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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나깨나 장모 조심

이경희330 2007. 8. 20. 01:30
“버선발로 뛰어 나오던” 장모는 어디로?

사위 왔다고 버선발로 뛰어나와 반기고 시암탉을 고아주던 장모, “딸아이 잘못 가르쳐 미안하네, 자네가 잘 보살펴주게”라고 눈물로 부탁하던 장모. 애틋하면서도 격을 두던 장모의 사위 사랑, 사위의 영원한 우군이던 장모상은 이제 ‘과거사’가 되었다.

이젠 장모는 남성들에게 사윗감 심사위원부터 시작해서 혼수 마련, 임신과 출산 시기 결정, 집장만이나 이사, 휴가, 아이들의 교육, 심지어 성생활 상담과 이혼 결정에 이르기까지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지며 온집안의 실력자로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술을 많이 마시거나 외박을 했을 때도 아내보다 먼저 화를 내는 장모도 많단다. ‘벙어리 3년, 장님 3년, 귀머거리 3년’이 시집살이의 기본이라면 ‘눈치 10년, 아부 10년, 재롱 10년'의 장모 전성시대가 왔다. ‘장모 사랑 사위 사랑'이라는 말대신 ‘자나깨나 장모 조심’이란 말이 유행이란다.    

가족지도도 바뀌어간다. 아예 처가에 들어가 데릴사위 노릇을 하며 살거나 장모를 모시고 사는 이들, 처가 근처에 사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 장모와 접촉빈도는 친어머니보다 더 잦을 정도다. 처가와 화장실은 멀수록 좋다는 말은 속담 사전에서도 사라질 것 같다.

신세대 남성들은 이런 현상에 별로 거부감을 보이지 않는다. 여성부가 한국여성개발원에 의뢰해 2004년 1월에 발표한 ‘가족가치관 및 가족관계' 등의 조사에 따르면 요즘 남성들은 경제적 지원이나 정서적 유대감이 친가보다 처가에 더 밀착되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3500가구 9109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이 조사에서 ‘경제적 지원은 어디에서 받나'란 질문에 처가가 18%, 친가 11%로 답했으며 양가부모 접촉빈도의 경우 남편의 31-7%가 한달에 한두번 이상 장인장모를 만난다고 밝혀 아내가 시부모를 만나는 비율(40%)과 별차이가 없었다. 주말외식은 물론 해외여행을 갈 때도 친부모와 함께 가는 가족보다 장인장모, 즉 친정부모를 모시고 가는 이들이 더 많다고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관습이나 형식보다 실리와 편안함을 좋아하는 신세대들의 특성 덕분에 생긴 현상이다.

명절 풍경도 달라졌다. ‘며느리 설움’이란 시조까지 인터넷에 떠돌만큼 명절증후군에 시달리는 며느리들의 아픔이야 널리 알려졌지만 요즘은 달라졌다. 차례를 지내고서는 후닥닥 처가로 달려가는 이가 많다.  

장모의 영향력이 커진 요인은 핵가족 사회에서 엄마와 딸의 유대감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이다. 엄마는 딸에게 이성교제부터 다이어트법에 이르기까지 지도편달한다. 모녀가 함께 목욕하고 쇼핑하고 친구들 흉보고 심지어 성적만족도에 이르기까지 수다를 떠는 밀착감에 대해 전혀 이상하다거나 부자연스럽다는 의식을 갖지 않는다. 오히려 친밀도가 높을수록 아름다운 모녀관계라고 믿는다.

여러 자녀에게 골고루 은근한 사랑을 나눠주던 옛날 엄마와 달리 한두명의 자녀에게 사랑을 적극적으로 쏟아붓고 독점욕도 강하고 물불 안가리는 교육열을 보인다. 딸이 결혼을 해도 밀착감은 끊어지지 않는다. 때론 줄인형이나 리모컨처럼 딸을 조정하고 그 조정력을 딸의 남편인 사위에게까지 행사하려 든다.        

회사원 고영석씨(가명)는 요즘 신경성위염에 시달린다. 원인제공자는 장모다. 연애할 때부터 고씨를 마음에 들어하지 않던 장모는 결혼후에도 사사건건 트집과 시비를 일삼는다. 반지하 신혼집을 구하자 "우리 딸아이를 지하실에서 곰팡이 슬게 한다”고 울고불고 난리를 피웠고 매일 찾아와 반찬이며 청소며 등 살림전반을 관장한다.

