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재판이 끝났다. 시계는 10시 3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오전 말고 오후.
장장 12시간 35분간(점심시간 2시간을 빼면 10시간 35분)에 걸친 법정 취재였다. 본인에겐 촛불집회 당시 세웠던 최장 취재기록을 가뿐히 뛰어넘는 뜻깊은(--;) 순간이기도 했다.
물론 쉴새없이 뛰고 걷던 그 때와는 다르다. 이번엔 법정에 숨죽이고 앉아 있었으니까. 하지만 지치긴 마찬가지였다.
웃다 지쳤으니까.
나오면서 간략히 12시간여의 재판 핵심 기록을 살펴봤다.
1. 증인이 증언을 뒤집었다.
2. 족발이 대자냐 소자냐...(자세한 내용은 추후 설명)
3. 돈을 빌려준 거냐 무상지급한거냐에 대한 의혹 제기와 반발
끝.
생각해 보니 이거야 말로 진짜 웃기다. 12시간 넘게 기다려 건진 스트레이트 기사의 기록이 이게 전부일 줄이야.
난생 처음 겪은 법정 취재기, 시작.
오전 10시 출석 증인이 오후 4시에 퇴장?!
[데일리서프 권근택 기자] 지난 6일 서울중앙지방법원, 417호. 이 날은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가 피고인석에 앉게 된 형사재판 자리였다.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그가 두번째 공판에 임한 것.
핵심 증인인 이한정 의원은 개정과 동시에 나왔다. 검사 측 심문 1시간, 피고 변호인 측 1시간, 통합 2시간의 시간이 당초 약속됐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이도 모자라 두배로 늘 줄이야. 하지만 놀라운 것은 이게 절대로 추가적 증언이 많아서가 아니었다는 것. 무슨 말이냐 하니 증인의 증언 자체가 당초의 것과 완전히 뒤집혔다. 해서 이를 두고 거짓말이냐 사실이냐에 대한 검사와 변호사간 공방이 내용의 사실상 전부. 이거만 가지고 4시간동안 혈전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못해 경이적이다.
처음부터 검사 측의 고난의 연속이었다. 검사는 "...했지요?" 라며 조서에 나온 내용의 확답을 얻고자 질문을 연거푸 던졌다. 그런데 답변마다 "그런 사실 없습니다."란 단호한 부정이 거듭됐다. 당초 그의 증언을 유력한 증거로 믿었던 검사측으로선 쓰러질 노릇이다. 그런데 정말 현기증이 모락모락 피어오를 일이 벌어진다.
"술을 먹이고 쓰러지게 만들면서 진술한 것이 어찌 사실입니까?"
지금껏 검사 측이 받아낸 진술이 죄다 자신들의 회유와 협박에 의한 강제적 허위진술이었단다. 이젠 진술 번복이 문제가 아니라 검찰 자체가 수세에 몰렸다. 뒷목 잡고 쓰러질 일이다. (그는 과거 문 대표가 6억의 돈을 요구하고 비례대표 2번 자리를 제의했다는 등 그에게 불리한 증언을 했던 바 있다. 그런데 이게 전부 거짓이라고 이 날 뒤집었다)
피고인 변호인 차례. 변호인단의 리더격 되는 변호사의 눈은 먹이를 노리는 매의 눈이 됐다.
"지금껏 검찰에 밝힌 진술이 증인에 대한 회유, 협박에 의한 것이고, 족발과 양주 등을 대접한 것이란 말이지요?"
"그렇습니다."
"...이런~쓰읍!"(쌍시옷이 나오려다 일단 스톱)
심문하다 말고 검사 측을 노려본다. 결국 오전 2시간이 똑같은 말로만 되풀이됐다.
변호인 - "족발 먹었어요? 양주도? 아니 소주입니까?"
검사 - "조서 보면 증인이 직접 '난 폭탄주 좋아하고 술 세다' 밝혔잖아요?"
증인 - "죽고 싶습니다."
변호인 - "전부 거짓이었단 거죠?"
검사 - "왜 거짓말 했습니까?"
증인 - "하나님 앞에 선 기분으로 솔직히 말하는 겁니다..."
결국 추가 내용은 진행되지도 못하고 이걸로 오전 재판 종료. 이 의원은 당초 예정과 달리 오후에도 계속 나와야 했다. 2시에 개정. 또 똑같은 내용의 반복이다. 결국, 오후 4시가 넘자 판사가 참질 못하고 나섰다.
"언제까지 할 겁니까? 2시, 3시, 4시 증인 언제 부를 겁니까?"
