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을 타고 가다가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 명의의 스티커가 부착돼 있는 것을 봤다. 스티커에는 “사수! 공영방송 저지!방송장악”이라고 적혀 있었다. 웃음이 났다.
“사수! 공영방송”이라고?
MBC가 언제부터 공영방송이었나?
100% 광고에 의해 먹고사는 상업방송 주제에 공영방송이라니?
노조가 회사를 좌지우지하는 노영(勞營)방송이 공영방송이라니?
“저지! 방송장악”이라고?
노무현 정권 시절 코드인사로 방송장악할 때는 잠잠하던 것들이 이제 와서 방송장악 저지라고 핏대를 올려?
하지만 오늘은 아무래도 MBC가 날 웃기기로 작정한 날인 것 같았다. KBS <9시 뉴스>를 보다가 MBC <뉴스데스크>로 채널을 돌렸을 때였다. 딴 생각은 없었다. MBC가 파업 중이라기에 방송이 정상적으로 나오는지 궁금해서였다.
파업 중이라던 MBC는 정상적(?)으로 뉴스를 내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 지나자 뉴스 내용이 묘해졌다. 현재 진행 중인 MBC등 언론의 총파업을 알리면서, 그 정당성을 강변하는 내용들을 집중적으로 내보내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의 논리는 한 마디로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조중동 보수언론과 재벌이 방송을 장악하게 되어 ‘여론이 독과점된다’는 것이었다.
‘여론 독과점’ 해 온 MBC
신문이 방송을 겸영하게 되면, 재벌이 언론 산업에 뛰어들면, 여론이 독과점된다고?
기가 막혔다. 아니 구역질이 났다. 지금의 MBC(KBS도 마찬가지지만)야말로 여론을 독과점해 온 장본인이었기 때문이다.
금년 상반기를 뒤흔들었던 촛불시위 당시 MBC의 작태를 상기해 보자. 또 작년 대선 보도 당시, 2004년 노무현 탄핵 당시, 2002년 대선 당시, MBC의 작태를 떠올려보자. 여론을 ‘독과점’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독점’하지 않았던가?
공정언론시민연대의 분석에 의하면, 올 봄 촛불시위의 와중에서 MBC뉴스데스크 보도 가운데 촛불시위대의 입장을 옹호하는 제목과 정부측 입장을 옹호하는 제목의 비율은 81.2%대 18.8%였다.
작년 대선 당시 MBC는 'BBK 사건'을 보도하면서 98.8%대 1.2%의 비율로 자사(自社) 앵커 출신인 정동영 후보에게 유리한 제목을 달았다. 이는 KBS의 '94.7% 대 5.3%'를 훨씬 넘어서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공정언론시민연대는 "특히 MBC의 경우는 편파가 무엇인지 보여주려 작정한 듯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2004년 노무현 탄핵 때는 또 어땠는가? MBC는 탄핵을 반대하는 제목을 83개, 탄핵을 지지하는 제목은 3개를 내보냈다. 이런 보도행태는 2004년 한국언론학회로부터 "아무리 느슨한 규정을 적용해도 편파적이다"라는 비판을 받았었다.
2002년 대선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위 '병풍' 사건 보도와 관련해 MBC는 '84.4% 대 15.6%'로 노무현 후보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목을 뽑았다.
이게 ‘여론의 독과점’이 아니고 무엇인가? 국민의 정치적 판단을 좌우하고 국가의 명운을 가르는 중요한 보도에서 일방적으로 여론을 '독점'하고 편파보도를 일삼으면서 좌파정권을 위해 복무했던 MBC가 이제 와서 ‘여론의 독과점’을 우려한다? 지나가던 개가 웃을 얘기 아닌가?
MBC의 편파성은 이런 국가의 명운을 건 중요한 보도에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지난 12월 24일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를 보자.
박혜진 앵커는 방송을 마치면서 “외골수 연구원 남편이 중징계를 받아 우울하게 이브를 보내는 어느 아내의 넋두리처럼 아부도 타협도 모르는 바보퉁이들이 생각처럼 살 수 있는 곳이 되기를 빌어보겠습니다”라고 말했다.
“4대강 정비사업의 실체는 대운하”라고 양심선언(?)을 했다가 중징계를 받은 김이태 건설기술연구원 연구원에 대한 동정성 멘트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MBC 앵커가 언제 노무현 정권 시절 자기 양심대로 정부정책을 비판했다가 중징계를 받은 김태우 박사나 홍관희 박사를 위해, 열우당이 국회 다수의석을 차지한 후 열우당 출신 국회의장 김원기에게 해임된 뒤 국회 경위들에게 개처럼 끌려나가야 했던 최광 전 국회예산정책처장을 위해 그런 멘트를 날린 적이 있나?
