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숙원이 풀릴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영권 보호장치로선 가장 강력한 법적장치 마련이 가시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월 1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대한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의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공정위가 기업의 경영권 보호장치인 포이즌필(poison pill, 독약)에 대한 반대입장에서 찬성입장으로 선회한 데 따른 것이다. 이로서 정부 내에서 포이즌필 도입에 대한 입장정리가 완료된 것이다. '포이즌필'은 기업이 적대적 인수, 합병에 직면했을 때 기존 주주에게 신주를 낮은 가격으로 살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해 상대방의 M&A 시도를 포기하게 만드는 방안이다. ‘포이즌필’ 제도를 시행하면 경영자는 지분을 저렴하고 보다 수월하게 확보할 수 있지만 적대적 M&A를 시도하는 주체에겐 심각한 경제적 손실을 입힌다. 공정위는 “포이즌필 도입시 경영의 비효율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고 외국 자본에 대한 차별 조치로 비춰지는 등 도입시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하겠다”는 방침을 덧붙였지만 이 제도 도입 자체는 이러한 공정위가 우려하는 부작용을 불러일으키는 근본적인 요인이 된다는 지적 또한 높다. 공정위는 이러한 입장 변경에 대해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경영권 안정이 필요하므로 차등의결권 등 다른 방어수단에 비해 부작용이 적고 미국, 일본, 프랑스 등 선진국에서 이미 시행하는 제도의 도입이 필요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공정위의 이러한 논리는 재계의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 눈길을 끈다. 재계는 포이즌 필이 도입된다면 기업이 적대적 M&A를 방어하는 부담을 덜고, 여유자금을 설비나 R&D에 투자할 수 있다는 주장을 해왔다. 과거 SK와 소버린 간의 소모적인 지분경쟁도 막을 수 있고, 막대한 시세차익을 노리며 시장을 흔드는 세력도 견제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법무부는 국내 상장회사들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자사주를 매입하는 데만 해마다 4조-7조원 자금을 투입되는데 포이즌필을 도입해 절반이라도 투자로 돌린다면 일자리 창출과 경제회복에 적지 않은 효과를 볼 수 있다며 재계 입장을 반영해 포이즌필을 도입을 주내용으로 하는 정기국회에 상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이필상 민간금융위원회 위원장도 “적대적 M&A에 대해 국내 기업들은 신주의 제 3자 배정, 자사주 매입 등으로 방어하고 있는데 이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든다”면서 “투자를 통해 사회적 선순환을 일으킬 수 있는 기업 여유자금이 경영권 방어를 위해 불필요하게 쓰이는 셈”이라고 거들고 나섰다. ‘포이즌필’은 MB의 공약, 정부차원에서 시동 포이즌필 도입은 이명박 대통령의 선거공약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추진이 지체되다가 본격적으로 구체화 된 것은 지난 7월 이명박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3차 ‘민·관 합동회의’에서 법무부와 기획재정부가 등 관계부처가 기업경영지원제도 개선을 위한 ‘일자리 창출과 경기회복을 위한 투자촉진 방안’에서 나왔다. 당시 기재부는 “‘포이즌 필’이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서 너무 센 게 아니냐는 지적이 있지만, 기본적으로 미국, 일본 등 주요 국가들도 다 도입한 제도”라며 “당장 법제화를 하겠다는 게 아니라 관련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해나가겠다는 것인 만큼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법무부를 중심으로 ‘경영권 방어법제 개선위원회’를 구성, 포이즌 필과 차등의결권 제도 등이 추가적인 경영권 방어장치 도입문제를 검토해왔으며, 이제는 관계부처간 구체적인 법제화 단계에 돌입한 것이다. 재벌, 주식 시가의 1/10 가격으로 10%의 추가지분 확보... 막대한 이익 취득 가능 그러나 이에 대한 반발 또한 거세다. ‘포이즌필’제도는 일반 주주들의 권리를 침해하면서까지 총수의 경영권을 보장하는 정책이라는 것이다. 