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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의 정치는 승리할 수 없다

이경희330 2007. 12. 1. 00:22

배신의 정치는 승리할 수 없다

동서고금을 들여다보면 그야말로 배신과 음모의 역사로 가득 차 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인간사가 다 그렇다고 하면 딱히 할 말이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탁류 속에 한 방울의 희망을 찾는 노력이 곧 이성의 회복이고 역사발전의 동력이라는 점은 언제나 역사의 교훈이기도 하다. 그래서 역사의 정의를 강조하고, 시대의 양심을 얘기하는 것은 언제나 우리들 가슴속에 영원한 빛이 되고 있는 것이다.

대선정국에 몰아친 배신의 ‘창(昌) 바람’
17대 대선을 불과 40여일 앞둔 지난 11월 7일이었다. 이미 5년 전에 정계은퇴를 선언하고 조용한 행보를 보였던 한나라당 이회창 전 총재가 전격적으로 한나라당을 탈당하며 대선출마를 선언하였다. 물론 대선출마 여부는 본인의 자유지만, 그래도 한나라당 총재를 지냈고 두 번이나 대선에서 분루를 삼켰던 그가 국민과의 약속을 져버리고 다시 대선에 출마하겠다는 것은 당시 상당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졌다.

더욱이 자신이 가꾼 한나라당이 아니었던가. 그 당의 대통령 후보가 50%가 넘는 지지율을 얻으며 완승구도로 가고 있는 마당에 대선정국의 판을 흔든다는 것이 어찌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될 수 있겠는가. 도와줘도 모자랄 판에 당내 갈등을 이용해서 자신을 대선후보로 두 번씩이나 밀어줬던 정당의 대선후보를 이제 와서는 끌어내리려는 시도는 어떤 경우에도 정당화될 수 없다. 이명박 후보에 대한 지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도 원칙이 있고 도의가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이다.
이회창 후보는 이명박 후보가 의혹이 많고 불안하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거 이회창 후보가 대선에 나섰을 때, 당내 다른 대선주자들이 이회창 후보한테 의혹이 많고 불안하다면서 너도나도 탈당해서 대선에 출마하는 것이 옳았다는 얘기인가. 그런 논리라면 이회창 후보는 민주당 이인제 의원을 정치적 스승으로 삼는 것이 더 옳은 일일 것이다. ‘이인제 효과’야말로 이회창 후보가 배우고 또 배워야 할 정치사의 교훈일 것이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중도세력과 부동층의 관심을 끌어와서 정동영 후보를 비롯한 범여권의 지지율을 잠식하고 있다며 긍정론을 펴는 경우도 있다. 물론 지지율만 놓고 따져보면 일부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은 대부분 한나라당 지지층 가운데서 박근혜 전 대표를 지지했던 범주로 볼 수 있다. 그 밖의 새로운 지지층을 끌어들인 것은 얼마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따라서 새로운 지지층을 형성해서 보수진영의 외연을 넓혔다는 주장은 하나의 명분찾기에 다름 아니다.
하지만 인정할 것은 있다. 밋밋했던 대선구도에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다소간의 흥행성을 부여했다는 점이다. 국민의 관심도 높아졌다. 이와 동시에 대역전의 기회를 찾고있던 정동영 후보에게 찬물을 끼얹는 역할을 했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동영 후보가 순식간에 지지율 3위로 밀려난 것은 개인적인 지지율 변동을 넘어서 범여권의 자존심에 결정타를 날린 것이다. 유탄을 맞은 창조한국당의 문국현 후보가 맥을 못 추는 것도 마찬가지 현상이라 하겠다. 오죽했으면 5년만에 등장한 무소속의 이회창 후보만도 못할까. 이제는 스스로 그 답을 찾아내야 할 상황이다.

이회창 후보의 등장은 결국 이명박 후보의 책임
이회창 후보의 대선출마와 관련해서 특정인에 대한 호, 불호를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회창 후보의 무소속 출마에 대한 취지와 절차 그리고 정치적 신뢰를 바탕으로 그 행위를 문제삼는 것이다. 이회창 후보의 출마가 결국은 이명박 후보에게 유리할지, 아니면 이회창 후보 본인이 당선되는 것으로 결론 날지는 여기서 논할 바가 아니다. 물론 정동영 후보한테 어부지리가 될지도 모를 일 이지만 이 역시 따질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런 관점에서 접근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경선이 끝나고 대통령 후보로 이명박 후보가 결정됐을 때 그에 대한 지지율은 50%를 넘어섰다. 가히 압도적인 지지였다. 그러나 그 축배의 노래가 너무 요란했기 때문일까. 진검승부의 큰 전쟁을 앞둔 이명박 후보는 진정한 장수의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했다. 축배의 노래에 장단을 맞췄을 뿐, 패배한 쪽의 눈물을 외면하고 말았다. 박근혜 전 대표측의 불안감과 허탈감을 챙겨주지 못했다는 얘기다. 이회창 전 총재가 주변에 있었지만 크게 신경도 쓰지도 않았다. 승자의 겸허함보다 오만함이 앞섰다면 너무 지나친 표현일까.

이회창 후보 등장의 원동력은 지지율 20%대가 결정적인 배경이 되었다. 그리고 그 배경은 이명박 후보가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이명박 후보 스스로 화를 자초했다는 설명이다. 사실 50% 넘는 지지율에 도취돼서 대통령 당선은 따놓은 당상이라고 자만했다고 비판하더라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지난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두 번이나 무너졌지만 또 다시 그런 전철을 되풀이한다는 것은 보통 문제가 아니다. 이회창 후보에게 박수를 보낸 20% 지지율, 그것은 이회창 후보가 반길 일이 아니라 이명박 후보가 가장 뼈아프게 성찰할 대목이다.

이회창 후보가 대선출마를 선언하자 그 때서야 이명박 후보는 박근혜 전 대표한테 도움을 요청했다. 보기에도 민망하고 안타깝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 하겠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물불 가리지 않고 설쳐대던 측근을 뒤로 밀어내고 최고위원 자리를 배려하는 선에서 예우를 갖추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이런 상황에서도 박근혜 전 대표가 원칙과 명분을 지킨 것은 이명박 후보에게는 행운이고 한나라당으로서는 저력인 셈이다.

아직도 대통령 선거가 끝나지 않았다. 어쩌면 지금까지의 시간보다 얼마 남지 않은 앞으로의 시간이 더 중요할 것이다. 이명박 후보는 지금이라도 이회창 후보를 끌어안을 수 있어야 한다. 아니 그 보다 더 큰 범주에서 자신에게 우호적인 정치세력들을 과감하게 통합시킬 수 있어야 한다. 후보단일화는 범여권만의 전매특허가 아니다. 가볍지 않게 그리고 감동을 담아서 주변의 지지층을 결속하고 외연을 넓혀가야 한다. 이것은 단순한 영토확장의 개념이 아니다. 이 시대가 가장 필요로 하는 ‘국민통합의 리더십’을 스스로 보여주는 최선의 선거전략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와 범여권이 보여준 ‘분열의 정치’에 얼마나 많은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는지, 그래서 국민통합의 에너지를 얼마나 많이 기대하는지 이명박 후보는 결코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