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김중현 편집장
[정경뉴스]신 인류의 등장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여기서 신 인류는 시대상을 그대로 투영하는 하나의 아이콘(Icon)을 말한다. 일단 신 인류가 등장하면 그들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등장한다.
‘X세대’ ‘386세대’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들의 행태나 습성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도 한고 사장되기도 한다. 2008년 6월 대한민국에 신 인류가 등장했다. 정치에 뛰어든 10대들, ‘폴리틴’(Politics+Teenager:Politeen)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난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협상이 타결됐다는 뉴스가 전국에 타전됐다. 그동안 광우병 위험으로 수입이 제한됐던 30개월령 쇠고기가 부위에 상관없이 전면 수입되는 길이 열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순방길에 있었다. 전국은 들끓었다. 광우병에 대한 각종 논란거리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순간 쏟아졌다. 시청 앞 광장은 다시 촛불로 가득 찼다. 교복차림의 10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 한 여학생은 거침없는 말투로 “이해시켜 달라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다른 여학생은 큰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대통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밝았고 ‘반미’(反美)는 없었다.
이념도 주동자도 없이 광장에 모인 ‘폴리틴’
시위현장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첫째, 시위를 주도하는 ‘1인’이 없다는 점이다. 촛불을 들고 있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두가 주동자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을 모은다. 평화적 시위이며, 궁금해서 모였단다. 죄의식이 필요 없기에 떳떳하게 행동한다.
둘째 특징은 IT로 무장한 그들의 손.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손으론 쉼 없이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댄다. 문자를 보내는지 사진을 찍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문자를 보낸다면 사람을 모으는 것이고, 사진을 찍는다면 실시간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념이 없다는 것. 만약 이번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2002년 여름 즈음 이뤄졌다고 예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역시 ‘불타는 성조기’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화형식도 여기저기서 열렸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초여름 시청 앞 촛불시위에선 성조기가 별로 없다. 미국 소의 탈을 둘러쓴 ‘우스꽝스런 퍼포먼스’ 주변엔 아이들이 몰리지만 ‘불타는 성조기’ 앞엔 영락없이 노땅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네째, 중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기 표현력과 논리력이다. 말투는 아직 어린티가 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꼭 밝혀달라며 인터뷰에 응한 이승유(18)군. “이거 인터넷에도 나가나요?(웃음) 쇠고기 수입하는 일이 협상 맞나요? 협상은 서로 이해관계가 성립됐을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정부가 뭔가를 숨기는 것이 확실해요. 그래서 나왔어요.” 말투는 거칠었지만 논리는 명확했다. “이렇게 거리에 나온다고 궁금증이 해결될 것으로 보는가”라고 물었다. 대답은 역시 분명했다. “기분 나쁘잖아요.”
마지막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집단행동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시사문제에 관심이 있다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만큼은 엄청난 정치력을 발휘한다. ‘미국한 쇠고기급식’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 이들에게 ‘폴리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10대들의 이러한 집단행동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도 노란색 조끼를 입은 한 학부모 단체에서 아이들을 설득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학부모는 “과중한 학업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바람을 쏘이러 밖으로 나왔을 뿐이지 정확한 내용을 알고,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나왔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들에 대해 "실업자"라고도 표현했다. 2008년 어른들은 ‘폴리틴’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폴리틴’ 그들은 ‘실용정치인’
지난 4월 18대 총선에서 만19세 이상 유권자의 46%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선거기간이 짧았고 이벤트가 없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선진국화 될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들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면 직접민주주의를 해보자고.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대의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추진될 수 있는 근본 자체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민의의 전당 국회가 주범(主犯)이다.
국회의 기능이 점점 축소되고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자 광장으로 나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용정부에 맞선 ‘폴리틴’들. 그들에게 이념은 중요치 않다. 집회를 주도하는 누군가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정책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실용’아닌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8년을 가장 뜨겁게 보낸 나라가 프랑스다. 낭테르 대학의 시위로 촉발된 1968년 5월 혁명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성질서에 도전하는 문화혁명이었다. 68혁명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교육제도가 바뀌고 세대 간의 관계가 달라졌으며, 노동자의 권리가 높아지고, 성(性)의 혁명이 분출했다. 모두 기성세대들이 가슴을 열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폴리틴’. 몇 년 후 ‘생활정치’를 이끌 ‘실용정치인’ 이들. ‘폴리틴’을 대하는 기성세대들의 열린 가슴이 아쉬운 때다.
촛불집회에 참석한 '폴리틴'들. |
[정경뉴스]신 인류의 등장은 언제나 가슴 설레는 일이다. 여기서 신 인류는 시대상을 그대로 투영하는 하나의 아이콘(Icon)을 말한다. 일단 신 인류가 등장하면 그들의 특성을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등장한다.
‘X세대’ ‘386세대’가 대표적일 것이다. 그들의 행태나 습성에 따라 새로운 시장이 형성되기도 한고 사장되기도 한다. 2008년 6월 대한민국에 신 인류가 등장했다. 정치에 뛰어든 10대들, ‘폴리틴’(Politics+Teenager:Politeen)에 대해 이야기해보자.
