겸손하고 조용한 해결사 반기문 유엔사무총장
쓴소리 마다않는 ‘김치외교’ 1년, 세계 언론 극찬
기후변화 대응에 국제적 공조 이끌어내
2007년 1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취임하면서 한국 외교사는 또 하나의 지평을 열었다. 반 사무총장 취임 이후 한국은 유엔에서 국제적 위상을 높여가고 있다. 36년간의 일제 식민지를 거쳐 유엔 신탁총치를 받았으며, 한국전쟁 당시 16개국으로 구성된 유엔군의 지원을 받았던 한국은 유엔 가입 10년만에 한승수 유엔 총회 의장을 배출한데 이어 그로부터 5년 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하면서 유엔의 핵심 기여국가로 부상했다. 2007년 새해가 밝음과 동시에 출범한 반 총장의 세계 외교시대, 그 숨가빴던 365일을 짚어봤다.
지난 1월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세계 192개 회원국 대표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취임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회원국들의 분쟁에 다리를 놓는 조화로운 유엔의 역할을 위해서 신뢰회복을 최우선 순위에 두겠다”면서 유엔기구의 개혁과 세계 분쟁의 충실한 조정자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첫 행보로 반 사무총장은 세계 각지에서 벌어지고 있는 폭력사태와 분쟁을 주시했다. 반 사무총장은 취임과 동시에 유엔이 가장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3대 과제 중 하나로 아프리카 다르푸르지역 폭력사태를 꼽고 다국적 회의를 주최하는 등 발 빠른 대처에 나섰다. 다르푸르지역은 지난 2003년 2월 반군 조직들이 중앙정부에 반기를 들면서 시작됐다. 이후 4년여 동안 사망자 20만명, 난민 250만명을 방생시킨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다르푸르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반 사무총장은 오마르 알바시르 수단 대통령을 만나 설득하고 국제사회의 협조를 얻어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면서 수단이 그동안 거부해온 유엔 평화유지군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진전을 이뤄냈다.
또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반 사무총장은 밤낮없이 뛰어다녔고 신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라크를 방문하기도 했다. 출장뿐 아니라 유엔본부에 있을 때도 하루에 5~6번씩 각국 정상들과 전화통화를 할 정도로 국제분쟁 해결을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바쁘게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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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6일 아프리카 다르푸르지역 폭력사태를 해결하기 위 |
관료주의 유엔조직 개편 착수
한편 유엔 사무국의 개혁도 약속대로 실현, 지난 3월 유엔 총회에서 회원국 만장일치로 유엔 조직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성과를 올렸다. 이 과정에서 반 사무총장은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의 말을 회원국 대표들은 잘 들으려 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일일이 찾아다니고 설득한 결과 조직개편의 불가피성에 대해 이해를 하기 시작했고 결국 만장일치로 유엔 개혁안을 통과시키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고 밝혔다.
유엔 총회에 지난 4월 16일 제출된 유엔 개혁안은 유엔 활동과 관련해 불필요한 관료주의를 제거하는 조직개편안이다. 보고서는 일부 국가의 유엔의 각종 활동 프로그램이 많게는 20개씩이나 별도로 진행되는 문제점을 지적했고 여성 인권을 신장시키기 위한 유엔 기구도 단일의 조직으로 통합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앞서 반 사무총장은 지난 4월 11일 유엔 조직개혁 구상과 관련해 유엔개발계획(UNDP)이나 유니세프 같이 다양한 유엔의 기관들이 협력하면서 한정된 재원을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하는 방법 등 ‘하나의 유엔’으로 기능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반 사무총장이 추진하고 있는 유엔 개혁안은 비대해진 평화유지국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평화유지국에서 지원기능을 떼어내 현장지원국을 별도로 만들고 군축국을 사무총장 직속기기로 개편하는 것으로, 향후 총회 소위원회에서 세부적인 조직개편 내용이 마련될 예정이다.
소신 있는 해결사 반기문
반기문 사무총장은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과 수차례 만나 북핵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위한 국제적인 협력 방안을 논의하기도 했다. 지난해 10월 북한의 핵실험 이후 급속하게 냉각됐던 한반도의 긴장상태에서 북미간 관계개선은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문제였고 이 때 반 사무총장의 존재는 큰 힘이 됐던 게 사실이다. 반 사무총장은 본지 최재영 편집주간과의 대담에서 “북핵문제는 당사자국인 남과 북이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서 할 것이다. 크리스토퍼 힐, 콘돌리자 라이스 등 미국 내 안보와 관련된 고위급들을 차례로 만나 북미관계 개선을 위한 설득에 나설 것이며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한 국제사회의 공조를 얻어내는 역할을 하겠다”고 밝혀 그의 존재감을 실감케 했다.
