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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우조선 인수전 ‘권력의 끗발’ 따라 항로 오락가락

이경희330 2008. 9. 20. 00:45

대우조선해양 옥포 조선소 전경.

M&A 시장 최대 매물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 매각작업이 예비입찰을 거치면서 급물살을 타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10월 본입찰과 11월 우선협상자 선정을 통해 올해 안에 새 주인이 가려질 전망이다. 그동안 자금 동원력과 시너지 창출 면에서 포스코가 가장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돼 왔지만 최근 들어 재무적 투자자와의 합종연횡 등 인수전 판도를 바꿀 변수들이 잇달아 등장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 독주 구도’를 깨려는 다른 후보들의 중심에 ‘정권 실세’들이 자리 잡고 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예비입찰엔 예상대로 인수의향서를 제출한 포스코 한화 GS 현대중공업 등 4개사가 모두 참여했다. 9월 16일부터 10월 6일까지 3주간 예비실사 기간을 거쳐 10월 13일 본입찰, 그리고 10월 말에 우선협상자를 선정하게 돼 있다. 돌출변수가 없는 한 11월 우선협상자에 대한 실사를 거쳐 12월 가격 조정을 통해 최종 매각을 확정하게 된다.

시장에서 평가하는 대우조선해양 인수 적정액이 무려 6조~7조 원에 이르는 만큼 자금 동원력에서 앞서는 포스코가 그동안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재무제표상 포스코가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은 7조 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이 인수전 막차를 타면서 자금력 우위를 함부로 논할 수 없게 됐다. 현금 8조 5000억 원을 보유한 것으로 알려진 현대중공업은 인수후보들 중 유일하게 단독으로 자금을 조달하겠다는 입장이다.

반면 포스코는 신한은행 SK에너지 등과 재무적 투자 참여를 협상 중이고 GS는 국민은행을 끌어들이려 하는 가운데 중동 자본 참여설도 떠도는 중이다. 한화는 대한생명 및 한화건설 상장과 자산매각 등을 통한 자금 확보 방안을 제출한 상태다.

막차를 타고도 두터운 주머니 덕분에 주목을 받게 된 현대중공업을 향한 재계의 시선은 그다지 곱지 않다. “인수전 완주를 하지 않고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 정보만 캐낸 뒤 가격만 잔뜩 올리고 나서 빠질 것”이란 소문이 좀처럼 끊이지 않는다. 정보유출을 우려하는 대우조선노동조합이 현대중공업 인수 반대운동을 벌이는 것도 적잖은 부담이다.

여당 수뇌부로 진입한 정몽준 한나라당 최고위원이 현대중공업 최대주주라는 점도 논란거리다. 대우조선해양의 대주주인 산업은행과 캠코(자산관리공사)가 정부 영향력 아래에 놓인 점 때문에 현대중공업이 승자가 될 경우 정 최고위원을 둘러싼 특혜 시비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 정 최고위원이 권력 핵심부와 가까운 만큼 정부의 대형매물 M&A 구상을 엿볼 수 있다는 점도 거론된다. 최근 또 다른 대형매물인 현대건설에 대한 인수포기 의사를 밝힌 정 최고위원의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진짜 속내에 대한 궁금증이 날로 커지고 있다.

국민연금관리공단(국민연금) 박해춘 이사장 또한 대우조선해양 인수전 판도를 바꿀 주역으로 떠올랐다. 1조 5000억 원을 투자할 것으로 알려진 국민연금은 단독 입찰 가능성을 높이고 있는 현대중공업을 제외한 포스코 한화 GS의 구애를 받고 있다. “국민연금 투자를 유치하는 기업이 인수전 승자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후보들과 물밑협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해춘 이사장은 한때 ‘이헌재 사단’ 멤버로 함께 분류된 황영기 KB금융지주 회장의 후원으로 국민연금에 입성했다는 뒷말 속에 현 정권 금융실세로 부상한 인물이다.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재무적 투자자로 국민연금이 각광받자 금융권에선 “박 이사장이 마치 인수전 향배의 열쇠를 쥔 것처럼 여기는 것 같다”는 말도 등장했다.

이는 파트너십을 요청해온 기업들에 대한 국민연금의 요구가 다소 지나치다는 평가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포스코 한화 GS에 두 자릿수 수익률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는데 국민연금의 전체 수익률이 연간 5~6%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너무하다는 지적이다.

국민연금은 수익률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인수후보 기업이 보유한 비상장 계열사 주식에 대한 담보 설정을 원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거론되는 비상장 계열사들은 조만간 상장이 이뤄질 예정이거나 고수익을 내는 알짜들이다. 금융권 인사들이 “박 이사장과 국민연금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통해 인수후보 기업의 경영권 간섭 교두보까지 마련하려는 것 같다”고 입을 모을 정도다. 일각에선 ‘국민연금의 투자규모와 상징성 때문에 인수후보들이 쩔쩔 매는 것을 보고 박 이사장이 보다 유리한 조건을 이끌어내기 위해 재무 투자 파트너 발표를 최대한 늦추려 할 것’이라 관측하기도 한다.

황영기 회장의 국민은행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 이름을 내밀고 있다. 해당업체들은 공식 언급은 안 하고 있지만 금융권에선 GS와 국민은행이 투자 관련 협상을 벌이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GS는 GS칼텍스 정보유출 파문으로 이미지가 실추된 터라 국민은행을 등에 업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와 더불어 이팔성 우리금융지주 회장의 우리은행 역시 본입찰 이전에 인수후보와 손을 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황 회장과 이 회장은 모두 ‘이명박 정부의 금융실세’로 일컬어지는 인사들이다. 황영기 회장은 지난해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진영에서 경제살리기특별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고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선 국가경쟁력강화특별위원회 자문위원을 역임했다. 황 회장은 KB금융지주 회장직에 오르기 전까지 현 정부 초대 금융위원장과 산업은행 신임 총재 후보로 거론돼 뒷말을 낳기도 했다. 이팔성 회장 역시 이 대통령의 서울시장 재직시절 서울시교향악단 대표를 거쳐 이명박 대통령후보 상근특보를 지냈다.

금융권에선 청와대의 신뢰가 두터운 것으로 알려진 이들 두 사람이 GS처럼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에서 약체로 평가받는 기업과 손을 잡고 돈 보따리를 풀어헤칠 가능성을 그려보고 있다. 최근 황 회장의 “국내 대형 금융지주회사 합병 추진” 발언으로 민감해진 업계 라이벌 신한은행은 포스코와 재무투자 협상을 벌이는 중이다. 금융권 M&A 신경전을 벌이는 대형 은행들이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통해 한바탕 ‘실탄 전쟁’을 벌일 가능성도 고조되고 있는 것이다.

한편 한화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앞두고 정권 실세들의 측근들을 잇달아 영입한 것으로 밝혀져 눈길을 끈다. <시사저널> 최신호는 한화가 지난 4월과 7월 유선기 전 선진국민연대 사무총장을 대한생명경제연구소 고문으로, 김유환 전 국정원 경기지부장을 한화석유화학 감사로 영입했다고 보도했다. 유선기 고문은 ‘왕비서관’으로 불렸던 박영준 전 청와대 기획조정비서관과 호흡을 맞춰 대선을 치른 인물. 김유환 감사는 정두언 의원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지며 차기 국정원 기조실장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한화의 정권 실세 측근 영입 효과가 어떻게 나타날지도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일요신문>  85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