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정권 교체에는 두 가지가 있다. 같은 정당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이뤄지는 '계승적 교체'가 하나라면, 다른 정당의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이뤄지는 '전환적 교체'가 또 다른 하나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에서는 두 번의 전환적 정권 교체가 있었다. 1998년 김대중 정부의 출범과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이 그것이다.
일반적으로 계승적 교체에는 국정의 기본 방향이 크게 수정되지 않는 반면, 전환적 교체에는 국가 비전부터 시작해 인적 자원에 이르기까지 대대적인 변화가 진행된다. 1998년의 경험과 2008년의 경험은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김대중 정부의 출범이 중도개혁 세력의 첫 번째 집권이라는 점에서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면,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산업화 세력의 재집권이라는 점에서 정권 교체의 또 다른 의미와 결과를 생생히 보여줘 왔다.
길게 보면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성숙해 간다고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난 1년의 이명박 정부의 체험은 우리 정치, 우리 경제, 무엇보다 우리 민주주의의 현주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명박 정부는 대체 우리 사회를 어디로 이끌고 가려고 하는 걸까.
토건국가로서의 이명박 정부
환경을 둘러싼 정책 이슈들은 이명박 정부의 성격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준다. 2007년 대통령 선거 당시부터 제기돼 논란을 거듭해 온 대운하 정책, 그 연장선상에 놓인 4대강 정비 사업, 그리고 거시적인 국가 비전으로서의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은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발전주의' 중의 발전주의적 성격을 대변한다.
▲ 경제 위기를 빌미로 이명박 대통령이 보류했던 한반도 대운하 사업을 강행할 태세다. 이 대통령은 15일 운하 사업과 다를 게 없는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결정하고 2012년까지 14조 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프레시안 |
주목할 것은 이명박 정부의 발전주의에는 국가가 시장을 창출하고 주도하는 전통적인 발전국가론 가운데 이른바 토건국가적 성격이 유독 두드러진다는 점이다. 토건국가란 호주의 동북아시아 전문가 개번 매코맥(Gavan McCormack)이 사용한 개념으로, 정부가 건설을 포함한 사회간접자본(SOC)에 집중 투자하지만, 그 이면에는 정치권과 건설업자 간의 제휴가 작동하고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토건국가의 매력은 경기 부양과 일자리 창출에서 단기적으로 큰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대운하 또는 4대강 정비를 포함한 일련의 국책 사업을 이명박 정부가 쉽게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음은 물론이다. 문제는 이런 토건국가적 기획이 과거 1960-70년대에는 어울리지 몰라도 현재와 같은 21세기의 정보사회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는 점이다.
이웃 일본의 경험은 훌륭한 반면교사다. 각종 건설 공사를 벌임으로써 거품을 즐겼던 일본은 결국 국가 재정이 파탄 나는 결과를 겪지 않을 수 없었으며, 또 무분별한 건설 공사는 환경을 훼손함으로써 미래 세대의 자산을 현재 세대가 마음대로 끌어다 소비해버리는 과오를 저지르기도 했다. 이렇게 이미 검증이 된 정책을 굳이 따라가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기조는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녹색성장 전략의 문제점
토건국가적 기획의 한계들은 이명박 정부가 지난해 8월 발표한 저탄소 녹색성장 전략에도 그대로 담겨 있다. 정부의 주장에 따르면, 녹색성장은 온실 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지속가능한 성장이라는 것이다. 이런 녹색성장의 구체화된 정책이 지난 1월에 발표된 '녹색 뉴딜'로, 정부는 향후 4년간 50조원을 투자해 녹색성장을 모색하고, 녹색성장 전략에 고용창출 정책을 결합해 일자리 95만개를 만들겠다는 야심을 펼쳐보이고 있다.
녹색성장과 녹색 뉴딜을 물론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정부 자신이 강조하듯 녹색성장으로 기성세대의 노후와 미래 세대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것은 전적으로 타당하다. 탄소 시대에는 뒤졌으나 수소 시대에는 앞서야 한다는 주장에도 전적으로 공감한다.
