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진을 알고 이언진(1740~1766) 그는 천재 시인이라 말하고 싶다
스물일곱 젋은 나이로 생을 마감 하였지만 그의 죽음을 당시 지식인들은
앞다투어 애도를 표했고 그의 시를 아껴 읽는 사람들이 많았다 한다
누구도 상상치 못한 낮선 형식, 특이한 내용은사람들을 매료 시켰으며 목가적 전원 풍경을
읊는 시풍이 대세였던 당시의 세계에서 그는 200년뒤의 도회지 풍물을 읊었다
인파로 북적이는 골목길과 시장의 풍경을 시로 스케지 하였다
157수가 수록된 "골목이 있는 내집"이란 시집의 제목부터 산뜻한 현대의 도시풍이다
"골목길에는 집은 많고 하늘은 적어/
온몸에 모자를 덮어 쓴꼴/
한 조각 땅조차 절구공이처럼 밟아서/
백 년 돼도 풀 한 포기 나지 않네/"
당시로서도 거대 도시였던 서울은 다닥다닥 붙은 집으로 인해 골목을 다니는 사람은
몸 전체에 모자를 뒤집어 쓴 꼴이라고 했다
고층 아파트 숲사이의 아스팔트 위를 걷는 현대인의 인상으로 읽어도 무방할 정도 아닌가?
일부러 음악성을 배제하고 시적인 멋을 줄여 건조한 감각으로 도회지의 삶을 포착 하였다
그야말로 모던 하지 않은가?
그러나 시에 등장하는 골목안의 삶은 절망적이고 우울하다
"이 세계는 감옥/
몸이 벗어날 사다리 하나 없네"라든지
"사는 집은 늘 들보가 머리 치기에/
행각승처럼 떠돌기를 늘 바라건만/
마누라는 거미요 자식은 누에 같아/
온몸이 꽁꽁 결박 다했네"라고 썼다
그에 넓은 서울은 골목으로 이어진 감옥으로 아무리 거기를 벗어나려 해도
벗어날 방도가 없는 곳이었다
그처럼 파편같은 짧막한 시편들은 목가적 풍경보다 허위로 일그러진 도회지 삶을 그렸다
그의 시가 당시 지식층에 던진 충격은 적지 않은것 같다
하지만 1764년 일본 통신사 행렬에 참가했다가 돌아 온뒤 병석에 누웠고 곧 죽음을 맞이 하였다
운명하기전 그는 "남겨둔들 무슨 보탬이 될 것이며 세상 그 누가 알아주랴?"라고 하며 시고를
모두 불태웠다 그 아내가 달려들어 겨우 건진것이 지금까지 남아 있는 시들이라 한다
겨우 스물일곱 인생이었지만 그가 떠난 빈 자리는 너무나 컸다
그의 스승인 이용휴는 이런 애도시를 헌정했다
"평범한 작은 남자에 불과 하지만/
죽고나자 사람 수 줄어든 느낌일세/
세도에 무관한 사람은/
빗방울처럼 많기도 하건만..."죽고 없자 인류의 숫자가 줄어든 느낌을 주는 그런 사람!
천재적 제자의 죽음을 두고 스승은 깊은 상실감을 그렇게 표현 했다
그의 시가 윤동주처럼 인생의 깊은 맛은 부족할지 몰라도 예리한 문명 비판과
도회적 감각은 지금 읽어도 새롭다
그가 환생 한다면 지금도 스물일곱의 청년이 아닐까?
어느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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