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가 끝난 것처럼 세상이 떠들썩하다.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이 다시 들뜬 것이 주요 원인이다. 지난 4월 영국 런던에서 열린 G20(선진 20개국) 정상회의 이후 각국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재정 지출을 대규모로 늘리는 등 돈 퍼붓기 경쟁에 나섰다. 이에 따라 국제 금융 위기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외국 자본의 유출입에 따라 등락을 거듭하는 우리나라 증권시장과 부동산 시장은 위기감을 씻고 가파른 오름세로 돌아섰다.
거품 커진 자산시장
우선 지난해 40조원 이상 빠져나가 주가를 반 토막 냈던 외국 자본이 다시 들어오기 시작했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 들어 7조원 규모의 우리나라 주식을 순매수하여 주가 상승을 이끌고 있다. 여기에 불을 붙이고 있는 것이 800조원이 넘는 국내 부동자금이다. 이 자금이 서서히 증권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주가가 거침없는 상승세를 보여, 지수 1400선을 돌파했다. 890선까지 무너졌던 지난 10월 이후 60% 가까이 오른 것이다. 더욱이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가열시키는 정책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건설 경기 회복을 경제 살리기의 주요 수단으로 하여 4대강 정비, 뉴타운 건설,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 수도권 개발 확대, 세금 감면 등 갖가지 정책을 숨 가쁘게 내놓고 있다. 이에 따라 아파트 등 부동산 거래량과 가격이 작년 금융 위기 이전 수준으로 돌아갔다. 2006년 최고 가격에 비하면 90% 수준까지 회복한 것이다.
이러한 자산시장의 회복은 국민의 투자 손실 만회와 소득 증가라는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소득 증가가 소비심리 회복으로 연결될 경우 경기 활성화의 동력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는 최근 자산시장의 상승세는 실물경제의 회복이 뒷받침 되지 않는 유동성 장세라는 것이다. 즉, 실물경제는 계속 침체하고 있는데 자금이 일시적으로 증권과 부동산으로 흘러들어 거래가 늘고 가격이 오르는 것이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경제 규모에 비해 부동자금이 많아 유동성 장세의 불안이 크다. 현재 세계 경제는 언제 활동을 재개할지 모르는 휴화산 같다. 미국과 유럽에서 대형 기업과 금융회사의 부실이 터질 경우 국제 금융 불안과 세계 경제 위기는 언제든지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금융시장이 외국 자본의 지배 상태에 있고 대외 교역 의존도가 80%가 넘는 우리 경제는 곧바로 다시 대지진을 겪을 가능성이 있다.
재정 팽창이 글로벌 더블딥 자초할 수도
자산시장이 거품으로 들뜸에 따라 실로 큰 우려로 제기되는 것이 ‘더블딥(double dip)의 공포’다. 우선 세계 각국이 돈 퍼붓기 경쟁을 계속할 경우 물가가 급격히 오르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나타나면 생산비가 크게 올라 기업들의 생산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다. 동시에 소비자 물가가 대폭 올라 근로자들의 생계 기반이 흔들린다. 그러면 경제의 양축인 생산과 소비가 맞물려 서로 무너지는 악순환이 나타나 대량 실업을 쏟아낸다. 실물경제를 식물상태로 만드는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정부의 재정 팽창 정책의 시한이 끝나면 곧바로 자산시장의 거품이 붕괴한다. 그러면 국민들의 재산 가치가 다시 폭락하고 산업 기반이 와해된다. 결국 경제가 잠시 회복세를 보이다가 더 큰 위기의 수렁에 빠지는 것이다. 각국의 증권 시장과 부동산 시장의 회복세에도 불구하고 올해 세계 경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할 전망이다. 사실상 더블딥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렇게 볼 때 각국이 쏟아내는 재정 팽창 정책은 자본주의 경제를 더블딥의 함정에 밀어 넣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
최근의 우리나라의 경기 회복세는 어느 나라보다도 더블딥에 빠질 우려가 크다. 특히 우리나라는 내수 기반이 부실하여 경제의 자생력이 없는 상태에서 정부가 억지 부양 정책을 펴고 있다. 따라서 인위적 경기 부양책의 효과가 사라지는 올 4분기 이후 더블딥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되면 정부는 빚더미 위에 올라 앉아 경제의 통제 능력을 상실하는 위기도 함께 맞을 수 있다. 주가와 부동산 가격 상승을 기준으로 하여 경기를 판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경기가 살아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투기가 살아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된다. 즉, 더블딥을 자초하는 화를 확인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실물경기 회복의 척도는 투자·고용·소비
실제 경기가 살아나는가에 대한 여부는 투자, 고용, 소비 등 실물경제 변수를 보고 가늠해야 한다. 투자가 늘어야 고용이 늘고 고용이 늘어야 소비가 는다. 그리고 소비가 늘어야 다시 투자가 는다. 이와 같이 투자, 고용, 소비가 순차적으로 맞물려 성장의 선순환을 해야 비로소 경기가 살아나는 것이다. 최근 우리 경제는 설비 투자가 작년 같은 기간에 비해 20% 이상 감소세다. 수출도 20% 이상 줄었다. 여기에 소비자 판매는 여전히 4% 수준의 감소다. 이에 따라 지난 4월 현재 일자리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18만8000개나 줄었다. 경제의 성장 동력이 꺼지는 악순환이 내면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경기를 어떻게 살려야 하나? 경기 회복의 전제 조건으로 필요한 것이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실시하여 실물경제의 성장 동력을 살리는 일이다. 그래야 시중의 부동자금이 산업자본으로 흘러 금융과 실물이 함께 살아나는 건전한 경기 회복이 된다. 여기에 국내 자본을 육성하여 금융의 해외 의존을 탈피하고 중소기업과 내수 산업을 획기적으로 일으켜 경제의 자립도와 고용 창출 능력을 높이는 것도 절실하다. 더 나아가 단기적 경기 부양에 급급하여 건설공사 활성화 같은 과거식 경제 회생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안목에서 첨단 산업, 미래 산업, 지식 산업, 서비스 산업 등 미래 지향형 산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하여 경쟁 국가들을 뛰어 넘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최근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심리가 확산하면서 조금만 버티면 구조조정을 안 해도 된다는 회피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그러나 현 상황에서 명확히 해야 할 것은 자산 가격이 오르는 것과 실물경제가 회복하는 것이 별개라는 것이다. 따라서 구조조정을 회피하는 것은 정부나 한국은행으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아서 부실을 더 키우는 파괴적 결과를 자초할 수 있다. 연초 정부는 건설사와 조선사에 대해 구조조정을 실시한 바 있다. 5월 들어서 11개 그룹 등 대기업들에 대한 구조조정도 착수했다. 그러나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 이유는 구조조정을 산업 발전에 대한 청사진이 없이 지엽적으로 추진하고 기업들과 이해를 같이하는 채권단에 맡겼기 때문이다. 정부는 우리 경제가 미래에 어떤 산업을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에 대해 기본 틀부터 만들어야 한다. 다음 구조조정의 칼자루를 정부가 쥐고 엄격한 원칙과 기준을 만들어 예외 없이 실천에 옮겨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미래 산업 발전 및 구조조정 촉진법 같은 입법 조치도 마련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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