문제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다. 정부 계획에 따르면, 4대강 및 연계사업에 투자되는 18조원을 포함해 전체 사업예산 50조원 가운데 사회기반시설 투자관련 부문이 32조원 이상을 차지하는 반면, 정작 신재생 에너지 연구개발에 투여되는 예산은 3조원에 불과하다.
일자리 창출도 문제다. 녹색 뉴딜의 계획은 그 절반 이상이 토목 및 건설 사업에 주력하기 때문에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녹색 뉴딜로 만들어질 수 있는 일자리에는 건설 및 단순생산직이 전체의 95%가 넘는 91만6156개에 이르는 반면, 전문·기술·관리직은 고작 3만 5270개에 머물러 있다.
세계화 시대의 '고용 없는 성장'에 맞서 괜찮은 일자리 창출만을 강조하는 것이 물론 지나친 이상론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건설 및 단순노무직이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녹색 뉴딜이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 정치적 상상력이 놀랍고 당황스러울 뿐이다.
더욱이 그 계산 방식 또한 기술향상 및 정보사회의 진전에 따른 노동력 절감을 고려하지 않는 단순 논리이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최근 경제 위기 상황을 고려할 때 일자리 창출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어떤 일자리냐의 문제도 중요하다. 전국을 공사판으로 만들어 창출되는 일자리가 녹색성장의 중심을 이루는 한, 그것은 미래 지향적인 전략이 아니라 과거 퇴행적인 전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 녹색뉴딜, 녹색 부국을 강조하는 것에는 이명박 대통령 자신의 체험이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름을 널리 알리고 대통령 당선에 크게 기여한 것은 다름 아닌 서울 시장 재임 시 추진했던 청계천 복원이었다. 바로 이런 경험의 연장선상에서 환경을 발전전략에 포섭해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보여주는 동시에 일자리 창출을 포함한 경제적 효과를 창출해 보겠다는 발상이 녹색성장 전략의 핵심에 놓여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의 녹색성장은 경제성장과 환경보전의 상생을 꿈꾸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녹색 부국의 프로그램이 아니다. 그것은 녹색 부국의 가면 뒤에 '토건 부국'이 감춰져 있는 토건국가의 언술적 변용이 불과하다. 더욱이 수도권 규제 완화, 핵발전소 추가 건설, 경인운하 사업 등 일련의 정책들은 녹색성장이 환경친화적 전략이 아니라 환경파괴적 전략임을 그대로 웅변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 위한 녹색 프로그램 제시해야
돌아보면 이명박 정부는 노무현 정부가 갔던 길을 그대로 쫓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003년 출범한 노무현 정부는 '2만불 시대'를 위시해 '동북아 시대', '동반성장' 등 거의 매년 새로운 국가 비전을 발표해 왔다. 중요한 것은 비전이 아니라 구체적인 정책과 실질적인 행동계획(action plan)이다. 바로 이점에서 노무현 정부는 마지막까지 아마추어 정부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이명박 정부가 제시하는 녹색성장 전략을 보면 노무현 정부의 2만불 시대 전략을 떠올리게 한다. 실제를 담보하지 않고 수사에 머물고 있는 녹색이란 담론적 포퓰리즘이 그러하고, 21세기적 사회변화에 상응하는 산업 전략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한 점이 그러하며, 구체적인 행동계획이 전문적이지 않고 치밀하지 못한 것 역시 그러하다. 이명박 정부가 지난 1년 동안 제시한 녹색성장 전략을 언제까지 이끌어갈지 예측하기는 어렵다. 녹색성장에 대해 이제까지 나타난 국민 다수의 반응은 신통해 보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이명박 정부에게 그렇게 시간이 많은 게 아니라는 점이다. 지난 해 봄 촛불집회를 통해 적지 않은 진보적 성향의 국민들이 이명박 정부로부터 마음을 돌렸다면, 가을부터 시작된 경제위기로 인해 이제는 보수적 성향의 국민들마저 이명박 정부에 대한 기대를 접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녹색 부국이 이명박 정부가 마음 속에 진정 품고 있는 새로운 국가 비전이라면, 토건국가적 녹색성장이 아니라 생태국가적 녹색성장, 사회적 약자를 위한 녹색 부국의 프로그램 및 전략을 새롭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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