결국 판사가 직접 나서서 마무리 심문을 한다. 그제서야 이 의원은 교도관들과 함께 퇴정, 다시 구치소로 돌아갔다.
기록 수첩을 뒤져 봤다. 증언의 반복 및 핵심 키워드는 '족발', '양주', '소주', '족발을 대자 시켰냐 소자 시켰냐', '구치소마다 족발 사이즈가 다르더라', '죽고 싶다', '하나님 앞에 선 기분으로 말한다', '문대표는 깨끗한 분이다', '고립무원의 상황이라 허위진술을 했는데 이용당했다' 정도. 요약정리컨대 "지난날엔 술과 안주를 들고 찾아온 검찰의 회유에 문대표에 불리한 거짓진술을 했고 구치소마다 족발 사이즈가 달랐고 이젠 하나님의 뜻에 따라 탄원서를 내고 진짜 진술을 하며 진실을 밝힌다, 문대표는 잘못 없다" 정도다. 그래, 이 말 한줄 얻는데 점심시간까지 합쳐 6시간을 썼단 말인가.
야단치는 판사, 고개 숙이는 검사 및 변호사... 여긴 대학 모의법정?
영화 속 형사재판을 보면 주연은 단연 검사와 변호사다. 논리정연하고 간략한 질문으로 증인에게서 '네', '아니오'란 명료한 답변을 뽑아낸다. 감정이 극에 달하면 "이의 있습니다!"를 크게 외치며 기싸움을 벌이고 이 때마다 방청객들은 박수, 혹은 야유를 쏟는다. 판사는 "조용! 조용!"을 외치며 분위기를 환기시키거나 특별한 경우에만 개입해 최소한의 발언을 한다. 어딜 봐도 재판의 주연은 검사와 변호사다.
환상은 완벽히 깨졌다. 주연은 누가 뭐라해도 판사였다. 검사와 변호사는 판사에게 야단맞고 고개 숙이기 일쑤였다.
마치 대학에서 모의법정 수업을 하면 교수님께서 학생들을 지도하는 분위기랄까. "재판은 이렇게 하는겁니다"란 기본적 룰부터 상세히 가르쳐주신다. 이 판사님은 평소엔 신부님처럼 온화하게 말씀하지만 한번 흥분하시면 같은 단어를 세번 반복하고, 때론 화도 낸다.
검사 측은 공소내용 때문에 한 소리를 들었다. 본인들의 것과 재판부 및 변호사에 건넨 본의 것이 달랐다.
판사 - 저기요, 이한정 씨가 받은 돈이 채권에 의해 빌려준 것인지, 그냥 헌납을 한 것인지 성격을 명확히 해 주면 좋겠는데...
검사 - 14페이지에...
판사 - 13페이지가 끝인데?
변호사 - 우리도...
판사 - 우리쪽에서 프린트를 고의로 바꿀리는...(웃음)
방청석에선 실소가 터졌다. 결국은 검사 측이 뭔가 착오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넘어갔다. 그러나 언제나 웃는 얼굴로만 제지하는 판사님이 아니다.
"저기, 그 질문을 굳이 할 필요가 있습니까?"
변호석의 '이의 있습니다'보다 판사가 직접 질문에 제동을 거는 경우가 더 잦았다.
"저기, 언제까지 할 겁니까? 그 내용이 중요합니까? 지금 그 내용만 갖고 몇시간을..."
급기야 이한정 증인을 붙들고 증언번복 이야기만으로 오후 4시를 넘기자 판사는 짜증을 냈다.
"검사 측, 왜 증인에 대한 소개 파일을 준비해달라 얘기했는데도 안 줍니까? 그럼 배경 질문이라도 던져야지..."
준비물 안 가져온 것으로도 격노를 하신다.
"우리 재판부는 내막을 모르잖아요? 어떻게 판결을 합니까?"
심지어는 "몇달간 수사를 뭐했냐?"는 적나라한 비난까지 나왔다.
"아까 증인이 인터넷을 통해 산술자료를 뽑았다던데... 공소 자료엔 이게 왜 없습니까? 몇달간 수사하면서 대체..."
판사님의 얼굴이 붉어진다. 검사 측은 죄송합니다를 반복한다.
변호사 측도 예외는 아니다. 초반부 검사 측 심문을 듣다 뭔가 화가 나 항의를 한다. 보고 있던 본인도 "이건 뭔가 이상하다" 싶었던 찰나, 판사님이 온화하게 상황을 중단시키며 친절히 룰을 가르쳐 주신다.
