 유 아무개씨가 투자 실패를 비관해 자살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는 “유씨가 판매한 상품은 RCF(금융공학펀드)라는 구조화 상품이다. 시장이 안정적일 때는 수익이 나지만 범위를 벗어나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데 최근 손실을 많이 입은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상춘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부소장은 최근 개인 투자자들의 손실을 ‘탐욕’ 탓으로 돌리는 발언을 했다가 물의를 빚어 직위 해제되기도 했다.
투자 실패 비관해 지점장 자살하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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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래에셋 본사 입구 앞에 설치된 바늘 없는 시계.
ⓒ시사저널 임영무 |
이미 시장에서는 미래에셋 보유 지분이 높은 회사의 주식들이 고전하고 있다. 미래에셋의 최대 수혜주로 꼽혔던 동양제철화학이 대표적인 예이다. 동양제철의 주가는 그동안 미래에셋이 참여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주가 상승 효과를 톡톡히 보았다. 올 초 서브프라임 사태 등으로 주가가 계속 하락하는데도 이 회사는 5개월 만에 20만원대에서 42만원까지 치솟았다. 이달 초 주가가 다소 하락하기는 했지만 30만원대의 안정적인 모습을 이어갔다. 웬만한 기업의 주가가 ‘반 토막’ 난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러나 이달 들어 주가가 급락하기 시작하더니 지난 10월23일 현재 17만4천원까지 떨어졌다. 미래에셋이 13%대 지분을 보유한 두산이나 현대중공업, 효성, 두산중공업 등도 최근 주가가 하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전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미래에셋에 대한 실망감이 일부 전이된 결과일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미래에셋의 신뢰도에 결정적 흠집을 낸 것은 지난 10월19일 발표된 JP모건의 보고서였다. 정부는 이날 장기 펀드에 세제 혜택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하는 금융시장 안정 대책을 발표했다. 시장에서는 미래에셋이 최대 수혜주가 될 것이라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JP모건의 보고서가 이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었다. JP모건은 미래에셋의 목표 주가를 종전 17만1천원에서 6만5천원으로 62%가량 낮췄다. 그 근거로는 미래에셋 CMA(자산관리계좌) 및 펀드 자금의 이탈 가속화, 정부의 금융 대책 미흡, 미래에셋의 실적 전망 악화 및 리스크 증폭 등을 꼽았다.
JP모건은 심지어 시장에서 ‘불문율’처럼 여기던 ‘펀드런’ 문제까지 건드렸다. 보고서는 “뮤츄얼 펀드로 유입된 자금이 대부분 코스피지수 1천7백~2천 선에서 흘러들어왔다. 대규모 환매가 아직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주가가 지금처럼 약세를 보이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환매를 향한 ‘억압된’ 요구가 표출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미래에셋은 물론 업계에서 쉬쉬하는 펀드런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경고인 셈이다.
물론 JP모건의 보고서를 놓고 업계에서는 현재 논란이 적지 않다. 목표 주가를 단숨에 17만1천원에서 6만5천원으로 낮춘 사실에 대해 외부의 개입설까지 제기하며 의혹의 시선을 던지고 있다.
JP모건 보고서 경고에 국내 증권사들 일부러 ‘폄하’
문제가 커지자 미래에셋도 진화에 나섰다. 최현만 부회장은 다음 날 “당장 현금화할 수 있는 유동 자산이 약 9천억원 수준에 이른다. 미래에셋증권의 자기자본이 1조6천억원임을 감안할 때 회사는 아주 건실하다”라고 해명했다.
그는 “미래에셋증권의 CMA는 국고채·통안채 등 초우량 채권으로 운용하고 있다. 채권 만기도 3개월 반 미만으로 짧게 가져가고 있어 문제될 것이 없다”라며 JP모건 보고서의 내용을 조목조목 반박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JP모건이 지적한 펀드런의 가능성을 전혀 배제하지 못하고 있다. 정은호 제로인 대표는 “JP모건이 가격을 너무 후려쳤다. 보고서 내용을 보면 의도가 의심스럽다. 하지만 펀드런 우려에 대해서는 업계에서도 공감하고 있는 부분이다”라고 지적했다.
그에 따르면 미래에셋은 수익 구조상 장이 좋을 때는 1등을 하지만, 장이 나쁘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지난 1997년 이래로 증시가 상승 추세였기 때문에 미래에셋이 그동안 수익을 낼 수 있었다. 그것을 믿고 미래에셋 역시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했다. 그러나 최근 증시가 악화되면서 수익률 또한 급락했다. 투자자들은 참는 것 외에 달리 대처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제는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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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일 주가가 폭락하자 한 펀드 매니저가 침통해하고 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
특히 최근 장세를 보면 누구도 회복 가능성을 장담하지 못한다. 불확실성이 더욱 증폭되고 있다는 점에서 펀드런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운용사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무도 펀드런에 대한 이야기을 꺼내지 않았다. 주가가 떨어져도 곧 회복될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이같은 심리마저 무너진 상태여서 대량 환매 우려가 나오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미국의 경우 펀드런 사태가 가시화되고 있다. 차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 현금화가 비교적 쉬운 펀드에 대한 ‘묻지마식’ 환매가 쏟아지고 있다. 이같은 펀드런 사태가 우리나라로 옮아 붙을 가능성도 현재로는 배제할 수 없다.
증권업을 다루는 한 애널리스트는 “미래에셋의 어려움은 곧 펀드시장의 붕괴로 연결될 공산이 크다. 국내 증권사들이 최근 JP모건 보고서를 폄하하는 것도 이런 위기의식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지금과 같이 주가가 계속해서 떨어질 경우 투자자들 사이에서 대량 환매 가능성은 커지게 된다. 업계에서는 미래에셋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유동 자산만으로는 유사시에 감당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업계에서는 펀드런 사태가 터지면 가장 타격을 받는 곳은 미래에셋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여타 증권업체도 어렵기는 마찬가지이지만, 미래에셋의 경우 펀드 비중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