더 나아가 재벌가에게 주식시장에서 합법적으로 막대한 이익을 취득할 수 있는 특혜를 법제화한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시가총액이 1조원짜리 기업의 최대주주 지분이 20%인 상황에서 적대적인 M&A에 접했을 때 최대주주는 경영권 방어를 위해 10%의 추가 지분을 시가의 10분의 1가량에 인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기존 일반주주는 지분이 그 비율만큼 감소하고 대주주는 1000억원 상당의 주식을 100억원으로 매수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부작용에 대해 프론티어 M&A 성보경 회장은 “기존 경영진이 가짜 기업사냥꾼을 동원해 공개매수와 같은 방법으로 적대적 M&A를 시도하게 해놓고 포이즌 필 조항을 들어 혜택을 받을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또한 “상속시 상속세를 절감하기 위해 상속 주식의 비율을 낮추고 상속이 완료된 후에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는 것과 같은 유사한 상황을 만든 뒤 포이즌 필 조항을 근거로 지분율을 높일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상속세뿐 아니라 시장을 상대로 시세차익을 노리는 주가조작도 가능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재벌 총수 일가에 경영능력과 무관한 난공불락의 경영권 안전지대를 제공하게 됨으로써 장기적으로 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궁극적으로 일반 주주와 사회에 해를 끼칠 것이라는 주장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후계 경영자의 무능경영에 대해 책임 또한 일반주주의 손실로 감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권과 시민단체, MB의 재벌프랜들리 비판 거세질 듯 이에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9일 공정거래위원회가 포이즌필 도입에 긍정적인 입장을 피력한 것과 관련 “재벌파수꾼으로 전락했다”며 강도높게 비판했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해 국정감사 때만 해도 경영권 방어수단의 법제화에 부정적 입장을 표명한 공정위가 1년 만에 포이즌필 필요성을 옹호하고 나선 데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한다”며 “현 기업 현실을 감안할 때 포이즌필과 같은 경영권 방어 수단의 도입은 지배주주의 사익추구 등의 부작용만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 또한 포이즌필이 가시화될 경우 정치적 쟁점으로 끌고갈 가능성이 높다. 이번 10월 국감에서 민주당 박선숙 의원은 정부여당의 포이즌필 도입방침에 대해 “기존 주주들에게 신주를 헐값에 발행하는 ‘포이즌필’의 경우 대기업의 경영권을 지나치게 보호하고 재벌총수의 지배권만을 강화시켜 지배구조 개혁과 구조조정을 지연·후퇴시키고, 외국자본 투자를 위축시킴은 물론 주가하락과 경제위축의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공격했다. 또한 박 의원은 “이러한 정부의 재벌프랜들리 행보는 결과적으로 IMF 이후 진행된 재벌 지배구조 개혁과 국민들이 고통으로 감내해야만 했던 구조조정의 성과를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고, 10년 전 IMF 사태를 불러온 재벌 체제와 그에 따른 폐해를 부활시킬 수 있다”며 날을 세웠다. 민주당으로선 ‘포이즌 필’을 정치쟁점화화해 MB정부의 친서민 행보의 이중성을 부각할 수 있는 소재로 설정할 가능성이 높다. ‘포이즌 필’은 기본적으로 민생, 친서민과 거리가 먼 재벌의 배타적인 경영권 보호차원의 제도로서 이를 추진하는 현 정부에 대해 재벌프랜드리 정권이란 낙인을 찍을 수 있는 호재인 것이다. 정부여당으로선 지금까지 재벌프랜들리 정책을 경제활성화란 명목으로 다양하게 추진했지만 현재까지 성과가 없는 점에서 부담을 가지지 않을 수 없는 형편이다. 올해만도 야당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했던 금산분리 완화, 출총제 폐지 등 재벌의 이해관계가 걸린 사안을 처리했다. 그러나 법 통과전까지만 해도 재계는 투자활성화를 위해 꼭 필요한 제도라고 목을 맸으나 막상 법이 통과된 이후에는 재계가 투자확대에 나서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아무런 정책효과는 없이 재벌에게 보따리만 안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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