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전문가 20명의 평가는 냉혹했다. 세계 금융 위기 때문에 정부의 잘못이 오히려 덮였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 가운데에도 환율 정책은 최악의 평가를 받았다. 90%에 달하는 17명의 경제 전문가들은 정부가 경제 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한 채 개입하는 바람에 화만 키웠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내수 활성화와 고용 창출을 위해 건설 경기를 부양하는 정책을 펼치는 것 또한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라는 공통된 지적이 있었다. 구조조정 정책에 대한 평가는 전문가에 따라 견해차가 컸다.
환율 정책은 한마디로 혼란의 연속이었다.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는 “정부가 달성 불가능한 747 정책을 무리하게 밀고 나가려다 벌어진 일이다. 정권 초기에 수출 증가를 목표로 원화 가치의 인위적인 평가 절하를 유도하다 원화가 불안해졌다. 6월 넘어서는 금융 위기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한 채 외환보유액을 쓰다가 돈만 날리는 잘못을 저질렀다”라고 평가했다.
한국개발연구원(이하 KDI) 김현욱 연구위원은 “정부가 초기에 적극적인 시장 개입을 시사하면서 시장에 대한 신뢰를 상실하게 된 것은 치명적인 과오였다. 또한, 정부가 시장을 설득하는 데에도 실패해 환율의 변동 폭이 다른 나라에 비해 커 혼란만 가중시켰다”라고 지적했다. 굿모닝신한증권 문기훈 센터장은 “환율은 세계 금융시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정부가 의도적으로 개입해 이끌고 나갈 수 없다. 시장 자율에 맡겨야 한다. 하지만 환율이 급변동하면 대외 신뢰도가 떨어지기 때문에 변동 폭을 줄이는 스무딩 오퍼레이션(미세 조정) 역할 정도는 정부가 해주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내놓은 대안적인 환율 정책은 ‘통화 스와프’의 확대이다.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센터장은 “외환보유액을 쌓아놓지 말고 주변국과의 통화 스와프 협정을 맺는 것이 자본 자유화 시대에 가장 좋은 방책이다. 주요 아시아 국가와 스와프 협정을 확대해나가고 있지만 이런 공조 체제를 좀더 강화하고 한도 금액도 늘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정부의 고용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컸다. 정부가 내놓은 공공 부문의 일자리 대부분이 단순 노무직에 불과한 데다 장기 고용의 효과도 없다는 이유에서이다. 고려대 경영학과 이필상 교수는 “정부가 녹색 뉴딜 정책을 내놓으면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했지만 건설업 중심의 단순 노무직이 전부이다. 첨단 장비 개발로 건설업은 이제 예전만큼 고용을 창출해내지도 못한다. 우리나라는 성장에 비해 사회 복지가 뒤떨어지기 때문에 정부가 노인 요양이나 아동 양육, 환경 보호 등 사회적 일자리를 만드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라고 지적했다.
정부가 민간 기업에게 일자리를 나누도록 유도한다고 밝혔지만 이를 이끌 지도력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뒤따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일자리 나누기는 정부가 세제 혜택이나 컨설팅을 해주는 것으로 성과를 낼 수 없다. 노사 간의 대타협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하고 나서면서 대타협을 이끌 지도력을 상실했다”라고 일침을 놓았다.
전문가들은 고용 문제는 민관 합동 작전을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고 강조한다.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오광성 소장은 “민관 합동위원회를 구성해 국민의 애로 사항을 생생하게 듣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 바탕 위에 나오는 정책들이 현실적인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이유를 밝혔다. KDI 김용성 연구위원 역시 “통계를 보면 정부보다 민간 기업에서 만들어낸 일자리가 장기 고용으로 이어지는 비율이 훨씬 높다. 정부는 공공 부문 일자리 창출로 들어가는 예산을 줄이고, 이 비용을 민간 기업에 지원해주는 방향으로 조정한다면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라고 충고했다.
고용 정책의 실패처럼 내수 활성화 정책 역시 건설업과 부동산에 초점을 맞추는 탓에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이다. LG경제연구소 이철용 연구위원은 “단기간에 효과를 내기 위해 건설 경기 부양에 노력을 많이 쏟았지만 그 실효성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구조조정 정책에는 견해 갈려
이들은 내수의 급락 가능성을 제기하며 재정 지출의 확대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연세대 양혁승 교수는 “가계 부실이 심화되고 실업률이 올라가는 위기 상황에서 쓸 수 있는 수단은 정부의 재정 지출 확대밖에 없다”라고 밝혔다. LG경제연구소 오문석 상무 역시 “재정을 써서 경기를 부양해야 할 때이다. SOC(사회간접자본)이라든지 타당성을 인정받았던 사업들을 조기 집행할 필요가 있다”라고 밝혔다.
