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중개상 조풍언씨가 결국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풀려났다. 조 씨는 대우그룹 워크아웃이 결정되기 직전인 1999년 "대우그룹 퇴출을 막기 위해 정·관계 로비를 해주겠다"며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으로부터 자신이 대주주인 홍콩법인을 통해 4430만달러를 송금 받은 뒤 로비를 벌인 혐의로 검찰에 의해 기소됐다. 그러나 재판부는 “조 씨가 김 전 회장으로부터 로비 청탁과 함께 이익을 약속받았다는 의심이 들지만, 김 전 회장의 진술에 신빙성이 부족하다”며 정관계 로비 관련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다만 재판부는 2001년 9월 조 씨가 김 전 회장 재산에 대한 예금보험공사의 가압류 집행을 피하기 위해 대우정보시스템 주권 163만주를 은닉한 혐의(강제집행면탈) 등은 유죄로 인정, 조 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72억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본국에서는 이 날 재판결과에 대해 ‘석연치 않은 결과’라며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조 씨를 기소하며 유죄입증에 자신감을 보인 검찰에서도 말도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며 항소할 뜻을 밝혔다. 검찰은 조 씨에게 15년을 구형한 바 있다. 문제는 이 날 선고 이전부터 이미 조 씨 주변에서는 조 씨가 무죄가 될 것이라는 분위기가 감지됐다는 점이다. 검찰이 15년을 구형한 것에 대해 선고 이전에 쉽사리 무죄를 확신한다는 것은 숨겨진 카드를 갖지 않고서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들의 반응이다. 자연스럽게 재판부에 의혹의 눈초리가 모아지고 있다. <취재부 조현철 기자> |
검찰이 조풍언씨를 구속기소한 이유는 △대우그룹 회생관련 로비혐의 △대우정보시스템 전환사채발행 통한 배임혐의 △허위사실 유포 등을 통한 증권 거래법 위반 혐의 등 총 5가지에 이른다. 검찰은 위 혐의 등에 대해서 충분히 유죄 여부가 성립된다며 조 씨에게 징역 15년을 구형했다.
법원, 조 씨에 면죄부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이번 조 씨 관련 재판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5부 (윤 경 부장판사)는 먼저 로비의혹에 대해서는 "로비 청탁과 함께 이익을 약속받았다는 의심은 들지만 당시 김 전 회장에게는 외자 유치 형태로 해외 투자금을 상환할 필요가 있었고 조 씨도 대가와 무관하게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 또 일관성이 결여된 김 전 회장의 진술만으로 혐의가 입증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대우정보시스템 임원과 공모해 전환사채(CB)를 저가에 발행한 뒤 자신과 관련된 회사가 인수토록 해 대우정보시스템에 239억∼314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쳤다는 혐의에 대해서도 "CB의 주당 전환가 5천 원이 현저히 낮은 가격이라 볼 수 없고 회사 손해도 인정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반면 조씨가 2001년 9월 김 전 회장 재산에 대한 가압류를 피하려 대우정보시스템의 주권을 감춘 혐의(강제집행면탈)와 해외 펀드가 미디어솔루션의 가치를 높이 평가해 투자했다고 허위사실을 유포해 부당이득을 본 혐의(증권거래법 위반), 주식 대량 보유 사실을 보고해야 하는 의무를 위반한 혐의 등은 유죄 판단했다. 재판부는 "조 씨가 국가의 공적자금 회수를 저지하려 한 것은 죄질이 좋지 않지만 주식이 현재 수사기관에 압수돼 있고 국가에 귀속될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한다"고 양형 사유를 설명했다. 결국 조 씨는 일부 증권거래법과 관련한 혐의에 대해서만 유죄를 인정받았고 대부분의 혐의에 대해서는 면죄부를 받은 모양새가 됐다. 특히 대우그룹 회생과 관련해 당사자들 간에 수 백억원의 돈이 오갔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열쇠를 쥐고 있는 조 씨에 대해 법원이 사실상 면죄부를 줌에 따라 대우그룹 회생로비 사건은 영원히 역사 속에 묻힐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법원은 조 씨에게 172억원의 추징금만을 부과했다. 이는 증권거래법 위반 등으로 얻은 시세차익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결국 조 씨가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이용해 불린 수 백억원의 재산도 결국 고스란히 조 씨가 영원히 손에 쥐게 됐다.
