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학계의 미스터 쓴소리' 이준구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가 22일 두편의 글을 잇따라 올려 강만수 경제팀의 10.21 부동산대책 등의 허구성을 질타하는 동시에, 감세정책을 "사이비"라고 질타하는 등 융단폭격을 가했다.
이 교수는 우선 '쿠오바디스?'라는 글을 통해선 미국발 금융위기로 시장만능주의의 허구성이 드러난 점을 지적한 뒤, "쓸모없는 규제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데 전혀 이의가 없으나 규제 완화의 와중에서 필요한 규제까지 떠내려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몇몇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음을 보지 않았는가"라며 "이 점에서 볼 때 금산분리 완화 방침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며 정부여당의 금산분리 완화 방침을 질타했다.
이 교수는 이어 지금 한국이 최대 위기에 직면했음을 지적한 뒤,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동산거품 붕괴다. 이것만 막을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면서도 "부동산경기 부양책쯤으로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라고 전날 정부의 10.21대책을 질타했다.
그는 이어 "이런저런 부양책을 내놓아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며 "패닉의 홍수 앞에 부양책은 모래주머니로 만든 둑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패닉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있다. 이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현재 위기의 본질이 정책 불신에 있음을 지적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 경제는 가혹한 환경에서 대응 능력을 받고 있다. 이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라며 "그러나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무능력과 소통 부족으로 우리에게 실망감만 안겨 주었을 따름이다. 이 리더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위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며 이명박 대통령의 리더십을 문제삼았다.
이 교수는 또다른 글 '사이비 이론의 화려한 부활'을 통해서는 레이거노믹스의 근간이 된 '래퍼이론'이 국제경제학계에서 이미 오래 전 사멸됐음을 지적한 뒤, "흥미로운 것은 사망선고가 내려진 지 20년이 넘은 이 사이비 이론이 태평양 넘어 한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감세가 경제를 살리는 묘방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그 부활의 주역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며 강만수 경제팀의 감세 이론을 사이비로 규정했다.
그는 "만약 내기를 한다면 법인세율 인하의 투자촉진 효과가 별로 없다는 데 자신 있게 걸 용의가 있다"며 "특히 지금처럼 시스템 그 자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감세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는 격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번 감세정책으로 미미하기 짝이 없는 우리 조세제도의 재분배기능은 한층 더 약화되고 말았다"며 "한번 내린 세금을 다시 올리기 힘들기 때문에 나중에 바로잡기도 어려운 형편"이라고 개탄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두편 전문.
쿠오바디스?
역시 세상은 돌고 도는 법인가 보다. ‘나를 배우라’고 으스대던 미국이 서브프라임 미사일 한 방에 맥없이 비틀거리고 있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부러움의 대상이었던 투자은행은 미국호의 침몰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애물단지로 전락해 버렸다. 시장의 자율을 부르짖던 미국정부가 다급해지자 서슴없이 7천억 달러 돈 보따리를 풀어 놓았다.
그 동안 애오라지 미국모델을 본뜨려고 노력해온 우리로서도 허탈함을 금할 수 없다. 이제 우리는 어디로 향해 나아가야 할까? 시장의 시대가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는 것은 너무 성급한 진단이다. 위기가 지나가고 나면 시장의 힘찬 고동은 다시 전 세계로 울려 퍼질 것이다. 그러나 시장이 만능은 아니라는 점 하나만은 분명하게 밝혀졌다.
시장과 정부 사이의 적절한 역할 분담이란 문제에는 정답이 있을 수 없다. 나라에 따라 그리고 시대에 따라 그 답이 달라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미국모델이 마치 모범답안이라도 되는 양 그저 베껴오기에 여념이 없었다. 이제 미국모델이 가진 한계가 명백해진 이상 그것을 베껴오는 전략에도 근본적 수정이 필요해졌다.
스티글리츠 교수가 잘 지적했듯, 금융위기를 통해 시장의 위선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잘 나갈 때는 정부 간섭을 뿌리치다가 다급해지면 정부의 도움을 구걸하는 위선 말이다. 시장의 탐욕은 시스템의 위기를 가져오고, 결국 그 뒤치다꺼리는 납세자의 몫이 된다. 정부가 시장의 고삐를 놓쳤을 때 얼마나 큰 위험이 닥칠 수 있음을 생생하게 목격했다.
이번 금융위기에서 한 줄기 위안을 찾을 수 있다면, 시장근본주의의 폭주에 제동을 걸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점이다. 정부를 몰아내고 그 자리에 시장을 갖다 앉히면 그게 바로 개혁이라는 맹목적 논리는 이제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시장의 자율 못지않게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감시와 통제도 중요하다는 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쓸모없는 규제를 대폭 정리해야 한다는 데 전혀 이의가 없다. 그러나 규제 완화의 와중에서 필요한 규제까지 떠내려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몇몇 금융기관의 도덕적 해이가 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비화할 수 있음을 보지 않았는가? 이 점에서 볼 때 금산분리 완화 방침은 아주 위험한 도박이 아닐 수 없다. 위기의 확산을 더 빠르게, 더 광범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순간 우리는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는 절박한 상황에 처해 있다. 미구에 금융위기의 후폭풍이 거세게 휘몰아칠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공들여 쌓았던 탑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도 있다. 발생 가능성이 크다고 보지는 않지만,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부동산거품 붕괴다. 이것만 막을 수 있다면 최악의 상황은 면할 수 있으리라고 본다.
