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필상 교수 칼럼

이필상 교수는...경기부양 앞서 물가부터 잡자

이경희330 2008. 3. 10. 02:26
  • 이필상 고려대교수(전 총장)
    경제가 물가 불안에 휩싸였다. 원유와 곡물의 국제가격이 폭등하면서 기존의 가격구조가 파괴되고 제품마다 값이 경쟁적으로 오르고 있다. 이러한 물가 상승은 산업 발전을 위축시키는 것은 물론 서민 경제를 파국으로 몰고 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월 소비자물가가 1년 전에 비해 3.6% 올랐다. 지난 10월 이후 다섯달째 3%대의 고공행진이다. 문제는 생활필수품 가격 폭등이다. 라면, 우유, 난방비, 학원비 같은 주부들의 장바구니 물가를 보면 현기증이 날 정도다. 우리 경제는 실업과 부채의 이중고가 이미 심각한 상태다. 체감실업률이 6.5%에, 가구당 부채가 5000만원에 이른다. 일자리가 부족한 상황에서 빚만 늘고 있다. 여기에 생활필수품 가격이 폭등하자 서민들의 고통은 형언하기 어렵다.

    이런 심각성을 인식한 정부도 유류세를 내리고, 상반기 공공요금 인상을 억제하는 등 긴급대책을 마련했다. 생활물가 상승을 잠시나마 억제하기 위한 고육책이다. 무엇보다 최근의 물가 불안에 대한 근본대책은 에너지와 곡물의 안정적인 공급체제를 구축하는 일이다.

    새 정부는 총리 지명시 약속한 대로 자원외교를 서둘러야 한다. 그리하여 원유와 곡물의 안정적인 공급선을 확보하고 비축량을 늘려야 한다. 국내 생산이 전무한 원유의 경우 해외 에너지 개발 투자를 확대하여 직접 생산에 나서야 한다. 갈수록 높아지는 해외 곡물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선 정부의 새로운 결단이 요구된다. 국내 농업을 포기할 것이 아니라 더욱 살리는 정책으로 나가야 한다. 또 러시아, 동남아시아, 중앙아시아 등 값싼 곡물 생산이 가능한 해외 생산기지 확보를 서둘러야 한다. 물론 이러한 방안들은 시간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기적으로 기업과 국민 모두 비용구조를 개선하고 절약운동을 벌이는 등 참고 견디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다.

    중요한 사실은 물가 상승이 멈추지 않을 경우 어떤 경제 살리기 정책도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규제 완화와 감세를 통해 기업 투자를 활성화해 일자리를 만들겠다는 것이 새 정부의 기본 경제정책이다. 그러나 물가 불안이 계속된다면 기업들은 생산원가가 높아져 수지를 맞추기가 점점 힘들어진다. 또 소비자들은 물건이 비싸 사기 어렵다. 그러면 기업투자 활성화는 무력화된다.

    현 상황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가 6% 성장률에 집착하여 인위적인 경기부양정책을 펼 것이라는 점이다. 이는 해외 바람을 타고 막 불길이 일기 시작하는 물가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그럴 경우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구조적으로 경기가 침체인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면 정부가 어떤 대책을 동원해도 문제 해결이 어렵고 고통이 커진다. 마치 동물이 덫에 걸리면 움직일수록 몸이 조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물가가 안정되면 정부의 탈규제, 저세율 정책은 탄력을 받을 것이다. 그렇다고 규제 숫자와 세율만 조정한다고 해서 투자가 살아난다고 보면 안 된다. 연구기술개발 투자를 늘려 신산업을 발굴하고 산업구조 개혁으로 주요 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쉽게 일어서게 해야 한다. 또 교육을 개혁하여 인적 자본의 질적 능력을 높여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개방을 서두르고 해외 경제영토를 확대해야 한다. 여기에 시중의 부동자금을 산업자금으로 흐르게 하여 기업투자를 촉진해야 함은 물론이다. 실로 종합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물가 불안 해결에 시급히 손을 써야 한다. 그런 연후에 대선공약으로 제시한 투자 활성화 정책을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실행에 옮겨야 한다. 물가 안정이 먼저라는 얘기다. 그것은 ‘747’ 비행을 준비하는 이명박 정부의 첫 관문이 될 것이다.

    이필상 고려대 교수(전 총장)·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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