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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그룹이 어수선하다. 지난해 건설경기 침체 여파로 부도설에 시달리더니 최근엔 그룹의 전직 고위 임원들이 납품업체 선정과 관련해 거액의 돈을 주고받은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29일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부장검사 윤갑근)는 박 아무개 전 대림코퍼레이션 사장과 신 아무개 전 대림산업 상무를 배임증재 및 수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대림그룹은 “지금은 우리와 무관한 인물”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지만 검찰의 칼날은 그룹의 심장부로 향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지난해 7월 검찰은 제보 하나를 접수했다. 대림과 한화가 50 대 50의 비율로 공동출자, 1999년에 설립한 여천NCC가 공사비용을 부풀리는 수법으로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즉시 수사에 착수했다. 당시 <일요신문>(844호)은 이 사건과 관련, ‘검찰이 대림 출신 인사 아무개 씨에 대한 계좌 추적에 집중하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는데 결국 박 전 사장과 신 전 상무의 비리 혐의가 드러났다.
검찰에 따르면 지난 2004년 신 전 상무는 박 전 사장에게 “여천NCC에서 증설하려는 발전기의 납품업체 입찰에서 D 사가 선정되도록 힘쓰면 돈을 주겠다”며 청탁을 했다고 한다. 당시 박 전 사장은 대림H&L 대표이사와 여천NCC 이사를 맡고 있었다. 2002년 회사에서 나온 신 전 상무도 대림산업 상무와 여천NCC 이사가 최종 이력이다. 둘은 한때 여천NCC에서 한솥밥을 먹던 사이로 친분이 두터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결국 D 사는 여천NCC의 납품업체로 선정됐고 신 전 상무는 박 전 사장에게 10여 차례에 걸쳐 6억 3000만 원가량을 건넸다. 신 전 상무 역시 D 사로부터 10억 원대의 돈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D 사 선정 이유가 신 전 상무의 청탁을 받은 박 전 사장의 압력 행사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신 전 상무가 박 전 사장에게 준 돈 역시 그 대가라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1월 16일 박 전 사장과 신 전 상무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기각했다. 피의자들의 행위가 각각 배임수재와 배임증재를 구성하는지 다퉈볼 여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박 전 사장과 신 전 상무 역시 대가성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이후 검찰은 추가 수사를 벌였고 지난 1월 29일 두 사람을 불구속 기소했다.
대림그룹에서는 이번 사건과 관련해 회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신 전 상무는 물론 박 전 사장 역시 지난해 다른 곳으로 옮겨 ‘대림’과는 무관하기 때문이라게 이유다. 그룹 관계자는 “사건을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대림 측의 입장에도 검찰은 여천NCC의 수상한 자금 흐름에 대해 계속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두 사람의 비리는 수사 과정에서 나온 것일 뿐 핵심은 아니다. 새로운 사실들이 조만간 밝혀질 것”이라며 사건이 확대될 것임을 내비쳤다. 이미 지난해 일부 고위 임원들에 대한 계좌 추적도 끝마친 상태라고 한다. 발전기 증설 공사를 하면서 그 비용을 과도하게 책정한 정황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검찰은 여천NCC에서 조성된 자금이 모기업인 대림 혹은 한화로 흘러들어갔는지에 주목하고 있다. 또 다른 청탁이나 로비 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도 수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한다. 대림 측이 “전직 임원의 일”이라며 ‘방화벽’을 친 것만으로 안심할 수만은 없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더군다나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박 전 사장과 신 전 상무가 한때 그룹의 핵심부에 몸담았던 인사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렇다. 이준용 명예회장의 최측근으로 분류됐었던 박 전 사장은 대림H&L 대림코퍼레이션 등 알짜배기 계열사로 평가받는 곳의 대표이사를 지냈다.
이 명예회장이 89.8%의 지분을 가지고 있는 대림코퍼레이션은 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곳이기도 하다. 박 전 사장의 자리를 이 명예회장 장남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이 물려받았다. 대림H&L은 이해욱 부사장이 지분 100%를 가지고 있는 곳으로 그동안 그룹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매년 급성장을 해왔다.
박 전 사장은 그룹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을 뿐 아니라 총수 일가와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 인물로 꼽혔다. 하지만 회사를 그만둘 당시 그룹 안팎에서는 ‘박 전 사장이 이 부사장의 승계구도와 관련해 물러난 것’이란 말이 나돌았었다. 박 전 사장이 원치 않는 퇴진을 했다는 것. 이 때문인지 검찰은 박 전 사장이 결정적인 진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 전 상무 역시 그룹 내에서 ‘기획통’으로 인정받았었다고 한다. 특히 이해욱 부사장과 인연이 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신 전 상무는 퇴임 후에도 여천NCC와 관련 있는 특장차 제작 업체 대표이사에 취임해 회사와의 인연을 이어갔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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