"변호인 측, 이의가 있으면... '이의 있습니다'라 일단 말하고, 우리한테 신청을 해주세요. 마주보고 있다고 우리만 쏙 빼고 그러시면... 우리가 섭섭합니다."
웃던, 화를 내던 하나하나 지도해주는 모습은 헌신적인 교수님을 연상케 한다.
"저기, 심문 언제 끝나나요?"
"잠깐! 변호인측, 흥분 좀 가라 앉히시고..."
"저기요, 이 심문 내용 누가 쓴 겁니까? 이런 식으로 하시면 곤란합니다..."
"여기서 이 내용이 갑자기... 왜 나오는 겁니까?"
변호인 측도 판사의 제지가 들어오면 몸둘 바 몰라 한다.
증인이 답변하다 화를 내거나 하면 수습도 판사님이 다 한다. 검사나 변호사가 커트할 부분을 못 찾으면 판사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증인, 섭섭하실수도 있는데..."
"증인! 여기는 일장 연설을 듣는데가 아닙니다..."
"증인, 죄송한데... 바쁘신 걸 아는데 이왕 늦어진거 10분만 좀 쉬고..."
한두번도 아니고 어느 새인가 개그 법정이 되어 있었다. 판사님 없었으면 이 날 재판은 날짜를 넘겼을 것이다.
증인을 잘못 데려오다
이한정 의원을 돌려보내고 한숨 돌리나 했더니 이번엔 웃지 못할 광경이 연출된다. 교도관 한명이 증인으로 나왔는데 수감 중 검찰 조사 일지를 확인하려 했더니 "난 그날 근무를 안 해 모른다"란 답변이 이어진다.
변호인이 실소하며 "준비 좀 해 오시지... 여기서 그런 걸 물으려고 소환했는데..."라 말했다. 판사는 어이가 없었는지 "증인! 여기에 왜 왔어요?"를 외쳤다. 증인은 상세자료를 재판부에 발송한 걸로 알고 준비하지 않았다고 밝혔지만 자료는 도착하지 않은 상태. 결국 이 증인은 증인석을 내려가 전화통화로 다시 필요내용을 메모해 와야 했다.
암만 봐도 증인을 잘못 데려왔다. 혹 교도관 사이에서 제비뽑기의 희생자가 나온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종반부,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클라이막스는 마지막 증인의 심문이었다. 대선 당시 창조한국당의 종교 특보를 맡았다는 박수천 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시간은 이미 저녁 7시 30분께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이 날 재판에 있어 내용면으로도 중요한 입장에 있었다. 자신의 진술이 허위라 밝힌 이한정 의원과 달리 그는 '공천헌납이 분명 있었다'며 문국현 대표를 궁지에 모는 역할이었다. 여기엔 자신이 공헌했음에도 불구 비례대표에 이름을 못 올렸다는 개인적 울화가 더해져 마치 드라마의 애증을 보는 듯한 시나리오가 성립됐다.
그리고, 이 날 법정을 완전히 봉숭아 학당으로 만들어 놓은 장본인이기도 하다.
검사 측은 분명 "왜 당에서 사퇴했느냐, 자신이 비례대표 2번을 받았어야 했다 생각하는 근거가 뭐냐"를 질문했다. 그런데 5분(체감은 10분 이상) 이상 가량 그는 자신의 소개와 창조한국당에 힘을 빌려주게 된 배경, 심지어 대선 당시 문 대표의 이미지까지 꺼낸다.
갑자기 심장이 저려오기 시작했다. 그의 연설이 장엄해서가 아니다. 음파가 법정을 진동시켰다. 이번에도 판사님이 구세주다.
"증인, 마이크 좀 입에서 떼 주세요. 소리가 울려서..."
그런데 증인은 또 입을 바싹 댄다. 어쩔 수 있나. 법원경위가 와서 마이크를 쭉 뺀다. 여하튼 연설은 계속됐고 보다못한 판사가 스톱.
"여기는 증인의 강연, 일장연설을 듣는데가 아닙니다."
나중엔 검사, 변호인석, 재판부 할 거 없이 할말만 해달라고 제지가 계속 쏟아졌다. 그러나 증인은 "아니 글쎄 일단 한번 들어보시라니까요."를 반복한다.
검사의 질문이 30분간 계속 됐는데, 결국 여기서 나온 이야기는 총선 당시 문 대표의 애로사항, 그리고 자신이 은평 을에 출마토록 도와 준 공헌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이후 토사구팽됐다는 주장과 서러움으로 점철됐다. 보다 못한 판사가 이번엔 이야기를 끊지 않는 검사에게 화를 낸다.