MBC가 정녕 ‘여론의 독과점’을 우려해 언론관계법 개정에 반대하는 것이라면, 먼저 자신들의 편파방송 전과(前過)에 대해 사죄하고, 편파방송 관련자들을 내보내는 인적 청산부터 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진실왜곡을 위해 언론의 힘을 사용한’ MBC
하지만 MBC의 강변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MBC는 <이탈리아 여론독점의 폐해>라는 보도를 통해 이탈리아에서 권력의 언론장악, 신문-방송 겸업이 어떤 폐해를 낳았는가를 보도했다. 베를루스코니 총리가 언론법을 개정해 신문-방송 겸업을 허용하고 방송에 대한 권력의 영향력을 증대시킨 후, 이탈리아 방송은 정부에 비판적인 보도를 일체 못하게 됐다는 주장이었다.
이 보도의 압권은 과거 이탈리아의 공직부패수사를 지휘했던 피에트로 검사가 등장해 "(정부의 언론장악 이후) 언론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 왜곡을 위해 사용했다“고 말한 대목이었다.
순간 실소를 금할 수 없었다.
‘언론의 힘을 갖고 있는 사람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언론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진실 왜곡을 위해 사용했다? 그건 바로 너네 MBC 얘기잖아.’
지난 봄 광우병 선동에서 보듯, MBC야말로 진실을 왜곡하기 위해 언론의 힘을 악용한 장본인 아니었던가? 정치적 선동을 위해 거짓말을 일삼는 언론이 MBC 아니었던가? 선전선동을 위해 번역자에게 거짓말 번역을 강요했던 언론이 바로 MBC 아니었던가?
경영진은 그나마 촛불시위를 야기한 자사
그런 자들이 이제 와서 진실이 어떻다고? MBC는 그따위 강변을 하기 전에 ‘진실’의 의미부터 다시 공부하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MBC총파업은 자사이기주의, 방송이기주의 때문
그렇다면 자기들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여론의 다양성’이나 ‘진실’과는 거리가 먼 MBC가 총파업까지 감행하는 속내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 마디로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편파방송, 거짓말 방송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달라는 것이다. 그런 거짓말 방송, 편파방송을 하고도 누구에게도 책임지지 않는 무책임성을 보장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삼성 직원들처럼, 조선일보 기자들처럼 박터지게 경쟁하지 않고 지금처럼 탱자탱자하면서 목에 힘주고 살고 싶다는 것이다. 1600여 직원 가운데 1000명 이상이 차장대우 이상의 간부로 구성되어 있는 지금의 방만한 경영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해 달라는 것이다.
노조가 회사를 좌우하고, 경영진이 거기에 야합하는 지금의 ‘노영(勞營)방송’ 체제, MBC에서 노조활동만 열심히 하면 사장도 되고 국회의원도 되는 노영방송 체제를 그대로 놔두자는 것이다.
지난 15일 MBC <뉴스데스크> 클로징 멘트에서 박혜진 앵커는 자뭇 비장한 음성으로 방송 총파업을 알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조합원인 저는 이에 동참해 당분간 뉴스에서 여러분을 뵐 수 없게 됐습니다. 방송법 내용은 물론 제대로 된 토론도 없는 절차에 찬성하기 어렵습니다. 경제적으로 모두 힘든 때, 행여 자사이기주의 그리고 방송이기주의로 보일까 걱정되지만 그 뜻을 헤아려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알고 말했는지, 모르고 말했는지 모르지만, 박혜진 앵커는 이날 딱 하나 진실을 말했다. 경제적으로 모두 힘든 때, 자기들이 방송을 중단하고 거리로 나서는 진정한 이유는 바로 자사이기주의, 방송이기주의 때문이라는 진실을....
* '여론독과점'과 '진실왜곡'을 우려하는 방송을 하면서 MBC는 또 여론을 '독점'했다. 한나라당의 언론관계법 개정에 찬성하는 주장, 방송 파업에 반대하는 주장, MBC의 주장에 대해 비판적인 주장을 하나도 내보내지 않은 것이다.아울러 이처럼 자기들의 일방적인 주장을 시청자들에게 전파(傳播)하기 위해 '공공의 재산'이라는 전파(電波)를 제멋대로 사용한 것은 자사이기주의, 방송이기주의의 극치였다.
엔파람 : 강철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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