동시에 내수 급락의 직격탄을 맞는 저소득층에 대한 지원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주장이다. 민주당 강봉균 의원(전 재경부장관)은 “정부는 내수 활성화를 위해 대형 SOC 투자를 늘리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는데, 사회보장 지출에 좀더 비중을 둘 필요가 있다”라고 충고했다.
이참에 외부 충격에 취약한 산업 구조를 강화시켜나가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경실련 고계현 정책실장은 “산업 구조가 지식 집약 산업으로 변화되고 있는 만큼 신성장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장기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때이다”라고 말했다.
구조조정 정책에 관해서는 전문가마다 평가가 상이했다. 지난 1년간 정부가 직접적으로 구조조정에 개입하지 않아 바람직했다는 의견과 필요한 조치들은 취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비등하게 나왔다.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수석연구원은 “지금의 금융 위기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니다. 외환위기 때처럼 급격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도, 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민간에 맡기는 것이 고통을 경감할 수 있는 방안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반대로 정부가 구조조정 개입 시기를 놓쳐 은행과 건설, 조선업의 부실을 키우고 있다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연세대 양혁승 교수는 “건설과 조선업의 재무 상태나 신용 상태가 취약하다. 이런 불투명성 때문에 구조조정이 필요한데, 민간에 맡기다보니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정부는 부동산 경기 부양으로 거품을 유지한 채 부실 기업까지 떠안고 가려고 한다. 그렇게 되면 흑자 기업까지 피해를 보게 된다”라며 정부의 개입을 역설했다.
전문가들은 이명박 정부가 정책 운용에서 가시적인 성과에 집착하는 조바심부터 버려야 한다고 경고한다. HMC투자증권 이종우 센터장은 “정부는 단기간에 성과를 보여주려고 중구난방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감이 있다. 경제에 대한 확고한 철학과 장기적인 계획을 가지고 하나하나 추진해나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계 경제 위기는 끝났는데, 한국만 여전히 경제난 속에서 헤매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라고 주장했다.
“환율 안정 위해 통화 스와프 확대해야” ■ KDI 김현욱 연구위원
“고용 창출 효과는 정부보다 민간 기업이 훨씬 커” ■ KDI 김용성 연구위원
“외환위기와 다르니 구조조정은 민간에 맡겨야” ■ 삼성경제연구소 황인성 연구위원
“이념이나 공약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사업 추진해야” ■ LG경제연구소 이철용 연구위원
“정부는 은행이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야” ■ LG경제연구소 오문석 상무
“환율 문제는 정부 무능 아닌 세계 금융 위기 탓” ■ 민생경제정책연구소 오광성 소장
“경제 활성화 위해 야당이 정부와 적극 협조해야” ■ 명지대 경제학과 최창규 교수
“정부가 모든 것을 하려고 덤벼든 탓에 불필요한 부담 안아” ■ 경기개발연구원 좌승희 원장
“고용보험 혜택 못 받는 영세 자영업자 위한 정책 마련해야” ■ 민주당 강봉균 의원
“사회적 일자리 창출과 일자리 나누기 위해 사회 대타협 절실” ■ 고려대 경영학과 이필상 교수
“정부-기업-시민사회 파트너십 구축으로 실업 문제 해결해야” ■ 삼성경제연구소 이언오 연구위원
“정부가 창출한 단순 노무직 일자리는 생산성 유발 효과 없어”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고계현 정책실장
“정부는 조바심 버리고 장기적 관점에서 정책 추진해야” ■ HMC투자증권 이종우 센터장
“정부는 일자리의 질보다 성과 보여주기에 급급” ■ 연세대 경영학과 양혁승 교수
“원화 약세로 가격 경쟁력 있을 때 신기술 산업 투자해야” ■ 굿모닝신한증권 문기훈 센터장
“정부는 통합도산법 정비로 구조조정 여건 마련해야” ■ 홍익대 경제학과 전성인 교수
“자금 조달 어려운 기업에게 정부가 자금 지원해줘야” ■ 하이투자증권 조익재 센터장
“정부의 고용 정책 혼선 막기 위해 부처 간 조율이 필요한 때” ■ 현대경제연구소 정유훈 연구위원
“정부가 내놓은 녹색성장은 과거 정책 우려먹기에 불과” ■ 제로인투자자문 정은호 대표
“정부가 부실 기업 정리해줘야 시중에 돈이 돌 수 있어” ■ 신영증권 조용준 센터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