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태그플레이션과 이명박 경제경책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천적이 있다.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장기적으로 경기가 침체인 상태에서 물가가 오르는 현상을 뜻한다.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면 정부가 어떤 안정화 정책을 써도 문제 해결이 안 되고 고통이 커진다. 이는 마치 동물이 덫에 걸리면 움직일수록 몸이 조이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팽창정책을 쓰면 경기침체는 계속되고 물가만 오른다. 반면 물가상승을 막기 위해 긴축정책을 쓰면 물가상승은 멈추지 않고 경기침체만 심화된다.
최근 체감실업률과 생활물가상승률이 각각 6.5%와 5.1%를 기록했다. 두 숫자를 합한 경제고통지수가 11.6이나 된다. 지난해 9월 8.5를 기록한 이래 연속 상승세다.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 함정에 빠지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은 오래 전부터 생성된 구조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 2002년 이후 우리 경제는 통화 공급 증가, 정부지출 확대, 외국자본의 증시유입 등으로 자금의 과잉상태였다. 시중에 떠도는 부동자금이 600조원에 이른다. 이 부동자금은 대부분 기업의 창업이나 투자에 쓰이는 산업자금이 아니라 부동산이나 증권 가격을 올려 이익을 취하는 투기자금 형태로 흘렀다. 이러한 현상은 지난 2년간 최고조에 달해 부동산과 증권가격을 각각 30%이상 올렸다. 이후 경제는 성장 동력이 급격히 떨어져 경기침체가 심화되고 실업이 늘었다. 또한 일반 국민들의 주거비 부담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에 이르는 등 생계의 고통이 확산되었다. 이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심화되어 사회적 고통까지 나타났다. 결국 경제가 투기거품을 들떠 어떤 정책으로도 치유가 어려운 스태그플레이션의 사지에 몰리고 말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
중요한 사실은 우리 경제가 이러한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서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바로 성장잠재력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은행의 분석에 따르면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이 정보통신 등 일부산업에 집중되면서 빠른 속도로 약화되고 있다. 1990년대 6.5% 수준이었던 잠재성장률이 2000년 이후 신산업발전의 부진으로 4.8%까지 하락했다. 더욱 문제는 우리나라가 저출산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잠재성장률의 하락이 가속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현 추세로 나갈 경우 2030년에는 잠재성장률이 1% 내외까지 하락할 수 있다. 이럴 경우 우리나라는 선진국과 소득격차를 더 이상 줄일 수 없는 영구적인 저성장의 수렁에 빠지고 만다. 그러면 스태그플레이션에서 빠져 나올 가능성은 희박해진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은 지난 해 기준으로 2만달러를 넘어섰다. 그러나 순위로 보면 세계 35위이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6년의 34위에도 미치지 못한다. 향후 스태그플레이션의 불안이 계속될 경우 국민 1인당 순위도 급속히 떨어져 중진국의 위상도 지키기 어렵게 될 수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를 현실적 고통으로 터뜨리고 있는 것이 해외 경제 불안이다. 미 서브프라임 사태로 인해 세계 금융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투기자금이 갈 곳을 찾지 못하고 먹구름처럼 몰려다니면서 각국의 금융시장을 불안의 도가니로 만들고 있다. 이에 따라 기업투자심리가 급격히 냉각되고 경기가 침체국면을 맞고 있다. 더 나아가 금융기관의 연쇄도산을 압박하며 경제 대란까지 불러올 기세다. 이 가운데 원유가격은 1년 전에 비해 거의 곱절이 올라 배럴당 90달러의 고공행진을 하고 주요 국제원자재 가격도 원유가격 상승과 유사한 속도로 폭등세다. 세계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불안에 휩싸인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리 경제가 겪는 스태그플레이션은 엄청난 힘을 얻어 통제가 어려울 정도로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올 들어 우리나라는 한순간에 무역적자국으로 전락했다. 외환 1월 무역적자가 무려 34억달러에 이른다. 11년 만에 최대적자폭이다. 동시에 물가도 고삐가 풀렸다. 지난해 상반기만 해도 3%를 넘지 않았던 생활물가가 지난 1월 5.1%로 치솟았다. 이대로 가다가 우리 경제는 방향감각을 잃고 주저앉을 가능성도 있다.
레거노믹스의 교훈
1973년 석유파동이 일어났을 때 세계 경제는 스태그플레이션의 회오리에 휘말린 바 있다. 중동 산유국들이 느닷없이 서방국가들에 대해 원유수출 금지조치를 내리자 배럴당 3달러도 안되던 원유가격이 배럴당 30달러까지 올랐다. 그러자 서방국가들 경제에 물가 불안이 폭발하고 생산 활동이 마비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당연히 경기는 침체되어 실업은 늘고 물가는 치솟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뒤따랐다. 이러한 현상은 세계 경제를 주도하던 미국 경제에서 더욱 두드러졌다.
미국은 자국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의 안정화를 위해 모든 정책을 강구했으나 소용이 없었다. 경기를 활성화 시키려는 팽창정책이나 물가를 안정시키려는 긴축정책 모두 무력화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자본주의 세계경제를 진퇴양난의 난국으로 몰아 넣은 스태그플레이션은 1929년 경제대공황 이후 경제학의 주류로 풍미했던 케인즈 경제학의 퇴조를 가져왔다. 케인즈 경제학의 기본 기조는 정부개입이다.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을 위해서 정부가 경기를 조절해야 한다는 논리이다.
