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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고 박두병 초대회장의 부인 명계춘 여사 빈소에서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는 두산 그룹 오너 일가. 오른쪽부터 박용곤 두산 명예회장, 박용오 성지건설 회장, 박용성 두산중공업 회장, 박용현 두산건설 회장, 박용만 두산인프라코어 회장, 박용욱 이생그룹 회장,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 사진제공=두산그룹 | |
두산그룹은 오는 27일 ㈜두산 주주총회를 통해 지주회사제로 출범한다. 지난 2005년 두산은 이른바 ‘형제의 난’으로 바닥에 떨어진 그룹 이미지 회복 차원에서 사외이사제 강화, 전문경영인 중용, 그리고 지주회사제 전환 등의 지배구조 개선안을 내걸었다. 결국 ㈜두산을 그룹 지주사로 하는 지주회사제 출범을 앞두게 됐지만 ‘당초 두산이 내걸었던 구조개선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라는 평가가 재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오너 일가의 그룹 전체에 대한 지배력 확대 성격이 짙어 보인다는 것. 게다가 이번에 새로 합류할 사외이사진에 송광수 이명재 전 검찰총장이 명단이 오르는 등 ‘법조인맥’이 강화돼 그 배경에 눈길이 쏠리고 있다.
두산그룹 지주사인 ㈜두산을 비롯해 두산건설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등 주력 계열사들은 최근 공시를 통해 신규 사외이사 후보 추천 내역을 알렸다. 이변이 없는 한 27일 주총 및 이사회를 통해 이들 4개사에서 신규 선임될 사외이사들은 총 18명. 그런데 주인공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대목이 발견된다. 바로 ‘법조 인맥 강화’다.
사외이사 후보로 신규 선임될 인사들 중 절반인 9명이 서울대 법학과 출신으로 여기에 이명재(두산인프라코어) 송광수(두산중공업), 두 명의 전직 검찰총장도 포함돼 눈길을 끈다. 이외에도 신명균 전 사법연수원장(두산건설), 국정원 2차장까지 지낸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두산중공업), 윤용석 법무법인 한미 변호사(두산인프라코어) 등 법조계 거물들이 신규 사외이사 후보 명부에 올라 있다.
두산 측은 거물급 법조인의 대거 사외이사 진출에 대해 “특별한 이유는 없다. 사외이사추천위원회에서 적합하다고 추천해준 분들을 후보로 올렸을 뿐”이라고 밝혔다. 물론 검찰 고위직 출신을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것은 다른 대기업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일. 그러나 아직 ‘형제의 난’ 기억이 선명한 두산의 경우라 더욱 도드라져 보이기도 한다. 오너 형제들이 줄줄이 법정에 섰던 두산이 이를 통해 법조계와 ‘소통의 폭’을 넓히려는 것으로 풀이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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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해석에 대해 두산 관계자는 “사외이사 추천에 오너 일가의 의중이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두산은 2006년 그룹 회장직을 폐지하면서 계열사는 이사회 중심으로 독립경영 체제를 구축하고 사외이사 후보 추천위원회를 100% 사외이사로 구성하기로 한 바 있다.
일각에선 신규 사외이사 후보 진용을 두고 두산의 ‘MB(이명박 대통령) 프렌들리’로 읽어내며 궁금증을 부풀리기도 한다. 이명재 송광수 두 사외이사 후보는 각각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때 검찰총장을 지냈다. 그러나 이들을 현 정부가 맞각을 들이대고 있는 전 정권 성향 인사들로 보기는 어렵다.
송광수 전 총장은 노무현 정권 핵심 세력과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론,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과 관련해 갈등을 빚었다. 정정길 대통령실장과 고교·대학 동창인 이명재 전 총장은 현 정부 출범을 앞두고 법무부 장관 물망에 오르내렸다. 신규 사외이사 후보들 중엔 이명박 정부와 우호적 관계를 형성해온 인사들도 있다. 현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신희택 서울대 법대 교수와 ‘저탄소 녹색성장’ 실천모임인 그린코리아21 대표를 맡고 있는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이 ㈜두산의 사외이사 입성을 앞두고 있는 것. 두산중공업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받은 김회선 전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은 현 정부에서 국정원 2차장을 지냈다.