판결에 비난여론 일어
법원의 이러한 판단에 대해서 검찰이나 언론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이번 사건을 수사한 대검찰청의 한 관계자는 “검찰이 15년을 구형했는데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라며 “수사팀 내부에서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실제 조 씨의 집행유예 소식이 알려지자 수사팀 내부가 발칵 뒤집혀졌다는 후문이다. 판결문을 입수해 법원이 무죄를 선고한 이유에 대해 꼼꼼한 분석작업에 들어갔다고 한다. 특히 법원이 판결문에서 밝힌 양형 이유 중 “조 씨가 대가와 무관하게 (김우중 전 회장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는 게 이번 사건을 지켜봐온 관계자들의 판단이다. 검찰은 이번 판결에 대해 즉각 항소했으며 조만간 조 씨를 다시 소환해 수사를 벌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 씨는 검찰의 이러한 움직임을 미리 읽었는지 벌써 병원에 드러누운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사법부의 이러한 판단은 이미 수개월 전부터 예견돼 왔던 일이다. <선데이저널>은 이번 사건에 단초가 됐던 ‘글로리아 초이스 차이나’의 대우정보시스템 지분 인수 때부터 조 씨 사건을 가장 정확하고 집중적으로 보도해왔다. 이로 인해 조 씨는 결국 철창행을 피할 수 없었으나, 조 씨가 구속된 이후부터 조 씨 주변에서 조 씨가 조만간 나올 것이라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특히 이번 사건을 담당한 재판부와 관련된 소문은 구체적인 실명까지 오르내리며 비교적 자세히 나돌았다. 특히 조 씨가 엄청난 거금을 써서 이번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재판부와 친분관계가 있는 변호인을 선임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에서인지 조 씨 주변에서는 조 씨의 석방을 자신하는 발언들이 자주 오르내렸다. 조 씨의 아내 이덕희 씨는 남편 명의로 벤틀리를 구입하며 ‘조만간 남편이 탈 차’라고 지인특히 들에게 소개하고 다녔던 것으로 알려졌다. 구본호 씨의 소리소문 없는 석방도 조 씨 석방의 전주곡이었다고 할 수 있다. 본지가 보도했던 것처럼 조 씨와 함께 주가조작으로 구속됐던 구 씨는 지난 12월 비밀리에 석방됐다. 구속당시 각종 언론에 대문짝만하게 보도됐던 것과는 달리 구 씨의 석방은 며칠이 지난 후에서야 보도됐다. 이미 검찰 조사에서 모든 것을 다 진술했던 김우중 전 회장을 두 차례나 불러 성과없는 증인신문을 한 것도 석연치 않았다. 때문에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로 미루어보아 조만간 조 씨의 석방은 어쩌면 기정사실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정작 이런 소문을 접하지 못했던 본국 검찰 내부에서는 적지 않게 당혹해했다. 검찰의 또 다른 관계자는 “이런저런 부연설명을 굳이 갔다 붙이지 않아도 검찰이 15년을 구형했는데 법원이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검찰을 무시한 처사”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결국 이번 판결은 법조계의 상식을 벗어난 판결이었다는 것이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법원의 이번 판결은 무죄 추정의 원칙에 의거한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검찰 기소 내용 등을 살펴보면 로비가 시도된 것이 확인됐고 김우중 전 회장의 진술에서도 같은 내용이 나와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죄를 선고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의 말처럼 조 씨의 대우그룹 회생 로비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조 씨의 자금흐름과 김우중 전 회장의 진술이 결정적인 판단 근거다. 하지만 법원은 김 전 회장의 진술이 일관되지 않다는 이유로 법적 증거로서 부적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금흐름에 대해서도 김 전 회장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이 조 씨에 넘어간 것이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조 씨가 대가없이 김 전 회장을 도왔을 가능성이 있다’며 대가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당시 김 전 회장을 대우그룹 부도위기에 놓였던 터라 한 푼의 돈이라도 필요한 시기였다. 수 십 년을 기업가로 살아온 김 전 회장이 대가없이 수 백억원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조 씨에게 줬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은 판단인 것이다. 일단 조 씨는 지난 22일 판결로 인해 석방됐다. 하지만 검찰에서 항소를 결정한 만큼 당분한 LA로 돌아오지는 못할 전망이다. 검찰도 항소심에서는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구본호는 징역 3년
한편, 조 씨와 함께 주가조작혐의로 기소된 LG가 방계 3세인 구본호 씨에 대해 재판부는 “주가조작 범행을 계획ㆍ주도했고 범행으로 얻은 시세차익이 172억원으로 거액인 점 등이 인정된다”며 실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구씨가 재판과정에서 보석으로 풀려난 점을 감안해 법정구속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도 재판부의 ‘재벌봐주기’라는 비판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결론적으로 보면 조 씨는 IMF로 국가가 부도직전까지 간 상황에서 DJ와의 친분 관계를 미끼로 ‘대우그룹을 살려주겠다’며 김 전 회장에 접근해 수 백억원의 대우정보시스템 주식을 받았다. 이는 김우중 전 회장이 진술한 내용이다. 하지만 대우그룹은 결국 부도라는 최악의 결과를 맞았고 반대로 조 씨는 이 주식을 고스란히 자기 주머니에 채워넣었다. 그리고 조 씨는 지난 2004년 대우그룹 관련 수사 당시에도 미국 땅에 눌러앉아 수사의 칼날을 피했다. 정권교체 후 느닷없이 조 씨가 귀국하면서 수사는 재개됐지만 결국 조 씨는 법원에 의해 면죄부를 받으면서 십 년이 넘게 그를 옭아매던 옥쇄를 끊어냈다. 귀국부터 석방까지 석연치 않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결국 조 씨는 몇 개월간의 고생을 끝으로 그가 그토록 원한 것을 얻은 모양새가 됐다. 모든 것은 조 씨의 의도대로 된 것이다. |