반 사무총장은 한국인으로서 친미적 성향을 보일 것이라는 일부 우려와는 달리 미국 정부의 관타나모 수용소 인권유인 논란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분명히 밝히는 등 강하고 소신 있는 총장의 모습을 보여줬다. 중동문제에 있어서도 팔레스타인의 무차별 로켓 테러를 비난하면서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분리 장벽에는 반대하는 등 중심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또 이란 핵문제에서도 미국과 유럽의 유엔 제재 추진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면서 서방 진영의 일방 행보에 제동을 걸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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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
기후변화 대응 국제사회 협력 주도
반기문 사무총장 취임 이후 유엔본부는 예전과는 다르게 무척 분주해 졌다. 반 사무총장은 유엔이 주력해야 하는 분야로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에 대응한 국제사회 공조를 강조했다. 반 사무총장 직속의 기후변화팀을 신설하고 이 문제를 유엔의 최우선 현안으로 제시하면서 국제 협력방안을 도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반 사무총장과 찰떡궁합을 자랑하며 한국 외교사를 한 층 넓히는데 최고의 공로자로 꼽히는 한승수 전 유엔 총회 의장도 지난 3월 유엔 기후변화특사로 임명돼 지금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지난 9월에 열린 유엔 정기총회에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주요국들의 고위급 회담을 개최한 데 이어 12월에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유엔 기후변화협약(UNFCCC) 회의를 열어 지구온난화를 방지하기 위한 국제적인 협력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기후변화 대응 방안과 관련해 선진국과 개도국간의 이해관계가 엇갈리고 주요국들의 입장도 다른 상황에서 유엔은 올해를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다자간 협상이 궤도에 오르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이 과정에서 국제사회가 일치된 행동으로 기후변화 대응에 나서도록 의견을 조율함으로써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반 사무총장은 지구 온난화가 인류의 생존에 전쟁만큼이나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에 따라 기후변화로 인한 인류의 피해를 막기 위한 활동과 이를 위한 국제사회의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함을 촉구하는 등 기후변화 문제에 대응하는 실천이 시급함을 성명이나 연설 등을 통해 수시로 강조하고 있다.
반 사무총장 1년, 긍정적 평가 줄이어
지난 1월 2일 첫 출근시 기자들에게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 처형에 관한 질문에 “사형은 각국이 결정할 문제”라고 말한 것과 사무부총장과 사무차장 인선 등을 놓고 따가운 시선을 보냈던 주요 언론 등의 반 사무총장에 대한 시각은 시간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있다.취임 1년을 맞이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활동에 대해 이제 각국 대표들과 언론은 차분하지만 성공적이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지난 10월 로이터TV는 반 사무총장을 올해 노벨평화상의 잠재 후보로 꼽으면서 “반 사무총장이 핵 확산 위협과 테러, 유엔 개혁에 이르기까지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일을 맡아 5년의 임기를 시작했다”면서 조용하고 겸손한 반 사무초장이 보여준 그동안의 활동을 높이 평가했다. 이 방송은 반 사무총장이 “아프리카 다르푸르 사태 등 아프리카의 오랜 내전을 종식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했다”며 “이에 따라 최근 수단을 방문했을 때 수단 주민 2,000여명이 반 사무총장을 환영했다”고 반 사무총장이 보여준 리더십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덕분에 그동안 유엔에서 북한과의 대치 상황으로 인해 항상 저자세일 수밖에 없었던 한국의 위상은 어느 때보다 급상승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최근 갖가지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반 사무총장이 민감한 외교 현안들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는 ‘김치외교’를 펼치고 있다고 소개했다.
존 볼턴 유엔 주재 전 미국대사는 반 사무총장의 이같은 노력들을 “A+”로 높이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유엔 빌딩 내부에 있는 타성을 결코 과소평가하지 않는다”고 덧붙여 반 사무총장이 유엔 같이 이끌어 나가기 힘든 조직에서 지금 같이 적극적인 모습을 지속적으로 보여줄 필요성이 있음을 지적했다.
할릴자드 유엔 미국대사도 최근 “반 사무총장이 책임감과 투명성을 주창해 왔고 미국 대표부를 포함해 많은 회원국들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고 반 사무총장의 그간 활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면서 투명성 강화에 더욱 노력해 달라고 주문했다.
기후변화는 전쟁보다 무섭게 인류를 파멸로 몰아갈 것! (2p)
유엔 기후변화 종합보고서, 경고 쏟아내
한국, 기상관련 기초과학에 과감한 투자 시급
세계 130여개국이 참여하는 유엔 정부간 기후변화위원회(IPCC)는 지난 11월 17일 제4차 종합평가보고서에서 2100년 지구 평균 온도는 6.4도 상승하며 해수면은 59cm 상승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기후변화는 인류에게 회복할 수 없는 막대한 피해를 안겨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고서는 지난 100여년(1896~2005년)간 지구 평균 온도는 섭씨 0.74도 올랐고 해수면은 10~20cm 상승했으며, 앞으로 지구 평균 온도가 3.5도 올라가면 생물종의 40~70%가 멸종 위기에 처하게 된다고 밝혔다. 이번 보고서는 지난 6년간 연구를 집대성한 결과물로, IPCC가 산하 3개 실무그룹의 분야별 보고서를 바탕으로 관측 수치를 보다 정확히 하고 이에 따른 대책까지 제시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로 인한 지구의 생태계와 인류 생활 변화는 ▲극지방 고산지역 등 취약지역의 생물 멸종 ▲열파, 가뭄, 폭우 등 극한 기상현장 증가 ▲빈곤층 노령층 등 취약계층과 저위도 저개발 국가의 위험 증가 ▲해수면 상승과 극지방 빙하감소 등이다.