두산그룹 핵심 4개 계열사 신규 추천 사외이사들과 오너 일가와의 ‘학연’도 눈길을 끈다. 오너 일가인 박용성-용현-용만 형제는 나란히 경기고-서울대를 졸업한 선후배 사이다. 그런데 신규 사외이사 후보로 추천된 인사들 18명 중 3명을 제외한 15명이 서울대 출신인 것. 경기고-서울대 출신만 해도 5명. 새로 사외이사진에 합류할 인사들 대부분이 두산 오너 형제와 학맥으로 얽혀 있는 셈이다.
한편 ㈜두산은 공시를 통해 박용성-용현 형제와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 박지원 두산중공업 사장의 상임이사 신규선임을 알렸다. 기존의 박용만 회장과 박정원 부회장을 포함, 지주사의 상임이사 7명 중 5명을 오너 일가로 채우게 된 것이다. “지주회사 체제 출범과 동시에 책임경영 강화 목적으로 오너 일가가 대거 이사회에 참여하기로 했다”는 것이 두산 측 입장. 그러나 일각에선 지주회사제와 관련 ‘당초 두산이 내걸었던 구조개선과는 달리 오너 일가의 지배력 확대 성격이 짙어 보인다’는 비판론이 들려온다.
두산그룹은 지난 2005년 오너 형제간 경영권 다툼으로 촉발된 이른바 ‘형제의 난’ 사건을 통해 박용성-용만 형제가 회사 돈 횡령과 분식회계 등 혐의로 기소되는 부침을 겪었다. 그해 7월 박용성 회장이 그룹 회장직을 내놓았고 박용만 당시 부회장도 경영에서 물러났다. 두산은 그룹 회장직을 없애고 전문경영인 체제 강화와 더불어 경영투명성 제고 목적으로 ‘3년 내 지주회사제 전환’을 선언했다.
이후 재계에선 전직 고위관료나 외국인 경영자가 두산의 전문경영인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돌았다. 그러나 박용성-용만 형제가 2006년 7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판결을 받은 뒤 2007년 2월 사면복권되는 과정을 겪으며 두산은 오너경영 복귀 수순을 밟았다. 박용성 회장은 2007년 3월 두산중공업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 그룹 회장직이 없는 상태에서 사실상 두산그룹을 대표해왔다. 박용만 회장도 2007년 12월 두산인프라코어 회장을 맡으며 그룹 살림을 주관해 오고 있다. 검찰에 두산 비리 관련 투서를 넣어 ‘형제의 난’을 촉발시킨 박용오 전 회장이 퇴출된 대신 의사 출신 박용현 회장이 두산건설을 맡아왔다.
두산 안팎에선 이번 주총과 이사회에서 지주사 ㈜두산의 대표이사에 박용현 회장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그룹 회장직은 없지만 지주사가 자회사들을 지배하는 만큼 지주사의 대표가 곧 그룹의 얼굴이 된다. 두산가 장남 박용곤 명예회장은 이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상태며 지난 2월 대한체육회장에 당선된 3남 박용성 회장이 그룹의 대소사를 챙기기엔 부담이 따를 것으로 관측된다. 퇴출된 박용오 전 회장(2남)을 제외하면 형제경영 순서에 따라 4남인 박용현 회장에게 그룹 ‘대표’ 자격이 주어질 차례다. 박용현 회장은 서울대병원장 대한외과학회장 등을 지내며 의학계에선 두각을 나타냈지만 2007년 두산건설 회장에 오르기 전까진 그룹 경영과 무관한 인사였다. 따라서 박용성 회장을 보필하며 그룹 실무를 총괄해온 5남 박용만 회장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선 박용현 체제하에서 두산가 장손인 박정원 두산건설 부회장(박용곤 명예회장의 장남)의 입지가 수직상승할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룹의 지주회사제 전환 준비기간 동안 지주사 ㈜두산의 지분율을 가장 많이 늘린 것이 박정원 부회장이다. 현재 지분 4.15%를 확보해 ㈜두산 개인 최대주주에 올라있는 상태다. 이 때문에 그룹 경영의 중심에 서게 될 삼촌(박용만)-조카(박정원) 간에 치열한 주도권 경쟁이 벌어질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레 고개를 들고 있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