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수로 있으면서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폴리페서’(polifessor)에 대한 불만이 서울대 교수들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총선전인 지난 6일 서울대 교수 80명이 교수들의 무분별한 정치 참여를 규제하는 윤리 규정을 총선 전까지 마련해 달라고 이장무 총장에게 건의함으로써 학교와 정치권을 오가는 양다리 교수는 도둑이라는 화두가 제기됐다.
정치(politics)와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인 폴리페서(polifessor)는 적극적으로 현실 정치에 뛰어들어 자신의 학문적 성취를 정책으로 연결하거나 그런 활동을 통해 정계(政界)나 관계(官界)의 고위직을 얻으려는 교수를 일컫는 신조어다. 정권의 필요에 의해 발탁된 관료인 테크노크라트(technocrat)와 구별된다.
이런 폴리페서 자체가 비난받을 일은 아니지만, 정차를 위해 학교와 학생을 등한시하는 외도, 그러면서도 언제나 꿩 대신 닭이라는 식으로 기웃거리다 안되면 돌아와서는 낯빛 하나 바꾸지 않는 뻔뻔스러움이 비난을 자초하는 것이다.
조국 서울대 법대 교수 등이 건의문 형식으로 제출한 성명서에서 교수직이 정치권에 진출하는 '발판'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정당 공천 후보로 출마하려는 교수는 공천신청 직후까지 휴직계를 제출하고 △ 낙천 혹은 낙선 뒤 복직과 당선 후 임기 만료 뒤 복직은 인사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하며 △선거로 인해 휴직한 경우 복직 후 안식년 없이 근무하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교수들은 서울대 역사상 처음으로 현직 교수가 휴직이 처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공천을 받고, 선거운동을 벌이는 일이 벌어졌다며 조속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이번 사태는 체육교육학과 김연수 교수는 육아 휴직을 받아서 총선에 출마한 뒤 낙선하자마자 대학에 복귀의사를 밝힌 것이 발단이 됐다. 지난 10일 서울대 사범대는 김 교수의 징계를 논의하는 인사위원회를 다음 주 개최한다고 밝혔다.
조영달 사범대 학장은 “김 교수가 교수로서 교육과 연구의무를 소홀히 한 점이 인정된다”면서 “사범대에서 인사위원회를 개최해 세부적인 징계 사항을 결정한 뒤 본부 인사위원회에 징계를 건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교수에 대한 사범대 측의 징계의지는 확고해보인다. 사범대는 지난달 24일 열린 인사위원회에서도 실제 총선출마를 하면서도 육아휴직을 신청한 김 교수에 대해 교육과 연구의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사직 권고를 의결했지만 김 교수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사실이 있다.
서울대 관계자는 “교육과 연구의무 위반, 교수 품위의무 위반 등을 적용해 최소 ‘감봉’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김 교수를 징계할 객관적인 근거가 없어 징계처리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는 만큼 상황을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는 등 철밥통 교수의 양다리 걸치기에 대한 근절이 쉽지 않음을 예고하고 있다.
이처럼 별로 당당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않은 교육자답지 못한 관행이 구설수에 오른 가운데, 교육과학기술부에 의해 폴리페서에 대한 법적 규제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10일 교과부는 서울대 측에서 학기 중 출마를 제한하도록 교육공무원법 개정을 요구해오면 긍정적으로 검토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교과부의 한 관계자는 “현행 교육공무원법은 대학교수가 국회의원으로 당선될 경우 휴직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공천 등 선거 전 과정에 대해서는 휴직 관련 규정이 없어 학생들의 학습권이 침해받고 있다”며 “지금까지는 교수들의 윤리적 판단에 맡겨 왔지만, 서울대 교수들의 의견 개진을 계기로 관련 법률 개정 등의 대책을 심도 있게 논의하겠다”고 말했다.
이미 서울대 교수 80여명은 교과부에 관련 법 규정을 만들어 줄 것을 공식 건의하겠다고 밝힌 바 있기 때문에, 교수들의 학기 중 선거 출마를 제한하거나 공천 신청 시 휴직계 제출, 국립대 교수의 경우 출마 전 사직 등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최용일
한편, 폴리페서 문제의 단초를 제공한 김 교수 측은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학교 측에서 병가 또는 육아휴직 등 사유를 만들어 휴직계를 내라고 일러줬다”고 주장해 이러한 관행이 학교사회에 만연된 것이 아니냐는 논란이 확산되고 있지만, 서울대 교수들이 공개적으로 이런 스스로의 치부를 거론한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다.
과거에도 폴리페서들은 많았고 그들에 대한 비난과 심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동료들에 의한 자아비판적 평가라는 점에서 이번 서울대 교수들의 문제 제기는 값진 것이다.
이전의 폴리페서에 대한 평가는 동료 평가가 아니라 학생들에 의한 상향식 평가였고 다분히 감성적이었다. 특히 유신시절, 제5공화국 시절에는 정부 여당으로 가는 폴리페서와 야당으로 가는 폴리페서에 대해 학생들은 이중잣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여당 출마자나 정부로 가는 교수는 대개 사퇴하고 야당 출마자는 그대로 교수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었다.
그러나 사회가 바뀌어 여당이나 정계로 진출하는 것이 개인이나 학교의 영광이 되는 사회가 되면서 그런 과거의 상향식 평가라는 제한된 제어장치마저 없어진 지 오래였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들어 국회의원이나 장.차관 등에 진출하는 교수가 늘고 있는데, 교수들이 정치나 행정을 잘해서가 아니라 교수라는 신분이 ‘과대평가’ 됐기 때문일 것이라는 비난이 고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게다가 다른 공직자는 모두 총선출마시 사직서를 내도록 되어 있으며, 공직진출시 겸직허가를 받도록 되어 있는데 유독 교수만 독불장군인 것도 교육적이지 않아 보인다.
이제 폴리페서는 박쥐같은 양다리를 걷고 선택을 해야 한다. 가르치는 것을 천직으로 삼고 올곧게 가든지, 아예 정치판에 뛰어들어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치든지, 명예와 권력을 양손에 취하고자 하는 것은 법적인 문제를 떠나 ‘양심’에 관한 문제다. 명예와 권력은 트레이드 오프 관계가 있어야 하며, 돈까지 고려한다면 인간사에도 3권분립이 필요한 것이 아닌가 꼰대님에게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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