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동영의 오판과 박상천의 과욕
찢어진 세력을 하나로 모은다는 것이 이렇게 어려운 것인 줄 정동영 후보는 아마 몰랐을 것이다. 과거 민주당을 ‘개혁 대상’이라며 목소리 높이면서 그들끼리 똘똘 뭉쳐 열린우리당을 창당할 때만해도 좋았다. 당 지도부를 몰아치는 방법, 상대방을 짓뭉개고 자신들이 승리하는 방법에서는 거의 완벽할 정도로 그들의 전략은 착착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야심도 컸다. ‘낡아빠진 민주당’과는 다른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고 공언하면서 잠시 새로운 시대를 여는 듯 했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이른바 ‘노빠’, ‘탄핵돌이’ 등의 비아냥을 들으면서 고통의 시절을 맞고 있다. 열린우리당은 일찌감치 해체됐지만 그 그림자는 대통합민주신당까지 드리워져서 좀처럼 국민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명박 후보가 BBK 문제로 저렇게 두들겨 맞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스페어 후보론’을 업고 깜짝 등장한 이회창 후보한테도 밀리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저렇게 정동영 후보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일까. 140석을 가진 원내 1당의 대선후보가 10%대 중반의 지지율을 받고 있다면, 이것은 뭐가 잘못 돼도 한 참 잘 못된 얘기다.
대통합민주신당을 왜 만들었나?
우리는 지난 수개월 동안 너무도 지루했던 범여권의 대통합논의를 지켜보았다. 열린우리당 탈당사태도 보았고 그들이 신당을 만들어 가는 과정도 지켜보았다. 물론 여기에 손학규 전 지사 그룹이 참여하고 일부 시민사회세력까지 참여하면서 열린우리당과는 좀 다른 새로운 ‘제3의 정치세력’이 형성될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새로운 것은 거의 찾아 볼 수 없었다. 열린우리당이 통째로 합류했을 뿐더러 대통합논의 과정을 보면 구태정치도 이런 구태정치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 한마디로 ‘김한길 그룹’을 보라. 열린우리당을 혹평하며 탈당을 주도했던 그들이 돌고 돌아서 간 곳은 다시 ‘그들의 동지’ 곁이었다. 정동영 후보도 탈당까지 했지만 다시 열린우리당 사수세력과 손을 잡았다. 그렇다면 정말 묻고 싶은 것은 왜 탈당을 했으며, 대통합민주신당이란 것을 왜 만들었는가 하는 점이다. ‘정치세탁’을 통해 국민을 속이려는 것이 아니었다면, 한 치 앞도 보지 못한 채 정치를 희화화시킨 너무도 가벼운 처신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민주당과의 통합협상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정치의 세계에는 영원한 적도, 영원한 동지도 없다고 하지만 민주당을 개혁대상이라고 비난할 때와 다시 대통합하자고 할 때의 두 시기에는 어떤 입장의 변화가 있는지 국민은 잘 알지 못한다. 그저 쓰면 뱉고 달면 삼키는 식의 저급한 생존방식 외에는 그 이유를 찾기 어렵다는 말이다.
대통합논의에서 빠져버린 민주당은 더 큰 실리를 얻기 위해 독자적으로 대선을 준비하면서 이인제 후보를 대통령 후보로 선출하였다. 그리고 나서 다시 통합과 후보단일화 논의가 시작된 것은 예상보다 빠른 시점이었다. 지지율 1%라도 급급한 정동영 후보와 바닥세를 면치 못하고 있던 이인제 후보가 예상보다 빨리 결단을 내린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이회창 후보라는 돌발변수가 불거진 것도 한 몫을 한 셈이다.
그러나 이마저도 실패하고 말았다. 어처구니없게도 정동영 후보는 지난 11월 12일의 ‘4인 회동’에서 당대 당 통합과 후보단일화를 조건으로 민주당에 당내 지분의 절반을 양보하였다. 더욱이 전당대회도 내년 총선 이후에 실시키로 함으로써 공천권을 비롯한 박상천 대표의 기득권을 그대로 인정해 버렸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대박’이었는지 모르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의 다른 정파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정동영 후보가 ‘오버’를 넘어서 ‘오판’을 한 것이다. 아무리 대통령후보라고 하더라도 내년 총선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겠다고 나선 것도 문제지만, 소속 의원들이 순순히 따라줄 것으로 봤다면 이것은 엄청난 착각이다. 140명의 소속의원 가운데 절반이 내년 총선에서 불안감을 갖는다면 마음 놓고 대통령 선거운동을 한다는 것은 언감생심일 뿐이다. 당연히 대통합민주신당의 내부반발을 샀고, 민주당과의 통합은 결국 없던 것으로 돼 버렸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은 약속이 아니다
굳이 민주당을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불과 몇 퍼센트의 지지율로 지역주의 정치의 한 귀퉁이를 터전 삼아 연명하는 정당에게 무슨 할 말이 있겠는가. 다만 유구한 전통이 있고 현대정치사의 흐름에서 당당한 궤적을 밟아왔던 민주당이라면, 미래에 접근하는 방식도 그렇게 당당하게 임했어야 했다는 사실이다. 감동을 창출하지는 못할망정 대의에 복무한다는 최소한의 의지만큼은 보여줬어야 했다는 뜻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정치행보를 보면 안타까움을 넘어서 지나칠 정도로 과욕을 부리고 있다는 생각이다. 불과 몇 개월 전까지만 해도 박상천 대표는 국정실패세력과는 절대로 같이 갈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 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그는 신당을 폄하 하면서 ‘잡탕정당’이라고 했다. 박상천 대표는 이런 명분으로 대통합논의에서도 빠졌다. 그러나 그 속내는 지분이 줄어들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른바 각 계파 수장들 가운데 하나인 ‘원 오프 뎀(one of them)'으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의 전략대로 민주당은 정동영 후보의 지지율이 답보상태에 있을 때 속전속결식으로 엄청난 도박을 벌인 셈이다. 그 결과 지분율 50%와 차기 총선에서 박상천 대표의 대표성 인정, 이 정도라면 민주당은 그야말로 ‘대박’을 터트린 셈이다. 그러나 욕심이 너무 많았기 때문일까. 당장 대통합민주신당에서 반발이 나왔고 결과적으로 ‘대박의 꿈’도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민주당도 140석과 8석의 두 정당이 지분을 둘로 나눠서 당대 당 통합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과욕인지 모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더욱이 당내민주주의를 주도했던 민주당의 역사를 보더라도 총선 전에 새 지도부를 뽑는 것은 불문율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대선 지도부가 어떻게 그대로 총선 지도부까지 갈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현 정당체제에서 민주당이 처한 위상과 현실을 망각하고 과욕을 부린 것이다. 지역주의 정치를 볼모로 무리수를 둔 것이고 결과적으로 그동안 숨겨왔던 ‘시커먼 속내’만 드러내고 말았다.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운 일이다. 언제까지 ‘약속위반’이라는 말만 되풀이할지 두고 볼 일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정동영 후보가 보여준 원칙과 비전, 그리고 정치력이 얼마나 가볍고 무기력한지를 느꼈다면 이것은 비단 필자만의 생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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