"저기요... 계속 할 겁니까? 중요한 증인 같은데, 배정된 시간은 30분입니다.(이미 다 지났다) 그런 내용 말고 보다 중요한 건 따로 물을 게 없습니까?"
검사 측은 침묵했다.
"그게 중요한 내용인가요? 다른 거 물을게 그리 없습니까? 듣고 있자니 제가 답답해서 하는 말입니다! 재판 언제 끝낼 겁니까?"
난 여기서 대단히 중요한 기로에 있었다. 웃음소리를 흘렸다간 법원경위가 법정모독죄를 물을 것이며, 참자니 괴로웠다.
"중요한 이야기 뭐 없어요?"
"이것도 일단은 다음 이야기를 해석하는데 있어 중요하고요, 뒤에 또 중요한 대목이 있긴 있는데... 5분안에 끝내겠습니다."
으음, 부연설명이 30분에, 핵심은 5분...
그런데 변호인 측은 2시간 가까이 질문을 던졌다. 변호사는 그간 쌓인게 많았는지 엄청나게 감정을 폭발시켰다.
변호사 - 증인! 한게 뭐예요?
증인 - 뭘 하다뇨? 전 대표님을 은평 을에 출마토록 한 것만으로도...
변호사 - 그게 업적이다 치고! 그 말고 또 한 대여섯개 들어봐요! 당신이 한게 뭐 았어!
그런데 증인심문사항을 읽던 판사의 속이 부글부글 끓어 넘쳤다. 갑자기 중단시키더니 변호인 측에 조용히 화를 폭발시킨다.
"이... 내용은 뭡니까? '재판부의 가사분담조정위원회 같은'... 이 얘기가 왜...?"
변호인은 갑자기 고개를 숙이더니 송구한 미소로 "죄송합니다, 시정하겠습니다"를 반복한다. 가만 듣고 있자니 아마도 증인이 당에서 한 게 별로 없다는 말을 하면서 이에 빗댄 표현을 하다 재판부의 해당부분을 비하하는 내용이 섞여 나온 모양이다.
이쯤하니 증인이 "왜 죄인 심문하듯 하냐"며 불만을 터뜨렸고 검사 측도 "인신공격을 한다"고 항의했다. 판사는 이를 받아들이며 다시 한번 말했다.
"아니... 여기서 재판부 가사... 왜 이 이야기가 나오는지. 이거 듣고 있자니 증인 이야기가 아니라 꼭 재판부에..."
순간 방청객들은 폭소했다. 점차 재판이 이상한 쪽으로 흐른다.
변호인은 이후에도 쌓인게 많았는지 당사자가 울컥할 표현을 계속 던졌다.
"증인! 이전에도 새천년민주당, 신한국당, 여기저기 기웃거렸죠? 비례대표 뽑힌 적 있어요? 없지요?"
"당에 와서 물이나 흐리고 말이야!"
"정말 자기가 꼭 비례대표 2번 했어야 할 위인이라 생각해요? 당에 인물이 그렇게 없었어?!"(이건 도리어 피고인 측이 불쾌해 할 발언이다)
"남의 집 들어가 문 걸어잠그고 협박은 왜 했어? ...그럼 그게 가택침입이지 뭐야?!"
청문회가 따로없다. 한 쪽은 못 잡아먹어 안달인 편, 또 한쪽은 한번 해보겠다는 거냐고 팔 걷어붙히는 편... 증인은 결국 변호사에게 "변호사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심문을 뭐 그따위로 해요?"라며 반문한다. 급기야 판사님이 또다시 나섰다.
"변호인, 이 내용... 누가 썼어요? 옆에서 누가 도와주셨나?"
"...제가 새벽 3시 30분까지 쓴 겁니다."
"아니... 이 너무... 표현이 세서... 으음... 걱정스럽습니다..."
결국 이후에도 두세번은 더 말려야 했다.
1시간 내정된 시간이 2시간을 넘긴다. 이렇게 되자 예상 밖 상황이 펼쳐진다. 피고인이던 문국현 대표의 스케줄이 위태하게 된 것. 재판 후 밤 비행기로 두바이에 떠나기로 했는데 재판이 네버엔딩스토리로 흐르고 있었다. 결국 판사님이 말한다.
"피고께선 먼저 가셔도 좋습니다. 우린 여기서 재판 좀 더하겠습니다."
9시 35분, 문국현 대표 퇴장. 생각치도 않은 초장시간 재판으로 인해 스케줄이 뒤틀린 피고가 먼저 자리를 뜨는 상황이다. 앞으로는 피고 없이 공판을 지켜봐야 한다. 이런 일도 있구나 싶었다.