보고서는 특히 한반도가 속한 아시아 지역 대부분에서 2050년대 까지 음용할 수 있는 물이 줄고, 동남아시아 물의 순환 변화에 따른 홍수와 가뭄이 일어나 전염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늘 것이라고 강조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가 이같은 재앙을 피하려면 늦어도 2020년부터는 대기 중 이산화탄소 양이 줄기 시작해야 한다. 보고서는 “지구온난화는 인간이 방출한 온실가스로 초래된 현상임이 명백하다”며 “이를 막으려면 2020년까지 이산화탄소 수준이 떨어지기 시작하고 2050년에는 2000년의 50%~65% 수준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IPCC회원국들은 이번 보고서를 바탕으로 오는 12월 인도네시아 발리에서 열리는 유엔 환경장관 회의에서 2012년 만료되는 교토의정서를 대체할 새로운 온실가스 규제방안 등을 중점 논의할 예정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연계에 미치는 온난화의 피해는 공상과학소설에 나오는 것만큼이나 섬뜩한 것”이라며 “지구온난화의 잠재적 위협이 심각한 만큼 전 지구적인 긴급 대응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한국만 지구온난화대책 뒷걸음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지난 11월 13일 인간이 기후변화에 미친 영향을 연구하고 이를 널리 알림으로써 기후변화 문제의 해결을 위한 초석을 다지는데 노력한 공로를 인정해 엘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유엔 산한 기상연구 기구인 IPCC를 2007년 노벨 평화상의 공동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또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가장 주목해야 할 사건으로 지구온난화를 꼽았다.
이처럼 기후변화와 지구온난화는 국제적 재앙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를 해결하기위해 전 세계는 구체적인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이러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 뒷거름질만 하고 있는 신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취임 이후 첫 유엔 총회에서 기후변화가 주요안건으로 채택되는가 하면, 반 사무총장 직속 기후변화팀이 설치되는 등 지구온난화에 대한 전 지구적 대책마련에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발 벗고 나서고는 있지만 정작 반 사무총의 모국인 한국은 전혀 이러한 시류에 동참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유엔 산한 IPCC는 최근 “지구온난화가 머지않은 장래에 재앙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우리나라도 매년 상당한 액수를 지구온난화 대책마련에 쏟아 붙고 있지만 기후변화 예측과 영향평가 같은 기초연구에는 등을 돌리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11월 20일 과학기술부에 따르면 정부는 내년 국가 연구개발 예산 중 ‘국내 기후변화 대응 연구개발’에 3,791억원을 투입하기로 했다. 과기부는 ‘기후변화협약 대응 연구개발종합대책’에 따라 지난해와 올해는 이사업에 3,042억원, 3,424억원이 투입됐다.
문제는 이들 예산 대부분이 화석연료 대체에너지 개발과 에너지 이용효율 향상 등 응용기술 개발에만 집중돼 있다는 점이다. 최근 기상이변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 한 과학자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기후변화와 이에 따른 영향을 체대로 예측할 수 없는데 무슨 대책을 세운다는 것인지 모르겠다”며 “현재의 인력과 설비로는 한반도 기후가 10년 후, 50년 후에 어떻게 변할지 독자적인 심층연구를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유일한 연구 분야인 ‘예측, 영향평가 및 적응’에는 2006년 45억원이 투입된 데 이어 2007년 80억원, 2008년에는 115억원(약 3%)의 적은 예산만 배정됐을 뿐이다.
미국은 기초연구 분야에 속하는 기후변화 관련 과학프로그램에 올해 18억2,200만달러(약 16조원)를 투입한 데 이어 내년에도 18억3,600만달러를 책정해 놓고 있다.
영국 해들이연구소는 슈퍼컴퓨터 2대와 100여명의 연구원이 기후변화 연구를 전담하고 있다. 일본 프런티어사업단 기후변화연구소도 세계 최고 수준의 슈퍼컴퓨터를 활용해 100년 뒤의 기후변화를 예측할 수 있는 고해상도 기후모델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정책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려워 보인다. <세계일보>가 단독으로 입수해 보도한 자료에 의하면 과학기술자문회의의 ‘기후변화의 현황과 대응연구의 보완방향’ 보고서에는 “정부가 1999년부터 기후변화 대응 종합대책을 추진하지만, 온실가스 저감에만 치중하고 있다”며 “기후변화와 영향평가, 적응 분야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 보고서는 “이로 인해 기후변화에 따른 국가차원의 종합 대응책을 수립하기 어려운 상환”이라고 명시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