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화유동성.中企 지원 등 전방위 대응"
(서울=연합뉴스) 김문성 김호준 이준서 기자 = 리먼브러더스 등 대형 투자은행(IB)의 몰락으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가 국내 금융시장을 강타하자 정부는 다각도의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글로벌 신용경색이 외환·주식시장을 뒤흔들 뿐 아니라 경기침체와 상승 작용을 일으켜 흑자도산 기업이 출현하는 등 실물경제로 미칠 조짐을 보이자 이를 차단하는 데 전력을 쏟고 있다.
정부는 최근 외화유동성 공급과 주식 공매도 제한 등 시장 안정책을 내놓은 데 이어 경영여건 악화 때문에 벼랑 끝으로 몰리는 중소기업을 살리는 방안을 찾고 있다.
하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 금융시장이 안정 궤도에 들어서고 기업들이 숨통을 트는 데에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 정부, 달러 공급 등 전방위 대응 = 정부는 미국발 금융위기로 가장 심각한 것이 달러 품귀사태라고 판단하고 국내 외환시장에 보유달러를 대거 풀기로 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26일 외국환평형기금을 통해 외환스와프 시장에 10월까지 100억달러 이상의 달러를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는 국제 금융시장의 신용경색으로 중장기 외화 차입에 이어 단기 차입까지 막혀 은행들이 심각한 외화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난으로 외환시장이 패닉(심리적 공황) 상태에 빠지며 원-달러 환율의 급격한 상승을 부추기는 점도 고려한 것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18일 환매조건부채권(RP) 거래를 통해 3조5천억원을 시중에 공급하는 등 단기자금 지원에 나서고 있다.
정부의 이번 대책으로 당장 금융권의 외화자금 확보에는 한숨을 덜 수 있게 됐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이 풀리지 않는 한 자금난이 재연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자금 회수에 나선 외국인 투자자의 매도 공세로 출렁거리는 주식시장의 안정책도 내놓았다.
다음달 13일부터 공매도가 집중된 종목에 대해 10일간 공매도를 금지하고 증권사들이 투자자의 공매도 주문을 처리할 때 결제 가능 여부를 반드시 확인하도록 하는 등 규제를 강화하기로 했다. 외국인 투자자의 과도한 공매도로 인한 증시 불안을 막기 위한 것으로,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의 공매도 규제 강화에도 보조를 맞춘 것이다.
증시의 중장기 수요 기반을 넓히고 안정적인 수익을 확보할 수 있도록 3~5년간 장기 투자하는 적립식 펀드의 투자자에게 일정 한도를 정해 소득공제 혜택을 주는 방안이 추진되고 있다.
정부는 미국의 금융위기와 원-달러 환율 상승, 내수 부진이 맞물리면서 중소기업들에 가장 큰 타격이 우려됨에 따라 종합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특히 통화옵션상품인 '키코'에 가입한 기업들의 피해가 커지는 가운데 원-달러 환율이 1,200원으로 오르면 키코 피해 중소기업의 70% 가량이 부도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중소기업중앙회의 조사 결과도 나와 있다. 최근 키코로 큰 손실을 본 코스닥업체 태산엘시디는 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했다.
중소기업들이 무너질 경우 대출이 부실화되면서 금융회사의 건전성이 악화되고 금융시장의 불안을 가중시킬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은행들이 주축이 돼 키코 피해 중소기업에 대해 신규 자금의 선별 지원이나 대출 만기 연장 등에 나서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중소기업 업계가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보증 확대, 정책자금 지원 등 다양한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 "미국 금융불안 해소가 관건" = 전문가들은 정부의 대책들이 금융시장의 불안 심리를 진정시키는 데에는 기여하겠지만 외화유동성과 중소기업 문제 등이 미국의 금융위기와 실타래처럼 얽혀 있어 한계는 있을 것으로 평가했다. 국내 금융시장의 안정은 결국 미국의 금융불안 해소 여부에 달렸다고 입을 모았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관리 대책을 강화하고 새 정부 초기에 실패한 환율 정책을 교훈삼아 신뢰를 받을 수 있는 정책을 펴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신민영 금융연구실장은 "심리적 불안이 경제위기설로 번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현재까지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외화유동성 부문 등에서는 효과를 보고 있는 것으로 판단한다"고 말했다.
신 실장은 "중요한 것은 미국의 구제금융 조치"라며 "이것이 잘 해결되면 환율이 안정되고 중소기업의 환차손 문제도 다소 완화되면서 전반적인 유동성도 개선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정부가 '9월 위기설'로 금융시장이 요동칠 때부터 낙관적인 전망을 하다가 뒤늦게 대책을 내놨다는 지적도 있다.
한성대 김상조 교수는 "외환시장에서는 작년 말부터 외화유동성이 간단한 문제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며 "은행들의 외화유동성이 심각한 것으로 드러나자 지난 26일에야 100억달러 이상을 외환스와프 시장에 지원하겠다는 발표를 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미국에서도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대 위기라고 할 정도를 미래를 예측하기 어렵다"며 "최악의 시나리오에 근거한 위기관리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외환보유액이 감소하기 때문에 정부가 달러를 계속 풀 수는 없는 상황이고 이전에 정부가 환율시장에 개입했다가 실패한 이후 신뢰가 깨졌다"며 "섣부른 개입이나 대책을 내놓아서 신뢰를 잃기보다는 큰 흐름을 따라가면서 미세조정을 하고 외환보유액을 확보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각종 대책에도 금융시장의 안정은 미국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은 "상황이 좋지 않기 때문에 정부가 각종 대책을 발표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며 "하지만 미국의 구제금융 안이 의회를 통과해 효과를 확실히 내고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화유동성이 금방 호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국제 금융시장의 경색에 따른 유동성 문제와 환율 급등 등은 미국발 금융위기와 맞물린 문제들로,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며 "정부로서는 최대한의 대책을 내놓으면서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잠재우는 것이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미국의 금융불안이 얼마나 해소되느냐에 달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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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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