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수단 소진땐 불황심화시 속수무책
(서울=연합뉴스) 금융팀 = 경기 위기를 극복하려는 정부 대책이 경제의 체질 개선을 위한 구조조정이나 미래 성장동력에 대한 과감한 투자 보다는 단기적 지원에 치우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경기가 가파르게 하강하는 상황에서 국민경제를 떠받치고 실업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절실하다는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문제는 현재의 불황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 경우 정부의 단기 대책을 연장해야 하는 문제에 직면하면서 경제의 비효율성을 없앨 기회를 놓치고 오히려 부실을 키울 수 있다.
국가의 미래 인프라나 성장 동력,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할 경우 추경 등을 통한 각종 단기대책은 나라의 장래에 대한 준비와는 관계없는 '1회용 소모'에 그칠 가능성이 있다는 걱정도 커지고 있다.
◇ 정부 "발등의 불부터 끄자"
22일 정부와 국내 연구기관들에 따르면 지금까지 정부가 발표한 대책들은 대부분 올해 하반기가 지원 시한이다. 일부 시장 원칙에 어긋나거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는 문제도 있지만, 한시적 지원을 조건으로 과감한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리금융지주 송태정 수석연구위원은 "대부분의 정책이 내년에는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는 `1년 침체'를 전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연말까지 중소기업 가운데 수출기업, 녹색성장기업, 창업기업, 소상공인 등의 금융회사 대출에 대해 100% 보증을 선다. 올해 만기가 돌아오는 약 160조 원의 중소기업 대출은 폐업이나 부도 등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전액 만기가 연장된다.
작년 10월부터 시행된 중소기업에 대한 신속 자금지원 프로그램(패스트트랙)은 오는 6월 말까지 운영된다. 사상 최대 규모로 편성되는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재정 지출은 단기 효과를 낼 수 있는 사업에 집중된다.
저소득층의 생활 안정을 위해 6조 원의 자금이 지원되며 이는 대부분 6개월간 한시적으로 이뤄진다. 정부는 공공근로와 숲 가꾸기 사업 등에 2조7천억 원을 투입해 55만 명을 직접 고용할 예정이다. 올해 말까지 학자금 대출 금리를 0.3~0.8%포인트 내린다.
정부가 잡셰어링(일자리 나누기)을 위해 공공기관과 일반 기업에 청년 인턴의 채용을 독려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채용 기간이 대체로 8~ 10개월이어서 올해 하반기면 대부분 끝난다.
한국개발연구원 김현욱 연구위원은 "현재로서는 정부가 단기적인 대책이라도 내놓지 않으면 오히려 경기 침체의 골이 깊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빠르게 한계 상황으로 내몰리는 취약계층을 일시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정책 목표"라며 "다만, 한시적 지원을 통해 재정 악화를 막고 이들이 국가에 과도하게 기대는 현상을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 장기불황 땐 `속수무책' 우려
문제는 불황이 장기화하면 정부가 추가로 내놓을 카드를 찾기 어렵다는 점이다. 정책 수단이 단기간에 소진되면 정책의 지속성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경제 예측기관들은 올해 4분기쯤 `플러스' 성장률을 기록하고 내년에는 2%대 이상의 완만한 회복세를 보일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당분간 체감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게다가 해외발 충격이 재발하면 경기 침체가 장기화할 가능성도 염두에 둬야 한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부터 기존 지원책의 연장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정부는 상반기가 시한인 패스트트랙(기업 신속지원)의 운영을 연말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규모 추경도 장기 불황 국면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최근 이한구 한나라당 의원은 "추경은 단기적 경기침체 대책으로, 지금 상황은 단기 대책으로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고려대 이필상 교수는 "마라톤 선수가 과속으로 체력을 소진하면 그냥 주저앉는다"라며 "다행히 내년에 경기가 살아나면 좋은 처방이 되지만, 침체가 지속하면 더 이상의 정책 수단이 없는 `정부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는 한시 지원책이 종료되더라도 추가 대책을 내놓을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망한 올해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한국이 32.9%로 G20(주요 20개국) 평균인 72.5%의 절반에 그치는 등 재정이 건전한 편이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이 세율을 크게 높인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세율을 낮추면서 지출을 늘리고 있어 재정 상황이 크게 나빠질 우려도 있다. 송태정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재정은 분모와 분자가 동시에 움직이는 상황이라 빠르게 악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선임연구원은 "지금까지 정부 대책은 최대한 모든 것을 내놓은 것 같다"며 "불확실성이 남아있는 만큼 실제 집행 과정에서 속도를 조절해 정책적 여력을 남겨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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