부동산경기 부양책쯤으로 거품 붕괴를 막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큰 오산이다.
이런저런 부양책을 내놓아도 시장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패닉의 홍수 앞에 부양책은 모래주머니로 만든 둑에 불과할 뿐이다. 문제의 핵심은 패닉의 확산을 조기에 차단하는 데 있다. 이는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에 대한 신뢰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우리 경제는 가혹한 환경에서 대응 능력을 시험 받고 있다. 이 위기상황을 슬기롭게 헤쳐 나갈 리더십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절실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러나 현 정부가 지금까지 보여준 것은 믿고 의지할 수 있는 리더십과 거리가 멀다. 무능력과 소통 부족으로 우리에게 실망감만 안겨 주었을 따름이다. 이 리더십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위기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있을 수밖에 없다.
사이비 이론의 화려한 부활
한 무명 경제학자가 종이 냅킨 위에 이 레이거노믹스에 영감을 불어 넣었다고 한다. 래퍼곡선이라고 불리는 이 그림은 세율을 내리면 조세수입이 오히려 늘어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세율 인하가 경제를 활성화시켜 세원을 더 크게 만들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다는 것이다. 줄기차게 감세를 부르짖어 오던 레이건으로서는 천군만마의 힘을 얻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레이거노믹스가 거품이었던 것이 드러남에 따라 래퍼곡선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리고 래퍼곡선이 기반을 두고 있는 소위 공급중시경제학에 대한 신뢰도 땅에 떨어지게 되었다. 경제학 교과서 어느 것을 펴놓고 보아도 공급중시경제학을 진지하게 다룬 사례는 하나도 찾아볼 수 없다. 시류를 타고 한때 반짝한 사이비 이론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것은 사망선고가 내려진 지 20년이 넘은 이 사이비 이론이 태평양 넘어 한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점이다. 감세가 경제를 살리는 묘방이라도 되는 양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그 부활의 주역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우리 경제가 또 한 번 이런 사이비이론의 시험대가 되려 한다는 사실이 걱정스럽기 짝이 없다.
정부는 이번에 취한 감세정책이 대폭적 투자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런 을 갖게 되었는지 의아스러울 따름이다. 나는 법인세율 인하가 투자 증가를 가져왔다는 믿을만한 분석결과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경제학계에서는 심지어 법인세의 성격이 과연 무엇이냐에 대해서조차 의견의 일치를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약 내기를 한다면 법인세율 인하의 투자촉진 효과가 별로 없다는 데 자신 있게 걸 용의가 있다. 현 상황에서 우리 기업들이 투자를 머뭇거리고 있는 결정적 이유가 다른 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엄청난 현금을 깔고 앉아있으면서 대통령의 읍소에도 꿈쩍 않는 이유가 무거운 법인세 부담에 있다고 볼 수 있을까? 이것은 대답할 가치조차 없는 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상속세 깎아준다고 중소기업들이 대규모 투자에 나서리라고 기대하는 것 역시 엄청난 오산이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죽어버린 소비심리, 좁디좁은 대출창구, 그리고 널뛰는 이다. 상속세 부담에 대한 두려움이 투자심리를 위축시키는 주원인이라는 인식은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도 한참 동떨어져 있다.
특히 지금처럼 시스템 그 자체가 불안정한 상황에서는 감세가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하는 격이 될 수 있다. 감세정책은 시스템이 안정되어 있는 상황에서만 기대하는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 감세정책의 효과가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정부는 또 핑계를 댈 구실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주변 여건을 고려하지 않고 무리수를 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결국 이번의 감세정책은 부자들만을 위한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정부는 중하위 소득계층에도 감세의 혜택이 돌아간다고 강변하지만, 그 크기는 고작 떡고물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2006년에 상속세를 한 푼이라도 낸 사람은 불과 0.7%에 불과한데, 감세의 최대 수혜자가 바로 이 최상위 소득계층이라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번 감세정책으로 미미하기 짝이 없는 우리 조세제도의 재분배기능은 한층 더 약화되고 말았다. 한번 내린 세금을 다시 올리기 힘들기 때문에 나중에 바로잡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경제살리기 효과도 의심스러운 정책 탓에 두고두고 안고가야 할 부담을 떠안게 된 셈이다. 부작용을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고 막무가내로 밀어붙인 대가가 너무 클 것 같아 걱정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