"증인, 마이크 좀 입에서 떼시라니까요."
법원경위는 계속해서 마이크를 손수 움직인다. 그러나 흥분한 그에겐 이게 소용이 없다. 판사가 "이야기가 너무 길어지는데 이럴 거면 일단 폐정하고 다음에 한번 더 소환하자"는 제의를 꺼냈지만 증인은 "아, 난 여기서 할말 다 꺼내는게 편하다"고 손사래를 쳤다.
검사의 마지막 심문에선 "누가 그러더라"라며 들은 내용을 통한 증언이 계속됐다. 검사 대신 판사가 제지한다.
"남에게 들은 이야기로 증언을 할 거면 한 사람만, 한 사람만, 한 사람만(다시 말하지만 이 분은 흥분하면 같은 말을 세번 반복한다) 응? 여기다 증인으로 모시면 재판 다 할 겁니다. 지금 하는 이야기가, 재판에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아 글쎄, 여기서 증인 넋두리를 들어 줄 시간이 없다니까!"
시계가 9시 50분을 향한다. 이젠 막차를 걱정할 시간. 판사는 검사와 변호사 측 양쪽 모두에 "1시간 하기로 해놓고 이 증인만 2시간 30분 가까이 붙잡아 두고 있다"며 화를 냈다. 증인에게 "변호인 측이 화를 낸건 피고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며 증인이 너무 불리한 증언을 많이 했길래 인간적으로 그런것 같으니 이해하라"고 다독이는 판사. 증인은 아직도 할 말이 많은 듯 "좀 더 이야기하고 싶다"고 했지만 결국은 일어서야 했다.
증인을 다 돌려보내고 판사는 속기사에게 "저녁은 어떻게?"라 배려해 준 뒤 검사, 변호사 측에 항의하듯 말한다.
"재판 앞으로 두번 남았어요? 두 번 더 추가해 네번 합시다. 이래가지고 재판이, 재판이, 재판이... 안 됩니다! 어느 세월에?! 그리고 자료 달라니까 왜 안줍니까?"
"......"
"......"
"앞으로도 이렇게 할 건가요?"
"아니요."
"담번엔 주의하겠습니다."
양 측 모두 회초리 맞은 학생처럼 풀이 죽은 걸 보니 판사도 마음이 아픈가보다.
"오늘, 제가 검사에게, 또 변호사에게 짜증을, 짜증을, 짜증을 냈는데...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판도라의 상자 개봉을 공짜 구경하다
폐정, 10시 35분.
이 날 내용의 핵심을 조금 더 늘려서 간추려 봤다.
1. 이한정 의원은 진술을 뒤집었다.
2. 검사측이 족발과 술을 대접해 허위진술을 요구했다는 것이 주 공방내용이었다.
3. 박수천 씨는 자신이 비례대표 1, 2번에 오를 적임자인데 다른 이가 올랐으니 분명 헌납받았을 것이다.
4. 박수천 씨는 자신이 창조한국당의 핵심 3인방에 드는 이라 자신했고 변호인측은 비웃었다.
5. 검사는 이한정 의원이 채권발행을 주장하지만 가장된 것이며 헌금일 거라 주장하고 변호인은 근거없는 전제라 반박했다.
6. 판사님은 이후부턴 시간을 지켜 진행하자고 부탁했다.
끝.
이거 건지려고 12시간이 넘게 앉아있었던 걸 두고 웃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필기할 사항을 놓쳐도 반복돼 들려오는 말로 인해 걱정할 것이 없는 건 장점이지만.
재판 방청을 두고 '공짜 구경 잘했네'라며 '구경'이라 표현한다면 이 역시 신성한 법정을 모독하는 일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거나 영화 한편에 7천원, 야구장 관람도 그 정도... 2시간 짜리 유료구경과 이날의 방청을 비교해봤다. 결론은 12시간여의 무료 방청 역시 생각할 것들이 그 못지 않다는 소감이다.
앉아서 법정을 가만히 들여다 보니 인간의 욕망과 오해, 진실과 거짓, 애증과 갈등이 사람들 머리 위를 맴돌고 있었다. 판도라의 상자를 열면 이러한 것들이 나오는 것일까. 사람의 감정과 대립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싶다면, 공개재판법정도 여러모로 얻을 점이 많은 장소로 추천할 만 하다.
다만, 인내심만큼은 꼭 지참하여 찾아가길 권한다.
권근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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