지난 4월 18일 미국산 쇠고기협상이 타결됐다는 뉴스가 전국에 타전됐다. 그동안 광우병 위험으로 수입이 제한됐던 30개월령 쇠고기가 부위에 상관없이 전면 수입되는 길이 열렸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미국 순방길에 있었다. 전국은 들끓었다. 광우병에 대한 각종 논란거리들이 기다렸다는 듯 일순간 쏟아졌다. 시청 앞 광장은 다시 촛불로 가득 찼다. 교복차림의 10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시위현장에서 만난 고등학교 3학년 한 여학생은 거침없는 말투로 “이해시켜 달라는 것이 우리의 바람”이라고 말했다. 곁에서 듣고 있던 다른 여학생은 큰 웃음을 지어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렇게 나설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준 대통령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이들의 모습은 밝았고 ‘반미’(反美)는 없었다.
이념도 주동자도 없이 광장에 모인 ‘폴리틴’
시위현장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첫째, 시위를 주도하는 ‘1인’이 없다는 점이다. 촛불을 들고 있는, 피켓을 들고 있는 모두가 주동자다. 너나 할 것 없이 사람들을 모은다. 평화적 시위이며, 궁금해서 모였단다. 죄의식이 필요 없기에 떳떳하게 행동한다.
둘째 특징은 IT로 무장한 그들의 손. 한 손에는 촛불을 들고 한손으론 쉼 없이 휴대전화 버튼을 눌러댄다. 문자를 보내는지 사진을 찍는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문자를 보낸다면 사람을 모으는 것이고, 사진을 찍는다면 실시간 보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셋째, 이념이 없다는 것. 만약 이번 쇠고기 수입과 관련된 일련의 사건이 2002년 여름 즈음 이뤄졌다고 예상해 보자. 가장 먼저 떠오르는 그림은 역시 ‘불타는 성조기’다. 부시 미국 대통령의 화형식도 여기저기서 열렸을 것이다. 하지만 2008년 초여름 시청 앞 촛불시위에선 성조기가 별로 없다. 미국 소의 탈을 둘러쓴 ‘우스꽝스런 퍼포먼스’ 주변엔 아이들이 몰리지만 ‘불타는 성조기’ 앞엔 영락없이 노땅들의 잔치가 벌어진다.
네째, 중고등학생이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자기 표현력과 논리력이다. 말투는 아직 어린티가 나지만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꼭 밝혀달라며 인터뷰에 응한 이승유(18)군. “이거 인터넷에도 나가나요?(웃음) 쇠고기 수입하는 일이 협상 맞나요? 협상은 서로 이해관계가 성립됐을 때 이뤄지는 것이라고 배웠는데, 지금 상황을 보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아요. 정부가 뭔가를 숨기는 것이 확실해요. 그래서 나왔어요.” 말투는 거칠었지만 논리는 명확했다. “이렇게 거리에 나온다고 궁금증이 해결될 것으로 보는가”라고 물었다. 대답은 역시 분명했다. “기분 나쁘잖아요.”
마지막으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바로 정치에 관심을 갖는다는 점이다.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정부의 정책에 반기를 들고 집단행동을 한다. 그렇다고 이들이 시사문제에 관심이 있다거나 특별한 교육을 받았다고 보지는 않는다. 이들은 자신들에게 직면한 문제들에 대해서만큼은 엄청난 정치력을 발휘한다. ‘미국한 쇠고기급식’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됐다. 이들에게 ‘폴리틴’이라고 이름을 붙인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10대들의 이러한 집단행동들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촛불시위 현장에도 노란색 조끼를 입은 한 학부모 단체에서 아이들을 설득하기에 정신이 없었다.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한 한 학부모는 “과중한 학업에 시달리던 아이들이 바람을 쏘이러 밖으로 나왔을 뿐이지 정확한 내용을 알고, 어떠한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곳에 모인 아이들은 거의 없다”라고 말했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공부하기 싫어서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집회에 나왔다?”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은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들에 대해 "실업자"라고도 표현했다. 2008년 어른들은 ‘폴리틴’들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
‘폴리틴’ 그들은 ‘실용정치인’
지난 4월 18대 총선에서 만19세 이상 유권자의 46%만이 투표에 참여했다. 선거기간이 짧았고 이벤트가 없었다고 많은 전문가들이 분석했다. 선진국화 될수록 투표율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들 입을 모은다. 그러면서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한다.
그렇다면 이렇게 생각해보자. 대의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했다면 직접민주주의를 해보자고. 다소 과장된 표현일지 모른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현재 대의민주주의가 올바르게 추진될 수 있는 근본 자체가 심각하게 흔들리고 있다. 민의의 전당 국회가 주범(主犯)이다.
국회의 기능이 점점 축소되고 국회의원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을 치는 상황에서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과 행정부를 견제하고자 광장으로 나서는 상황이 벌어진 것을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실용정부에 맞선 ‘폴리틴’들. 그들에게 이념은 중요치 않다. 집회를 주도하는 누군가도 중요하지 않다. 단지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한 정책에 대해 이해를 구하고 있다. 그야말로 ‘실용’아닌가.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68년을 가장 뜨겁게 보낸 나라가 프랑스다. 낭테르 대학의 시위로 촉발된 1968년 5월 혁명으로 학생들이 거리로 쏟아졌다. ‘금지하는 것을 금지한다’는 구호를 외치며 기성질서에 도전하는 문화혁명이었다. 68혁명을 계기로 프랑스에서 교육제도가 바뀌고 세대 간의 관계가 달라졌으며, 노동자의 권리가 높아지고, 성(性)의 혁명이 분출했다. 모두 기성세대들이 가슴을 열고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40년이 지난 오늘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는 ‘폴리틴’. 몇 년 후 ‘생활정치’를 이끌 ‘실용정치인’ 이들. ‘폴리틴’을 대하는 기성세대들의 열린 가슴이 아쉬운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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