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기자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쏟아낸 정두언의 말들이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인터뷰가 두 차례나 늦어지는 등 골절이 많았으며, 인터뷰가 시작되고도 “인터뷰는 곤란하다”는 말을 여러 번 하던 정 의원의 입이 한번 열리자 녹음이 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청산유수처럼 속내를 다 드러냈다고 적고 있다.
정 의원과의 인터뷰를 따낸 기자는 아주 신중하게 정 의원을 변호하려는 고객만족 정신을 충실히 보여주고 있다. 기사 서두에서 기자는 2000년 당시 서울시 정무부시장 시절로부터 시작된 정 의원과의 긴 관계를 언급하면서 정 의원이 그 시절부터 대선 및 총선 때까지 이명박의 복심이었음과 얼마 전부터는 견제를 받아 밀려났다는 정가의 소문이 파다한 사실을 서론으로 잡고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 기사 말미에는 ‘인터뷰 후기’라는 보통의 인터뷰 기사에서 보기 힘든 부록같은 결론 부분을 통하여 또 다시 고객보호를 시도했다. 인터뷰 직후 정치부 기자들 사이에서 "정 의원이 술에 취해 조선일보를 욕했다"는 소문이 돌았다는 에피소드와 함께, 한나라당 의원과 정부기관의 인터뷰 내용을 탐문하고 게재 여부를 확인하는 전화가 있었으며, 인터뷰 내용에 이름이 거명되는 비서관이 정 의원에게 전화를 걸어 화해를 요청했던 사실 등을 적음으로써 정 의원의 충심이 사그라든 것은 아님을 유난히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한술 더 떠서 인터뷰 후기의 말미에 “이런 정보 수집력을 지닌 현 정부가 왜 다른 데서는 헛발질을 계속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는「후기의 후기」를 싣고 있는데, 정부를 제대로 까는 것도 아니고 그저 깐죽댐으로써 취재원인 정두언을 비호하겠다는 ‘하류 정치부 기자 특유의 헛발질’이라는 생각이 들어 나름 재미있었다.
기자는 정 의원과 2시간 넘게 이야기했다. 첫 질문은 국민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것으로 잡았다."취임 후 100일간 청와대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겁니까?"
정 의원의 인터뷰 요지는 “이명박 정부는 당내 경선이 워낙 치열하다보니 대선(大選) 승리 후 국정을 수행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인재 풀만 잘 가동했으면 준비가 없었어도 괜찮았을 것인데, 문제는 청와대의 일부 인사가 국정 수행에 집중한 게 아니라 전리품 챙기기에 골몰하면서 생겼다"는 것이었다.
전리품이 구체적으로 뭘 말하는 거냐는 기자의 질문에 정 의원은 현대에서의 전리품은 장·차관 자리, 공기업 임원 자리에 자기 사람을 심는 인사요, 그게 곧 이권(利權)이 되는 거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런 전리품 챙기기에 나선 것은 청와대의 세 명과 국회의원 한 명이라면서, ‘국정 수행을 하려면 능력이 있거나 능력이 없으면 최소한 인품이라도 갖춰야 하는데, 그런 자질이 없는 사람들은 보통 인사(人事)를 장악하려 한다’고 A수석, B비서관, C비서관, D의원을 직접 거명하고 나섰다.
흥선대원군이 세도(勢道)정치 없애겠다며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을 고르고 골라 앉혀놓은 인물이 대원군을 쫓아내고 또 다른 세도를 부리기 시작한 민비(閔妃·명성황후)라며, 그 민비와 같은 존재인 A 비서관을 거명한다. A수석보다 더 문제 있는 사람이 B비서관이라며 노태우 정부의 박철언(朴哲彦), 김영삼 정부의 김현철(金賢哲), 김대중 정부의 박지원(朴智元), 노무현 정부의 안희정(安熙貞) 이광재(李光宰)와 같은 존재, 아니 그 모두를 합쳐놓은 힘을 가진 자로 낙인찍었다.
D의원과 청와대의 A, B, C가 밀접한 관계를 맺고, 대통령도 모르게 인사 장사를 하고 이 정부 들어 사람들이 계속 문제라고 지적하는 강부자, 고소영 내각'을 만들었다고 맹공을 가했다.
최근에 "청와대에 정무(政務)기능이 없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킨 적이 있었던 정 의원은 "언론에서는 청와대의 정무기능을 정무수석이 하는 걸로 오해하는데, 실제 정무기능이라는 것은 청와대뿐 아니라 장관, 차관들도 모두 발휘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장관들이 인사권이 없는데 어떻게 정무기능을 수행하겠느냐고 반문했다고 한다. 차관 인사를 청와대의 몇 명(앞에서 거명한 세 명)이 다 했다는 뜻이라는데 동의한 것으로 기사는 전하고 있다.