"아내에겐 별로 불만이 없어요. 착하고 애교도 많아요. 그런데 아내와 의견이 어긋나 말다툼을 하다보면 전부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예요. 장모와 한집에 같이 살지는 않지만 정말 두 여자와 사는 기분이에요. 빨리 아이도 낳고 싶은데 장모가 ‘신혼을 즐기고 집을 마련한 다음에 낳으라’며 아내에게 피임을 강요하나봐요. 솔직히 장모 얼굴만 봐도, 아니 목소리만 들어도 위산과다 현상이 느껴질 정도에요.”      

아이를 길러주는 장모의 영향력은 더더욱 커진다. 사원 김연수씨는 결혼하자마자 처가 근처에 집을 정했다. “외손녀 때문에 외출도 못하고 여행도 못간다”고 짜증을 부리는 장모를 위로하기 위해 주말엔 외식, 분기별로 여행, 수시로 선물도 사드려야 한다. “시골에 사시는 친부모님께는 추석과 설날, 1년에 두번 정도 내려가고 별로 잘해드리지도 못하는데 아이를 맡겨놓으니 괜히 장모님께는 잘해드리고도 죄인이 된 듯한 느낌이 듭니다.”

아내와 아이가 없다고 장모와 인연이 끊어지는 것이 아니다. 자기집을 전세주고 아내와 아들을 미국에 유학보낸 기러기아빠 김동현씨는 본가가 아닌 처가로 들어갔다. 처음 몇달은 혼자 오피스텔에서 살았으나 라면먹는 걸 본 장모가 “왜 이렇게 궁상을 떨고 사나, 이러다 내 딸 과부 만들겠네”라며 자기집으로 오라고 권했다.

“술먹고 늦게 들어가거나 한여름에 마음대로 옷을 벗지 못한다는 불편은 있지만 워낙 장모가 잘 챙겨주셔서 혼자 사는 것보다 낫습니다. 무엇보다 집사람이 안심을 하고요. 그리고 본가에 가면 ‘너만 혼자 고생하고 마누라랑 아이들만 호강한다’고 욕을 먹는데 처가가 더 마음이 편합니다.”        

결혼생활만이 아니라 이혼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람도 장모란다. 최창귀 변호사는 ‘장모와 갈등을 빚어 이혼을 결심하는 남성도 많지만 친정엄마가 딸을 데려와 이혼을 강요하는 사례도 많다’고 전한다. 상담을 해보면 정작 딸은 이혼할 의사가 확고하지 않은데 친정엄마들이 ‘참고 살 필요없다’며 이혼을 권하는 것이다. 사위의 변태적 성격이나 폭력, 도박 등의 뚜렷한 사유가 아니라 ‘비전이 없다’ ‘성적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한다’ 등을 이유삼아 이혼수속을 밟게 한단다.

경제적으로 도움을 준 장모라면 목소리가 더욱 커진다. IMF 때 사업에 실패한 사위에게 집을 사주고 직장다니는 딸을 대신해 외손주를 키운다는 강기순씨는 ‘세상이 달라졌다’고 강조한다.

"여자라고 무조건 참고  한평생을 누구의 마누라로 숨죽여 살게 하려면 뭐하러 딸을 금지옥엽 키웠겠어요. 그리고 요즘 사위들이 얼마나 영악한데요. 겉보리 서말만 있어도 처가덕 안본다는 말을 누가 해요? 결혼 전부터 은근히 처가에서 지참금을 갖고 오거나 집이라도 사주기를 기대하고, 아이 낳으면 맡기려 하고 호시탐탐 처가재산도 노리고 생일 안 챙겨주면 섭섭해하잖아요.”
어머니로 진화하기를 거부하고 ‘엄마’에 머물려는 어머니들, 성인이 되었어도 계속 엄마 얼굴만 바라보며 자기 꿈을 펴려는 딸들, 그리고 자기 유리한 것만 찾고 나약해지는 사위들 덕분에 장모파워는 더욱 커질수 밖에 없다. 이러다가 “어머나 불쌍해라, 딸도 없다니”란 말이 유행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