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지난 20년 동안 3분의 1 이하로 떨어졌다.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던 성장의 엔진이 노후와 고장으로 기능을 잃고 있는 것이다. 최근 대한상공회의소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1986~1990년 10.1%를 기록한 이후, 2001~2005년 5.1%, 2006~2009년 3.0% 등으로 곤두박질쳤다
.
잠재성장률은 경제가 물가 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노동과 자본 등 가용생산요소를 모두 투입해 달성할 수 있는 성장률을 말한다. 따라서 잠재성장률이 떨어진 것은 생산요소의 투입이 감소했음은 물론, 생산성이 동시에 하락하여 총생산의 증가율이 줄었다는 뜻이다.
우리 경제의 경우 인구 대비 취업자 비율인 고용률이 지난해 기준으로 58.6%밖에 되지 않는다. OECD(경제협력개발기구)의 평균 수준인 65%에 비해 현격히 낮다. 그만큼 경제의 노동 흡수력이 낮다는 뜻이다.
또한 설비투자 증가율이 1990년대 평균 7.7%에서 2000년대 평균 4.6%로 줄었다. 경제의 자본 흡수력도 급격한 감소세다. 여기에 노사분규, 근로자들의 노령화, 연구개발 투자의 부실 등으로 생산성도 계속 떨어지고 있다. 그 결과 잠재성장률이 추락하는 재앙을 가져왔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잠재성장률의 하락은 정부정책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로 만든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경제가 위기를 맞거나 침체할 때 정부는 경기를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팽창정책을 편다. 예산을 늘려 정부 지출을 확대하는 재정팽창과 금리를 낮추고 자금을 푸는 통화팽창을 동원하여 투자와 소비가 살아나도록 만든다.
이러한 정부의 경기 활성화 정책은 경제가 내면적으로 성장잠재력을 갖고 있을 때에 한해서 효과를 발휘한다. 즉 기업들이 시설을 확충하여 이익을 얻을 수 있는 산업 경쟁력과 소비자들이 소득을 벌어 소비할 수 있는 여력이 있을 때여야 풀린 자금이 생산적으로 흘러 경제 회복이 가능하다.
그러나 경제에 성장잠재력이 없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정부의 팽창정책으로 풀린 자금이 부동상태로 떠돌며 부동산과 증권 등 자산투기를 일으킨다. 그리하여 경제가 실물산업은 주저앉고 자산 가격과 물가만 오르는 거품상태에 빠진다.
이렇게 되면 우선, 경제는 실업자를 양산한다. 생산적인 산업활동이 위축됨에 따라 중소기업과 자영업 등 경영구조가 취약한 기업들이 쓰러지며 실업자를 대규모로 토해낸다. 최근 실직상태에 있는 사람은 물론 구직단념자, 취업준비생 등 사실상 실업자가 461만 명으로 늘어난 것이 바로 거품경제가 빚어낸 결과다.
또한 경제가 거품상태에 빠지면 경제 주체들을 빚투성이로 만든다. 재정지출의 확대로 정부부채가 느는 것은 물론, 주택 구입이나 생계 유지를 위한 가계부채가 늘어난다. 더욱이 경영의 악화로 기업 부채도 늘어난다. 올해 예상되는 정부 부채는 407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35.5%나 된다. 가계 부채는 이미 734조원을 넘어 가구당 4300만원에 이른다. 기업 부채도 1500조원을 넘었다. 금리가 조금만 올라도 경제가 다시 금융위기에 빠질 수 있는 불안한 상태다.
한편 경제가 거품상태에 빠질 때 물가 불안도 나타난다. 과도한 유동성 때문이다. 경기 침체로 인해 지난해 2%대에 머물렀던 물가상승률이 올 들어 3% 선으로 올랐다. 특히 식료품 등 생활필수품 물가상승률은 10%가 넘는다. 더 나아가 거품경제는 빈익빈부익부의 소득격차를 가져온다. 지난해 중위소득의 절반도 벌지 못하는 빈곤가구의 숫자가 306만 가구로 사상 최고치였다. 사람 수로 따지면 700만 명 이상이 생계 불안을 느끼며 월평균 35만원의 빚을 지며 산다. 실로 큰 우려는 이와 같이 거품경제가 실업, 부채, 물가, 양극화 등의 부작용을 계속 낳을 경우 잠재성장률을 더 떨어뜨리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가 ‘잠재성장률 하락→팽창정책→거품경제→다시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악순환의 함정에 빠진다.
분수(噴水)형 성장 이뤄야
우리 경제가 잠재성장률 하락의 수렁에 빠진 것은 양대 금융위기의 영향이 크다. 1997년 외환위기를 겪게 되자 정부는 대규모 구조조정 정책을 폈다. 경제의 생존을 위해 불가피한 조치였다. 문제는 구조조정 작업이 생존능력이 많은 대기업은 살려내고 경쟁력이 부족한 중소기업과 자영업을 대규모로 쓰러뜨린 것이다.
여기에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경기를 활성화시키는 정책을 펴자 경제에 양극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그러자 경제는 살아났으나 경제 저변이 와해되는 현상이 나타나 잠재성장률이 5% 수준으로 떨어지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러한 현상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유사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중소기업들이 연쇄부도 위기에 처하고 자영업자가 몰락하여 일자리가 늘기는커녕 7만2000개나 줄었다.
그러면 잠재성장률을 다시 높이는 길은 무엇인가? 기본적으로 노동과 자본 등 생산요소의 투입을 확대해야 잠재성장률이 높아진다. 그렇다면 우선 출산을 장려하고 보육지원제도를 확충하여 경제활동인구의 숫자를 늘리고 평균연령을 낮춰야 한다.
여기에 직업훈련 교육제도를 올바르게 발전시켜 근로자들의 경제활동 능력을 높여야 한다. 특히 유휴여성 인력이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교육제도와 사회 여건 마련이 필요하다. 한편 기업의 창업과 투자 확대 차원에서 세금 감면, 노사관계 선진화 등 기업환경 개선 노력이 절실하다. 또한 생산성 향상을 위해 연구개발 투자를 늘리고 지식 서비스 산업을 집중 육성하는 정책도 필요하다.
중요한 사실은 이러한 정책들을 추진하기에 앞서 경제성장의 기본구도를 바꾸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우리 경제에 절실한 것은 신산업 발굴과 분수(噴水) 정책이다. 현재까지 우리나라 경제정책은 대기업과 고소득층 중심으로 성장정책을 펴면 그 효과가 하향으로 확산해 중소기업과 자영업이 발전하고 고용이 창출돼 국민경제가 발전한다는 낙수(落水) 효과를 근거로 했다.
이 정책은 이미 대기업의 고용 창출 기능 저하와 고소득층의 자산시장 선호현상으로 한계 상황에 부딪혔다. 우리 경제는 미래를 이끌 신산업 발굴과 구조조정을 서두르고 새로운 산업 발전의 주도권을 작고 강한 벤처기업과 중소기업들이 갖게 해야 한다. 그리하여 대규모의 산업 저변을 형성하고 신규 고용을 창출해 경제를 상향식으로 발전시키는 분수형 성장을 해야 한다.
이를 기반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이 상생체제를 구축하여 성장잠재력을 획기적으로 높여야 한다. 미래 경제 발전을 과거와 같이 대기업 주도로 할 경우 양극화와 잠재성장률 하락의 악순환에 걸려 경제의 생존능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