그 세 명의 청와대 인사 중에 정 의원 자신이 추천한 인사(B비서관)가 있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배신 당했다고 했고, 자신이 복심이라면서 왜 그런 문제에 대해 직언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는 직언을 했지만 그들 몇몇이 대통령의 지시도 어기고 그랬다는 둥, 대통령이 “저러다 정두언이가 다치겠다 싶어 내각과 청와대 인선에서는 손을 떼고 당(黨)의 일만 맡으라”고 했다는 둥 대통령과 자신은 철저히 문제의 원인으로부터 차단하는 방식으로 즉답을 피해가고 있었고, 기자는 그것을 그대로 활자화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최대 피해자가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기자 질문에 정 의원은 대통령이라고 간단히 대답한 것이나 그 몇 명을 왜 한나라당에서 견제하지 못하는 거냐는 질문에 "지하철 타면 왜 왔다 갔다 하면서 사람들 어깨 툭 치고 지나가는 (건달 같은) 사람들 있잖아요. 쳐다보면 '야, 이 ××야!'라고 험상궂은 표정을 짓잖아요. 청와대 수석들이 그 몇 명에게 모두 그런 식으로 당하고 있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어처구니 없는 대답도 했다.
오죽하면 기자가 이야기를 듣다 보니 어처구니가 없는데 그렇게 당에 힘이 없는 거냐고 묻자 정 의원은 집권 초 '55인 사건'이란 것을 꺼내든다. 그때 의원 55명이 이런 상황을 예견하고 세 가지 원칙 준수를 촉구한 게 바로 ‘55인 사건’이라고 한다. 당시 조건은 첫째 세대교체를 위해 고령자 은퇴, 부정부패자 은퇴, 대선(大選) 과정에서 네거티브 운동을 한 사람 은퇴였는데 다 실패했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그 문제를 인식하고 있었고, 그래서 “형에게 전국구 말번(末番)을 주면 어떻겠느냐”"고도 했는데, 55인 사건에 앞장섰던 이재오(李在五) 의원이 빠지면서 자기들만 이상하게 된 거라고 했다.
이재오는 성격이 나이브해서 다 뒤집어 쓴 영웅이고 자기들, 특히 자신은 그저 피해자며, 아직도 이명박이 자신을 중히 쓸 것이라는 논법을 계속 설파했다. 국민은 그동안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서 일어나는 일이 친이(親李) 친박(親朴) 논쟁에 이재오파다, 이상득파다 하는 것만 생각했는데, 전혀 뜻밖의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 그는, 심지어 청와대의 몇몇 핵심들이 마구잡이로 자파(自派)세력을 키우다 보니 노무현(盧武鉉) 정부의 부산 인맥이 스며들어오기도 했다고 주장까지 한다.
이런 내막을 빨리 밝히는 게 이명박 정부가 더 실패하지 않도록 하는 길이 아니냐는 기자의 지적에 "나는 장기적으로 전도양양하고 그 사람들은 하느님이 (악을 세상에 알리는) 도구(道具)로 쓴다"고 주장했다.
자신을 장자방연하면서도 실상은 단 한 가지도 제대로 된 충언을 하지 못한 채(실제 했는지는 모르지만 드러난 것은 그렇다), 늘 뒷북이나 치면서 자신의 충심을 공개리에 과시하려는 정두언의 잔머리는 사태를 늘 악화시켰다는 것을 주지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번 ‘55인 사건’ 때도 그랬고, 이번 조선일보 인터뷰도 그랬다. 특히 이번에는 청와대 수석진이 총사퇴하겠다고 사표를 제출하자마자 ‘진작 그랬어야 한다’는 식의 뒷북치기를 하는 그를 보면서, 왜 그런 중차대한 내용이라면 사표를 내기 전에 먼저 하지 못했는지, 자신은 백의종군 한다면서 의원 사퇴서를 제출하는 쑈같은 거라도 하지 않는지 더욱 궁금해진다.
정두언이 장자방이라면 그게 더 이명박 정권의 문제일 듯하다. 장자방은 어떤 경우든 자신의 소신과 철학을 얘기하고 그런 진언에 대해 일언반구하지 않는다. 그리고 장자방은 자신이 또 다른 장자방에 의해 가로막혀서 자신의 소신과 철학이 주군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변명을 하지 않는다. 또 그가 어떤 철학과 소신을 말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을 정치공학적으로 제3자를 향해 공개적으로 펼쳤다는 사실은 스스로 주군을 위해 뛰는 장자방이 아니라 장자방 자신의 영달을 위해 뛰는 짝퉁 장자방이라는 것을 증좌한 셈이다. 아마 정 의원이 이번 조선일보 인터뷰로 팽 당한다면 그건 팽이 아니라 본디 의미에서의 구조조정일 것이다.
최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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