즉, 경기가 과열상태라 물가불안이 클 경우 재정지출이나 통화 공급을 줄여야 하고 반대로 경기가 침체되어 실업문제가 클 경우 재정지출이나 통화 공급을 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경기가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지면 이와 같은 정부의 경기조절 정책은 거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스태그플레이션이 계속 심화되는 상황에서 1976년 민주당의 카터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실업자들과 빈곤층을 위해 정부지원을 선거공약으로 내건 카터 대통령은 취임 후 대규모 재정 팽창정책을 폈다. 이는 스태그플레이션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되어 경기 침체는 더욱 심화되고 물가는 계속 치솟았다. 1980년 상황이 극도로 악화되어 실업률과 물가상승률이 각각 10%를 넘겨 고통지수가 20이 넘었다. 이때 달러화 가치마저 폭락하여 미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이 크게 약화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카터는 결국 재선에 실패하고 정권을 공화당의 레이건에게 넘겼다. 레이건은 집권하자마자 경제정책을 전면적으로 바꾸었다. 대규모의 감세를 단행하며 시장기능의 활성화정책을 폈다. 세금을 감면하면 국민의 가처분소득이 늘어 소비와 투자가 그만큼 활성화된다는 논리였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지향하며 민간부분의 경제활동을 확대하여 경제를 살린다는 고전학파 경제학의 기조를 따른 것이다. 이후 미국 경제는 재정적자와 무역적자가 누적되는 등 어려움을 겪기도 했으나 시장기능에 의한 투자활성화와 정보통신 등 신산업 발전으로 세계 경제 주도권을 다시 찾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불안한 시장주의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의 경제 정책 차이는 미국의 카터 대통령과 레이건 대통령의 경제정책 차이와 같다고 볼 수 있다. 큰 정부 작은 시장에서 작은 정부 큰 시장으로 정책의 기본 기조를 바꾸어 스태그플레이션을 타파하고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는 것이 두 나라에서 나타난 정책변화의 같은 점이다. 실제로 현재 우리 경제가 스태그플레이션의 함정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민간부문에서 신산업을 발굴하고 기업 투자를 늘리는 것이다.
기업들이 새로운 사업을 벌이며 창업과 투자를 활성화시키면 당연히 생산과 고용이 늘어난다. 생산과 고용이 늘면 국민소득과 소비가 는다. 그러면 경제가 ‘투자 -> 고용 -> 소비’의 선순환체제를 구축하여 새로운 발전의 궤도에 들어선다. 이 경우 부동자금이 투자자금으로 유입되어 자산 가격 거품과 물가불안이 진정되며 빠져나가던 해외자금도 다시 들어와 금융 불안도 해소될 수 있다. 바로 시장주의에 의한 자본주의 경제회생이다.
이런 견지에서 규제를 완화하고 세금을 감면하여 기업투자를 활성화 하겠다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레이건의 경제 정책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우리경제에 올바른 처방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규제 숫자와 세율만 조정한다고 해서 성장 동력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성장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 연구기술개발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신산업을 발굴해야 한다. 또한 교육을 개혁하여 인적자본의 질적 능력을 높여야 한다. 한편 산업구조도 개혁하여 중요기업과 벤처기업들이 쉽게 일어나게 해야 한다. 더 나아가 개방을 서두르고 해외 경제영토를 개발해야 한다. 활력 있는 시장경제 회복을 위해 이명박 정부는 이에 대한 구체적이고 종합적인 청사진을 한시바삐 내놔야 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불안요인도 많다. 우선 경제 활성화를 위해 한반도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정책은 시장논리에 입각한 경제 활성화 정책과 거리가 있다. 수십조원의 자금이 소요되는 이 사업은 물류이건 관광이건 경제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더구나 환경파괴의 위험이 크다. 이런 사업에 민간 기업들이 투자에 나서기 어렵다. 정부도 300조원이 넘는 부채로 인해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부족하다. 억지로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면 국민들 세금부담이 너무 크다. 실패할 경우 경제가 받는 타격은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따라서 대운하사업은 신중히 재고 할 필요가 있다.
더욱 불안한 것은 새 정부가 추진 중인 정부조직개편으로 볼 때 경제부처들을 작고 효율적인 부처가 아니라 크고 강압적인 부처로 바꾸어 관치경제의 틀을 강화한 것이다. 우선 재정경제부와 기획예산처를 합친 기획재정부는 정부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는 예산권과 정책운영권을 한손에 갖게 된다. 따라서 타 정부부처는 물론 지방자치단체에 대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한편 재정경제부의 금융정책기능과 금융감독위원회를 합쳐 금융위원회를 만들기로 한 것은 관치금융의 회귀라고 볼 수 있다. 관치금융은 정경유착비리, 경제력 집중, 시장기능낙후 등의 부작용을 초래하여 결국 외환위기까지 불러오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청와대에 경제수석이 부활한 것은 청와대가 경제정책에 관여하여 지시와 통제를 할 수 있는 과거 개발시대 경제운영구조를 복구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런 견지에서 이명박 정부는 규제를 혁파하고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최소화 한 다음 관치경제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